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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포쟁이 뚱냥조커 Jul 23. 2019

인문학 두쪽읽기 니체 19-에반게리온 스포일러 에세이5

뷰티풀 월드. 소년만화를 넘어서는 소년


춤에 부친 노래 181-184p

어느 날 저녁, 차라투스트라는 제자들과 함께 숲을 가로질러 가고 있었다. 우물을 찾고 있었는데, 보라, 어느새 나무와 덤불로 아늑하게 둘러싸인 푸른 풀밭에 와 있는 것이 아닌가. 풀밭에서는 소녀들이 어울려 춤을 추고 있었다. 소녀들은 차라투스트라를 알아보고는 이내 춤을 멈췄다. 그러자 차라투스트라는 그들에게 다정하게 다가가 말했다.


“사랑스러운 소녀들이여, 멈추지 말라! 사악한 눈을 번득이는 훼방꾼이, 소녀들의 적이 찾아온 것이 아니니.


나는 악마 앞에서 신을 대변하는 자다. 중력의 정령이 바로 그 악마지. 그대들 경쾌한 자들이여, 내 어찌 거룩한 춤에 적의를 품을 수 있겠는가? 아니면 예쁜 복사뼈를 가진 소녀들의 발에?


정녕 나는 숲이자 어두운 나무들로 뒤덮인 밤이다. 나의 어둠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는 나의 실측백나무 아래 장미가 피어 있는 언덕을 발견하리라.


거기에다 소녀들이 더없이 사랑하는 그 어린 신도 찾아내리라. 조용히 눈을 감은 채 우물가에 누워있으니.


진정, 밝은 대낮인데도 벌써 잠에 빠져 있는 것이다. 이 게으름뱅이는! 나비를 잡겠다고 너무 많이 뛰어다니기라도 했나?


아리따운 무희들이여, 저 작은 신을 좀 꾸짖더라도 내게 화내지 말라! 그는 울고불고 야단일 것이다. 그러나 그는 울 때조차도 웃음을 자아내리라!


그는 눈물을 글썽이며 너희에게 다가와 함께 춤을 추자고 졸라댈 것이다. 그러면 나 자신은 그의 춤에 맞추어 노래를 하나 부르리라.


저들이 ‘세계를 주재하는 자’ 라고 부르는, 나의 더없이 드높고 더 없이 강력한 악마인 저 중력의 정령에게 던지는 춤노래이자 조롱의 노래를.“
다음은 큐피드가 소녀들과 함께 춤을 출 때 차라투스트라가 불렀던 노래다.

오, 생명이여, 최근에 나 너의 눈을 들여다본 적이 있지! 그때 나 깊이를 헤아릴 수 없는 것 속으로 가라앉고 있는 듯싶었지.


그러자 너는 황금 낚싯바늘을 던져 나를 끌어올렸지. 내가 너를 두고 그 깊이를 헤아릴 수가 없군, 하고 말하자 너는 야유하듯이 웃었고.


“물고기들은 하나같이 그렇게 말하지.” 너는 말했다. “저들이 헤아리지 못하는 것이 깊이를 헤아릴 수 없는 것이지.


그러나 나는 변덕스럽고 사나울 뿐, 어디를 보나 한 여인, 방정하지 못한 여인일 뿐이다.


너희 사내들로부터 ‘속 깊은 자’,‘신실한 자’,‘알 수 없는 자’라 불리고는 있지만 말이다.


너희 사내들은 언제나 너희 자신의 덕을 우리에게 선사해왔지. 아, 도덕군자들이여!“


그 미덥지 못한 여인은 이렇게 웃어댔다. 그러나 그가 자신에 대해 좋지 않게 이야기할 때, 나 그와 그의 웃음을 결코 믿지 않는다.


그리고, 내가 나의 사나운 지혜와 은밀하게 말을 나누고 있을 때였다. 지혜가 화가 나서 내게 말했다. “너는 의욕하고 갈망하며 사랑한다. 단지 그 때문에 너 생명을 찬미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하마터면 심술궂게 응수하여 화가 잔뜩 나 있는 지혜에게 진실을 말할 뻔했다. 사람들은 지혜에게 “진실을 말할 때” 더없이 심술궂어지는 법이니.


우리 셋 사이의 관계는 이렇다. 나 진심으로 생명만을 사랑한다. 진정, 어느 때보다도 그것을 미워할 때!


나 지혜에 대하여 다정하게, 때때로 너무나도 다정하게 대하고 있는데 그것은 그가 생명을 절실하게 일깨워주기 때문이다!


지혜에게는 그 자신의 눈이 있고, 웃음이 있으며, 심지어는 작은 황금 낚싯대까지 있다. 저들 둘이 서로 그토록 닮아 있는데, 난들 어찌 하겠는가?


