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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포쟁이 뚱냥조커 Jul 17. 2019

인문학 두쪽읽기 니체16-에반게리온 스포일러 에세이2

인류보완계획, 잔혹한 천사의 테제는 누굴 위해 울려퍼지나


것에 대하여 161-165p

생명은 즐거움의 샘이다. 그러나 잡것이 와서 함께 마시면 모든 샘에 독이 번진다.


나는 깨끗한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좋아한다. 그러나 불결한 자들의 히죽이죽 웃고 있는 주둥이와 목말라하는 모습만은 보고 싶지 않다.


저들은 눈길을 우물 속으로 던졌다. 그러자 보기에도 역겨운 저들의 미소가 광채를 내며 올라오는구나.


저들이 신성한 우물물을 욕정으로 더럽히고 만 것이다. 게다가 저들 자신의 더러운 꿈을 환희라고 부름으로써 그 말까지도 더럽히고 만 것이다.


저들이 저들의 축축한 심장을 불가에 놓기라도 하면 불꽃조차 언짢아한다. 잡것이 불가에 다가서면 정신 자체가 부글부글 끓어오르며 연기를 내니.


저들의 손길이 닿으면 열매는 달짝지근해지다가 물러 터지게 된다. 저들의 눈길이 닿으면 열매나무는 바람을 견대내지 못하며 가지 끝은 말라 시들어버린다.


생에 등을 돌린 많은 자들이 있지만, 잡것에게 등을 돌렸을 뿐이다. 잡것과는 우물과 불꽃 그리고 열매를 나누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사막으로 가 맹수 틈에서 갈증에 시달린 많은 자들도 지저한 낙타 몰이과 함께 수조가에 앉아 있고 싶지 않아 그리했을 뿐이다.


절멸자처럼, 그리고 열매가 익어가는 들녘에 쏟아지는 우박처럼 찾아든 많은 자들도 단지 잡것의 목구멍에 자신의 발을 밀어 넣어 그 인후를 막으려 했을 뿐이고.


생 자체가 적의와 죽음, 그리고 십자가의 수난을 필요로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나로서는 그것이 가장 삼키기 힘들었던 음식물은 아니었다.


뭐라고? 생에서조차 잡것이 필요하다는 것인가? 나 언가 오히려 이렇게 물었었고 이 물음에 거의 질식할 뻔했다.


독으로 오염된 우물, 악취를 내뿜는 불꽃, 추잡한 꿈과 생명의 빵속으로 파고든 애벌레들이 필요하다는 말인가?


나의 생명을 걸신들린 듯이 먹어 들어간 것은 증오가 아니라 역겨움이었다! 아, 저 잡것조차 정신적으로 재기발랄하다는 것을 보면서 나 자주 정신을 지겨워하곤 했지!


나 지배하는 자들이 무엇을 두고 지배라고 부르는지를 보고는 저들에게 등을 돌리고 말았고, 권력을 잡기 위해 잡것을 상대로 벌이는 부정한 거래와 흥정을 말이다!


민중 틈에 있을 때도 나 낯선 혀를 지닌 자로서, 귀를 닫고 살았다. 저들이 부정한 거래를 할 요량으로 놀려대는 혀와 권력을 위한 저들의 흥정을 멀리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코를 막은 채 언짢아해가며 나 모든 어제와 오늘을 살아온 것이다. 진정한 모든 어제와 오늘은 글이나 갈겨쓰는 잡것이 내는 고약한 냄새로 진동하고 있구나!


귀가 먹고 눈이 먼, 그리고 말 못하는 불구자처럼, 나 오랜 세월을 그렇게 살아왔다. 권력을 추구하는 잡것, 글이나 갈겨쓰는 잡것 그리고 즐거움이나 쫓는 잡것과 함께 살지 않기 위해.


나의 정신은 힘겹게, 그리고 조심조심 계단을 올라갔다. 나의 정신에게는 즐거움의 보시가 청량제였다. 눈먼 사람에게 삶은 지팡이에 의지하여 살며시 지나갔다.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이지? 어떻게 나 역겨움에서 벗어난 것이지? 누가 나의 눈을 젊게 만들어주었지? 어떻게 나 그 어떤 잡것도 더 이상 우물가에 얼씬대지 않는 이 높은 경지에까지 날아오른 것이지?


내가 느낀 역겨움이 내게 날개를 달아주고, 어디에 샘이 있는가를 알아낼 수 있는 능력을 준 것인가? 진정, 나 즐거움의 샘을 되찾기 위해 더없이 높은 곳으로 날아올라야 했거늘!


오, 형제들이여, 나 그것을 찾아냈다! 여기 더없이 높은 곳에 즐거움의 샘물이 솟아오르고 있구나! 그 어떤 잡것도 함께 마실 수 없는 그 생명이 있구나!
너무나 격렬하게 솟구쳐 오르고 있구나! 너 즐거움의 샘이여! 너 다시 채울 생각에서 자주 잔을 비우고 있구나!


나 네게 보다 겸허하게 다가갈 수 있는지 방법을 배워야겠구나. 너무나도 격렬하게 나의 심장이 너를 향해 달려가고 있으니 말이다.


