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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포쟁이 뚱냥조커 Jul 22. 2019

사진에세이-반백수의 휴가.카페 고양이언니와

기운 없는 날엔 고양이 쓰담쓰담

반백수도 여름 휴가가 필요하다. 래서 오늘부터 일주일간 나도 자체 휴가 자체 방학을 선언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뭐 거창한 여행 계획따위는 전혀 없다. 다만 이 일주일간 생계 따위, 돈버는 거 따위 다음 달 월세따위!!! 생각하지 않고 하고 싶은대로 편하게 늘어지는게 내 계획이다. 기생충 영화 예고편에서도 나오지 않던가. 송강호가 아들 기우를 보며 아들아 너는 역시 계획이 다 있구나! 하고 감탄할만한 그런 계획은, 사실은 무계획이야말로 최고의 휴가 계획이 아닐까. 그래서 나는 한동안 제대로 하지 못했던 게임, 특히 3대 악마의 게임인 풋볼매니저 FM2012 버전을 어제 밤부터 에버튼의 축구감독이 되어 하루종일 즐겼다. 그리고 모든 축구선수들의 꿈인 챔피언스 리그 결승에 도달했다. 허나...


거지튼이라는 애칭으로도 불리는 영국 EPL 프리미어리그의 대표 가난구단 에버튼 팀을 수년간 키워서 유럽  챔피언스리그의 결승전까지 정말 꾸역꾸역 올라왔건만... 그동안 둘이서 100골 가까이 넣어준 영혼의 투톱 주전 공격수 케이스와 오웬의 승부차기 실축으로 우승컵을 놓쳐버렸다.


 컴퓨터의 이 기가 막힌 희망고문을 당하면 게임 뿐만 아니라 인생의 현자타임이 오곤 한다. 물론 이건 인생이 아니라 게임이니까 세이브해둔 파일을 로드하는 것이야 얼마든지 가능하지만, 그치만 그런 세이브로드 신공을 쓰기 시작하면 게임의 가장 중요한 재미가 날아가기 시작한다...



그리하여 나는 어제 밤부터 오늘 아침 10시까지 게임했다가 4시에나 일어났으나 당연히 몸은 찌뿌둥하고 피지컬이 엉망이니 멘탈적으로도 좋을 수가 없다. 6시까지 밥도 먹지 않고 빈둥거리다가 겨우 밖으로 나와서 내 영혼의 보양식 자주 먹던 순대국을 허겁지겁 입 안으로 넣었다. 공기밥도 하나 더 먹으니까 살아있다는 실감이 들었다. 이제 위장의 촉감은 채워졌으니 손끝의, 관계의 촉감만 채워지면 비로소 인간으로 태어나 다행이라는 말이 허언으로 끝나지 않으리라. 그러나 몇 없는 편한 친구들은 다들 여행이다 가족이다 회사일이다 해서 역시나 바빴다. 그렇다면 역시... 고양이다. 고양이야말로 나같은 인간을 위해 신께서 준비한 선물이 틀림없으리라





들어가자마자 카페 집사분과 언니 고양이는 나를 반겨주었다. 이상할 정도로 오늘 카페 디스코 플래닛에 손님이 없었다. 8시 반에 닫는 이리도 사람이 없다니. 원래 한적해서 좋은 카페이긴 했는데 월요일이라 더 그런걸까. 덕분에 마치 카페를 전세낸 듯 다른 손님의 눈치볼 것 없이 언니와 놀 수 있었다.





언니는 오늘따라 기분이 좋은지 고맙게도 내가 계속 쓰다듬어도 도망가지 않고 가만히 있어주었다. 카페에 그렇게 언니 고양이와 함께 앉아있으니 점점 근심은 커녕 모든 생각 자체가 가라앉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마치 내가 무슨 책을 보는지 물끄러미 궁금해하는 듯한 표정의 언니. 또는 책 그런거 재밌는지 재미없으면 나랑 놀자고 하는듯한 언니.



마침 이날 책으로는 사람들에게 누구나 대피소가 필요하다는, 지금 시대에 문학의 역할로 구조에 응답하는 대피소로써 필요하다는 비평서를 읽고 있었다. 그래 어쩌면 누구나 대피소가 필요하다. 푸코 같은 프랑스 철학자가 말한 헤테로토피아 같은 어려운 개념도 어쩌면 이런 고양이가 사는 카페같은 장소, 삶의 대피소가 하나의 유토피아처럼 여겨지는 곳을 말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유토피아와 다른 점이라면 낙원은 우리가 영원히 머물며 살고 싶은 장소이지만 이런 대피소는 분명 편안하게 쉴 수 있지만 항상 바깥 세상으로 통하는 통로가 연결되어 있다는 차이점이 있으리라.



정말로 책을 읽고 싶은듯이 책 주변을 한참이나 배회하는 언니. 언젠가 동물의 의사소통 방식을 완전히 해명하는게 가능하다면, 인간의 언어와 서로 소통이 가능하다면 언니에게 그렇게 말해주고 싶다. 네가 바로 나에게 대피소였다고. 삶이 적적하고 허무하게 느껴질 때마다 너는 항상 이 카페에 있어주어서, 너무나 고맙다고.


식빵 자세를 하는 언니와 커피를 또 한 모금. 아쉽게도 마감시간은 너무나 빨리 다가왔다. 내일은 또 언니보러 일찍 찾아올까나. 아니면 적당히 추르 몇개를 들고서 이 홍대 동네방네 길냥이들을 만나러 다니는 것도 여름휴가에 걸맞는 즐거운 소일거리일지도. 종종 이렇게 홍대동에 사는 집냥이 길냥이들을 소재로 글을 써야겠다. 글은 당연히 독자에게 보여주기 위해 쓰는 것이지만, 그 전에 내가 바로 첫 번째 독자이니까. ...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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