언젠가 생명이 내게 물은 적이 있다. “지혜라니, 누구를 두고 하는 말이지?” 그때 나 열심히 말했지. “아, 그렇지! 저 지혜!


사람들은 지혜에 목말라한다. 그 갈증에 끝이 없다. 사람들은 베일을 통해 바라보며 그물로 그것을 잡아보려고 애를 쓴다.


지혜는 아리따운가? 나 무엇을 알고 있담! 그러나 가장 노련한 잉어라도 지혜라는 미끼에는 걸려들게 마련이다.


지혜는 변덕이 심한데다 고집이 세다. 나는 그가 입술을 깨무는 것을, 그리고 머리카락을 반대반향으로 빗고 있는 것을 자주 보았다.


어쩌면 지혜는 사악하고 거짓스러우며 어디를 보나 여인 것이다. 아무튼 지혜는 자신에 대해 좋지 않게 이야기할 때가 가장 매혹적이다.“


내가 생명에게 이렇게 말하자 생명은 심술궂게 웃더니 눈을 감았다. 그러고는 말했다. “지금 누구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지? 내 이야기겠지?”
네가 옳다고는 하더라도, 그것을 내 얼굴에 대고 말하다니! 이제 너의 지혜에 대해서도 이야기해보라!“


아, 다시 눈을 떴구나, 오, 사랑스러운 생명이여! 나는 다시 저 깊이를 헤아릴 수 없는 것 속으로 가라앉고 있는 듯싶었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노래했다. 춤이 끝나고 소녀들이 모두 떠나자 그는 서글퍼졌다.


그는 마침내 말했다. “해는 이미 오래전에 졌다. 풀밭은 촉촉이 젖어 있고 숲으로부터 싸늘한 바람이 불어오는구나.


알 수 없는 그 어떤 것이 나를 둘러싸고는 생각에 잠긴 듯한 눈길을 보내고 있구나. 원! 차라투스트라여, 너 아직 살아 있는가?
무슨 까닭으로? 무엇을 위해? 무엇으로써? 어디로? 어디에서? 어떻게? 아직 살아있다는 것, 그것은 어리석은 일이 아닌가?


아 벗들이여, 내 내면에서 그렇게 묻고 있는 것, 그것은 저녁이다.서글퍼하는 나를 용서하라!
저녁이 되었다. 용서하라. 저녁이 된 것을!“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








니체가 반여성주의라는 오해와 편견에 대해서는 지난번 여인과 진리에 대한 글에서도 다룬 바 있다. 이번 춤에 부친 노래 편은 마치 그 글에 이은 심화판 같기도 하다. 차라투스트라는 1부에서 제자들을 놔두고 떠났지만 또 새로운 제자들이 모여들어 그를 따라다니다가 춤을 추는 소녀들을 만난다. 차라투스트라의 제자들의 성별에 대한 별다른 묘사나 언급은 없는 걸로 보아 아마도 남성들인 것으로 추정되는데, 남자들이 우르르 몰려다니다가 소녀들의 춤을 보고 멈췄으니 소녀들 입장에선 경계하는 것이 당연하리라.


인간을 끝도 없이 무겁게 만들고 춤추지 못하게 방해하는 중력의 령이라는 악마라 칭하며, 차라투스트라는 자신이야말로 악마와 상대하는 대지의 신이라고 말한다. 허나 자신은 천상의 신이 아니라 대지 안에 어둠 안에 있으며, 그렇기에 소녀들도 좋아하는 어린 신도 그곳에 있다고 한다. 이 어린 신이란 무엇일까? 다양한 해석이 있을 수 있겠지만 차라투스트라가 걸어온 여정의 맥락을 따라서 해석해보자면 역시 어린아이, 자기를 극복하고 가치를 창조해내는 위버멘쉬의 다른 표현이 아닐까.


 이 어린 신은 나약하고 울보이지만 울면서도 웃는 신기한 존재다. 그리고 소녀들이 사랑하는 존재인데, 바로 이런 존재에 대해서 묘사한 캐릭터가 있다. 에반게리온의 구 극장판 엔드 오브 에바의 이카리 신지가 바로 14살밖에 안 된 어린 신이 아닐까. 그리고 변덕이 심한데다 고집이 세고 아리따운 존재, 사악하고 거짓스러우며 어디를 보나 여인인 존재, 지혜는 바로 작품 안에서 신지가 소망하는 존재인 아스카가 아닐까.