짧고 무덥고 우울하며 복에 겨운 나의 여름이 작열하고 있는 나의 심장. 나의 한여름의 심장은 얼마나 너의 냉기를 갈망하고 있는가!


우물쭈물 망설이던 나의 봄날의 비애도 어느덧 지나가고 말았구나! 유월에 날린 내 눈발의 심술궂음은 지나가고 말았구나! 나 온통 여름이 되었으며 여름의 한낮이 되었구나!


차가운 샘물이 있고 행복에 넘치는 정적이 서려 있는 산정에서의 한여름. 오라. 벗들이여. 여기 이 정적이 한층 더 복된 것이 되도록!


이곳이야말로 우리의 높은 경지이자 고향이기 때문이다. 추잡한 자들이 올라와 갈증을 풀기에는 너무나도 높고 가파른 이곳에서 우리는 살고 있는 것이다.


벗들이여, 맑은 시선을 나의 즐거움의 샘 속으로 한번 던져보아라! 그런다고 그것이 탁해지랴! 샘은 도리어 그의 깨끗한 눈길로 너희를 향해 마주 웃어주리라.


미래라고 하는 나무 위에 우리는 보금자리를 마련한다. 독수리가 부리로 우리 고독한 자들에게 먹을거리를 날라다 주리라!


진정, 깨끗하지 못한 자들이 함께 맛보아서는 안 될 그런 먹을거리를 말이다! 저들은 불에 삼킨 것으로 착각, 그것만으로도 주둥이를 데고 말리라!


진정, 우리가 이곳에 깨끗하지 못한 자들을 위한 거처를 마련해놓고 있는 것이 아니다! 저들의 신체와 정신에게 우리의 행복은 차디찬 얼음 동굴이라 불릴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아주 거센 바람처럼 저들의 머리 위에 살고자 한다. 독수리와 이웃하고, 눈과 이웃하고 태양과도 이웃하면서 말이다. 거센 바람이라면 이렇게 산다.


때가 되면 나 바람처럼 저들 사이를 휩쓸고 들어가 나의 정신으로써 저들의 정신의 숨결을 빼앗으련다. 그러기를 나의 미래는 소망하고 있다.


진정, 차라투스트라는 온갖 낮은 지대로 몰아치는 거센 바람이다. 그는 그의 적들에게, 그리고 침을 토해 뱉는 모든 사람들에게 이렇게 충고하고 있다. “바람을 향해 침을 뱉는 일이 없도록 조심하라!” 고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







더 높은, 더 나은 존재가 되고자 하는 니체의 위버멘쉬 사상. 이런 니체의 분신 차라투스트라등한, 스스로 저급해지려는 잡것을 멀리하려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리고 이번 장에서 차라투스트라 자신도 한때 잡것이었음을 겸허히 인정한다.


자신도 한때 잡것이었지만 어떻게 더 높은 존재가 되려는 층계를 걸어올라올 수 있었을까? 니체는 그 비결로 '즐거움'을 제시한다. 추잡한 자들은 권력과 재물을 얻기위해 서로 깔아뭉개고 더 하등한 존재가 되기 위한 경쟁을 벌인다. 허나 위버멘쉬가 되길 원하는 자는 그런 경쟁이 아니라, 마치 파도에 자기의 모래성이 부서져도 까르르 웃으며 다시 모래성을 짓는 어린아이처럼 즐거움을 원동력으로 해서 스스로 돌아가는 순수한 수레바퀴인 것이다.


그런데, 만약 자기 자신이 순수를 더럽히는 잡것이고, 이 순수를 더럽힌 죄를 자신의 죽음을 통해서만 속죄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이 있다면? 당연히 우리가 계속 읽어온 니체라면 그렇게 생명과 신체를 경멸하지 말고 당장 그 몸을 떠나라고 권고했을 것이다. 이번 글 에반게리온 스포일러 에세이는 바로 이런 니체의 권고를 문자 그대로 실현하려고 한 잡것들, 인류보완계획을 기획하고 실행한 겐도와 제레에 대한 이야기다. 이 글의 대부분은 유튜브에도 올라와있는 에반게리온을 더 이해하기 위한 영상:구 편에 의지하고 있으니 95년작 티비판과 구 극장판을 보신 분들이라면 꼭 한번 보시길 권한다.


https://youtu.be/NEeDOVr8IbE



역삼각형에 일곱개의 눈을 가진 제레의 상징. 이는 일곱 명의 주요 멤버로 구성되어 근본이 불안정한 역삼각형과 같은 인류를 주시하는 조직이 바로 에반게리온의 인류보완계획을 실행하는 제레라는 것을 암시한다. 그러면 왜 인류는 불안정할까? 어째서 외로움같이 밑도 끝도 없는 불안을 평생 느끼면서 살게 되었을까? 에반게리온의 세계관 속에서 이 원인에 대해 제레는 인류의 원죄 때문이며, 이 원죄를 자신들은 알았기에 인류 보완계획을 발동시켜 속죄해야만 한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면 인류의 원죄란 대체 무엇일까?