엔드 오브 에바의 첫 대화부터 신지는 미사토도 아야나미 레이도 무섭다며 아스카에게 도와달라고, 구원을 요청하고 심지어 자기를 바보 신지라고 불러달라고 하지만 의식이 없는 아스카는 당연히 대답이 없다. 아스카를 흔들어 깨우려고 했지만 실수로 아스카의 몸이 드러나고, 그것을 보고 성적으로 흥분한 신지는 갑자기 자기위로 행위를 하고서 더더욱 깊은 자기혐오에 빠져버린다





하지만 지난번 글에서 말했듯이 카오루와 미사토가 자기희생을 하며 베풀어준 사랑 덕분에 신지는 아주 약간 정신을 차리고 초호기에 겨우 탑승하게 된다. 하지만 아스카와 2호기는 바보 신지는 왜 오질 않느냐며 혼자 싸우다가 제레에서 보낸 양산형 에바 시리즈에 이미 잔혹하게, 너무나 잔혹하게 당했고 서드 임팩트가 시작되자 모두의 영혼이 육체에서 해방되어 어머니 리리스 앞에서 하나가 된다. 그리고 더 이상 타인이라는 공포와 외로움이라는 불안이 없는 세계가 완성될려는 찰나, 단 한명이 그런 결정을 내리려는 신지에게 반기를 든다.





너하고만은 죽어도 싫어. 아스카 목소리의 완벽한 거절에 갑자기 화면은 영화관의 관객석으로 전환된다. 마치 아스카가 말한 '죽어도 하나가 되긴 싫은 너' 라는 말이 애니를 보고 있는 관객들 하나하나를 가리키는 듯. 영상은 아에 당시 영화를 보고있는 관객들로 카메라를 돌린다. 이것은 결코 그냥 만화로 끝나는 이야기가 아니라고 대놓고 말하는 안노의 의도가 아닐까.






신지는 서드 임팩트의 융합중에 살아온 인생을 돌아보면서 첼로를 처음 배웠던 순간을 떠올린다. 스스로 아무 능력도 없는 무기력한 멍청이라고 칭하며 자기혐오의 끝장을 달리던 신지였지만 사실은 음악적으로 분명 재능이 있는 아이였던 것이다. 세컨드 임팩트와 부모로부터 버려진 환경 때문에 그 재능을 제대로 계발할 기회가 없었던 것 뿐. 첼로를 배우고 연주할 때의 신지는 분명 니체가 원한의식에서 더 높은 계단을 오르는 원동력이라 말한 삶의 기쁨, 즐거움을 온몸으로 느끼고 실천했던 순간이 아니었을까.





 전에도 말했듯이 에바를 다 본 사람들도 신지를 매우 저평가하며 심지어 인류를 멸망시킨 제레와 다를 게 뭐냐고 혐오에 가까운 감정을 쏟아내거나, 에반게리온 내에 수많은 정신병과 콤플렉스를 가진 캐릭터들이 많지만  중에서도 최악의 정신상태가 바로 신지라며 경멸하기도 한다. 허나 과연 감독 안노를 비롯한 제작진이 신지가 그렇게 보일수도 있다는 점을 몰랐을까? 서드 임팩트중에 신지는 아스카와 대화하며 신지를 나쁘게 보는 시선들에 대해 일침을 날린다. 사람은 자기가 아는 것에 대해서만 혐오하고 경멸할 수 있는 법이다.






그러나 이런 수많은 인간 관계에 대한 상처와 멸시를 받은 후에도 신지는 결국 삶을 포기하지 않는다. 왜일까. 살면서 0.5초정도의 정말 짧게 지나간 순간이지만 반 아이들과 같이 웃으며 찍은 사진같은, 그 웃음은 거짓의 순간이 아니었으니까.




다시 타인의 공포가 시작되어도, 서로를 알 수 없어서 외로워져도 괜찮겠냐는 카오루의 배려어린 충고에 신지는 그래도 어쩌면 사람이 사람을 이해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에 미래를 걸어보기로 한다. 그래서 인류의 멸망은 중단되고 생명의 원류인 LCL의 바다에서 각자가 이미지하면, 상상의 힘으로 다시 사람으로 돌아올 수 있게 된다. 당연히 신지와 아스카가 가장 먼저 돌아온다. 마치 태초의 아담과 이브처럼, 그러나...




깨어나자마자 신지가 가장 처음 한 행동은 옆의 아스카를, 정확히 말하자면 아스카의 가슴을 보는 것이었다. 14세 사춘기 청소년으로서  그 섹슈얼한 관심 자체는 그럴수도 있으나, 그러자 당연히 자기가 저지른 일들이 기억났을 것이 심지어 아스카도 하나가 되었을때 그걸 다 알았다고, 심지어 자기가 보는 앞에서 한번 해보라고 했으니 얼마나 부끄럽고 수치스럽고 공포스러울까. 그래서 신지는 꿈 속에서 그랬던 것처럼 아스카의 목을 조른다. 사실 아직 자기가 꿈 속인지 살아있는 현실인지도 구분이 안 되는 정신상태라고 보는 게 타당할 것이다. 그러나 또 스스로 죄책감에, 자기는 어쩜 아스카가 부르는 것처럼 얼마나 바보같은지, 바보 신지는 눈물을 흘리고 아스카는 깨어나서 그걸 이해했다는 듯이 신지의 뺨을 위로하는 듯 어루만져준다. 그러자 신지의 손도 풀린다.






신지는 바보같은 행동을 한 것을 후회하는 듯 어린아이처럼 눈물을 흘리고... 그리고 마지막으로 아스카가 '기분 나빠' 라고 마지막 대사를 내뱉고 바로 종극 이라며 끝난다. 이 구 극장판의 라스트 씬에 대해서 수십년동안 에반게리온의 덕후들은 논쟁을 벌여왔다. 나는 이에 대해 완벽한, 결점이 없는 최종 해석이 존재한다고 보지 않는다.


 다만 내가 지금까지 해온 것처럼 부친 살해나 베푸는 덕 사랑의 가치 등 에반게리온의 수많은 상징과 연출이 니체적인 모티브에서 해석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본다면, 이번 춤에 부친 노래의 마지막에 입각해서 에바의 마지막을 해석하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 차라투스트라는 중력의 정령에 대항하는 춤과 노래를 소녀들과 함께 하고자 했다. 이는 분명 위대한 정오, 인간의 그림자가 가장 짧아지고 위버멘쉬가 탄생하는 시간을 고대하는 것이다. 하지만 니체에게 시간의 흐름이란 사계절이 그렇고 낮과 밤이 그렇듯 순환적이고 원형적이다.


 그렇기에 땀흘리며 춤추기 좋은 한낮이 지나가면 항상 저녁이 온다. 정오와는 달리 그림자가 다시 길어지고, 중력의 정령이 사람들의 몸과 마음을 무겁게 우울하게 만드는 시간이 반드시 온다. 신지의 경우도 마찬가지 아닐까. 첼로를 처음 배울때의 두근거림, 반 친구들과 다같이 사진 찍으며 웃었던 기쁨 같은 시간도 있지만 저녁이 오고 우울함과 자기혐오가 깊어지는 시간도 분명히 존재하는 것이다. 이것을 안타깝게 여겨서 차라투스트라도 이 장의 마지막에 말한 것이 아닐까.


 "아직 살아있다는 것, 그것은 어리석은 일은 아닐까? 서글퍼지는 저녁이 온다! 용서하라! 저녁이 온 것을!"

 


아스카의 일본 성우는 처음에 마지막 대사로 '너같은 놈한테 죽는다니 최악이야' 라는 대본을 보았고, 이를 즉석에서 기모찌 와루이. '기분 나빠' 로 바꾸자는 애드리브를 제안하여 감독 안노도 받아들였다는 후일담이 전해진다. 너하고 만은 절대로 하나가 되기 싫다는 마음과 너같은 놈에게 죽다니 최악이라는 마음. 그러면서도 싸울때 왜 오질 않느냐고 결국 도움을 구하던 사람은 바보 신지... 전부가 내 것이 될 거 아니면 필요없다고, 난데없이 키스하자고 구애하는 사람도 신지...



아스카의 수많은 마음이 응축된 대사 한마디가 강렬한 여운을 낳았고, 그 여운의 공백에 저마다의 해석을 덧붙이며 에반게리온 구 극장판은 불멸의 작품이 되어버렸다. 그러나 이조차 감독 안노 히데아키의 의도는 아니었는지 그는 신 극장판을 만들었고 내년에 드디어 최종회가 개봉한다고 한다. 니체가 말했듯이 새로운 가치를 낳는다는 것은 기존의 가치를 파괴해야만 가능한 것일까. 구 에바와 신 극장판의 설정충돌로 또 다른 논란이 나오기도 한다. 허나 감독 안노가 아스카의 이름을 소류 아스카에서 시키나미 아스카로 굳이 바꾸면서 말한 것처럼, 별개의 작품, 별개의 창작물로 감상하는 것이 또 하나의 즐기는 방법일 것이다. 이로써 에반게리온 구 극장판에 대한 스포일러 리뷰는 끝이 났다. 다음 글에서는 이 어두운 저녁에, 무덤에 대하여 차라투스트라가 뭐라 말했는지를 또다른 만화와 더불어 찾아보기로 하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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