에바 세계관에서는 이 우주에 인류로선 정체를 알기 어려운 시조종족이 존재한다. 그리고 이 시조 종족은 별마다 하나씩 지성생명체의 알을 보내왔고, 40억년 전쯤 지구에는 아담의 알이 도착했다. 아담의 자손인 사도들은 인간이 존재하기도 전에  먼저 지구에서 생명의 열매를 품고 깨어나려고 하는 중이었다. 허나 예기치 못한 우연으로 리리스의 알이 지구에 불시착, 이것이 퍼스트 임팩트였고 아담과 사도들은 너무 큰 충격에 동면 상태로 들어가게 된다. 그리고 리리스의 후손인 생명체들은 지혜의 열매를 가지고서 진화를 거듭해 인간이 되었다.




 인간은 이전에 아담과 사도들이 먼저 지구에 왔었다는 것은 꿈에도 모른 채 살다가 우연히 시조 종족이 남겨놓은 사해문서를 발굴, 남극에 묻혀있는 아담과 사도의 존재들에 대해 눈치채고 연구를 하게 된다. 허나 서투른 연구중에 2000년에 아담이 깨어나서 폭주해버리고, 퍼스트 임팩트처럼 지구에 운석이 떨어진 것과 맞먹는 충격의 세컨드 임팩트가 일어



 남극이 녹아내려 해수면이 상승하고 요코하마같은 해안 도시는 완전히 침수, 그리고 부족해진 자원 때문에 전세계적 전쟁이 발발, 실로 전인류적인 엄청난 대재앙이 일어났다. 그리하여 이 난리를 수습후에 서드 임팩트같은 재발을 막아야 한다는 명목으로 제레는 인공진화연구소 게히른을 설립한다. 연구소장은 제레에 연줄이 있는 이카리 유이의 남편 겐도였고, 후에 이 기관은 해체되어 신지 레이 미사토 아스카 등 에반게리온 대부분의 주요 인물이 소속되는 특무기관 네르프가 된다.


젊은 시절 겐도는 패기있고 야망있는 학자였다. 너무 혈기가 넘치는 나머지 술집에서 시비가 붙으면 사람을 때리다가 소속학과 교수가 경찰서로 불려나오기도 할 정도였다. 허나 이카리 유이를 만나고 인류의 인공진화에 대해서 연구하는 중에 아내 유이를 잃어버리자, 애니 내내 나오는 것처럼 극도로 조심스럽고 말이 없는 사령관이 된다.

에반게리온 내내 반복되는 중심 테마 중 하나는 인간과 인간의 관계란 대체 무엇이며, 왜 인간은 외로움으로 괴로워하는가 일 것이다. 에바 작품 내에서는 이것을 absolute terror field 줄여서 AT필드의 존재 때문이라고 말한다.



'타인은 지옥이다' 최근 연재된 공포웹툰의 제목이기도 한 이 사르트르가 남긴 말처럼,

인간은 도대체 이해할 수가 없는 타인이라는 절대적 공포로부터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스스로 전한 존재인 사도처럼 강력하지는 않더라도 약하게나마 마음의 벽 AT필드를 만들었다. 때문에 서로를 침범하기 어려운 대신 이해할 수도 없기에 이 마음의 틈에서 외로움이 생겨났다는 것이다. 니체가 다른 책의 제목으로도 쓴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하등한 인간의 한계점으로 본 인간의 왜소함. 타인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대신 자기의 손톱만한 이익과 권력에만 전전긍긍하는 잡것들이 바로 에반게리온 세계관의 리리스의 후손들, 지혜의 열매를 가진 인류가 아닐까. 말할 필요도 없지만 이것은 단순히 만화 속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현생 인류에 대한 메시지다. 그런데 제레와 겐도는 이 한계를 보완하고 인류의 새로운 진화를 기획하여 마치 신과 같은 존재가 되려고 한다. 그리고 겐도에겐 제레에게 숨기는 사적인 목적이 하나 더 존재했다.



하지만 에바 티비판 26화 내내 이 인류보완계획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는 사실상 알 수가 없다. 구 극장판 엔드 오브 에반게리온에서야 겐도와 제레가 무엇을 기획한 것인지, 그리고 왜 막판에 둘이 대립하게 되었는지가 드러난다. 허나 그 둘은 인간적인 한계를 보완하고 극복했다기보다는 결국 니체가 조심하라고 강조했듯이 바람이 불어오는 방향을 향해 침을 뱉어버린 것에 불과한 것은 아니었을까? 쓰레기 산에 올라가서 여기는 쓰레기라고 말하는 바보짓을 한 것은 아닐까?



다음 스포일러 에세이 3에서는 구 극장판 엔드 오브 에반게리온에 대해서, 특히 겐도와 신지에 대해 니체의 입장에서 해석해보고자 한다. 계속 ...




어쩌면 니체라면,


즐거운 것은 찾았니 라며 신지에게 다가와 준


인간이 아니지만 가장 인간적이던 카오루처럼


어린시절 첼로를 연주하던 신지의 등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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