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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포쟁이 뚱냥조커 Jul 25. 2019

인문학 두쪽읽기 니체 20-기형도 시. 삼국지. 조조

조조는 어째서 파격적인 영웅, 간웅이 되었을까


 무덤의 노래 185~189p

 "저기 무덤의 섬이, 적막한 섬이 있다. 거기 내 젊은 시절의 무덤들도 있다. 나, 그곳으로 늘 푸른 생명의 화환을 가져가리라."

마음속으로 이렇게 다짐을 하면서 나는 바다를 건넜다.

오, 내 젊은 시절의 곡두여, 환영이여! 오, 사랑스러운 눈길 모두여, 성스러운 순간순간이여! 어찌 그리 서둘러 죽어갔는가! 죽어간 옛 벗을 떠올리듯 나 오늘 너희를 떠올리노라.

더없이 사랑스러운 망자듯이여, 너희로부터 감미로운 향기, 마음을 녹이며 눈물을 자아내는 향기가 다가오누나. 실로, 고독한 항해자의 마음을 흔들고 녹여주는구나.

나는 여전히 더없이 풍족한 자이며 더없는 부러움을 사고 있는 자다. 더없이 고독한 자인 내가! 일찍이 나 너희를 소유했었고 너희가 아직 나를 잡아두고 있었으니 말이다. 말하라  나말고 그 누구 앞에 이 같은 장미사과가 나무에서 떨어졌다던가?

나 여전히 너희의 사랑을 상속한 상속자요, 너희에 대한 추억을 일깨우는 다채로운 야생의 덕이 꽃을 피우고 있는 토양이다. 오, 더없이 사랑스러운 자들이여!

아, 우리가 원래 서로 가까이 이웃하도록 되어 있었지. 사랑스러우면서도 진기한 경이들이여. 너희가 수줍은 새처럼 나와 나의 갈망을 찾아왔던 것이 아니다. 아니, 신뢰하는 자로서 신뢰하는 자를 찾아오듯 그렇게 왔던 것이지!

그렇다. 나처럼 신실하도록, 그리고 영원히 다정하도록 창조되었던 것이지. 나 이제 너희를 불성실한 자라고 탓하지 않을 수 없구나. 신성한 눈길과 순간순간이여, 너희를 달리 부를 이름을 나 아직 찾아내지 못했으니.

도망자들이여, 너희는 진정 너무나도 일찍 죽어갔다. 그렇다고 너희가 내게서 달아난 것은 아니다. 내가 너희에게서 달아난 것도 아니고. 비단 우리가 서로에 대해 신실하지는 못했지만 그 책임이 우리에게 있는 것은 아니다.

내 희망을 노래하던 새들이여, 나를 죽일 생각에서 사람들이 너희를 먼저 목졸라 죽였던 것이다! 그렇다. 더없이 사랑스러운 자들이여, 악의가 허구한날 너희를 향하여 화살을 날렸던 것이다. 나의 심장에 명중시킬 생각에서!

그리고 명중시켰다! 너희는 언제나 내가 더없이 사랑했던 자. 나의 소유였으며 나를 사로잡았던 자들이거늘, 바로 그 때문에 너희는 젊어서, 그것도 아주 일찍 죽어야 했던 것이다!

내 것 가운데서 가장 상처받기 쉬운 것을 향해 사람들이 화살을 쏘아댄 것이다. 살갗이 솜털같이 부드러운, 그리고 더욱이 눈길 하나에 의해서도 사라져버리는 미소와 같은 것이 너희였지!

나 나의 적들에게 말하련다. "너희가 내게 저지른 것을 생각한다면 살인이 뭐 그리 대단하랴!
너희는 내게 그 어떤 살인보다도 몹쓸짓을 했다. 내게서 되찾을 수 없는 것을 앗아가고 말았으니 말이다." 나의 적들이여, 나 너희에게 이렇게 말하노라!

너희는 내 젊은 시절의 곡두와 더없이 사랑스러운 경이를 죽여버렸다! 나의 놀이동무였던 저 행복한 정령들을 앗아가고 만 것이다! 저들에 대한 추억 앞에 나 이 화환과 함께 저주를 내려놓노라.

나의 적들이여, 너희에 대한 저주를 말이다! 차가운 밤에 음향 부서지듯, 너희는 나의 영원한 것들을 속절없이 만들고 말았다! 저들은 신성한 눈동자에서 번쩍이는 섬광처럼 나를 찾아왔었을 뿐이다. 순간으로서!

일찍이 행복했던 시절, 나의 순결은 이렇게 말했었다. "내게는 모든 것이 신성하기를."

그때 너희는 추악한 유령들을 거느리고 나타나 나를 덮쳤지. 아, 행복했던 그 시절은 어디로 달아나 없는 것이지!

"모든 나날이 내게 신성하기를." 언젠가 내 젊은 시절의 지혜는 이렇게 말했었다. 참으로 즐거운 지혜의 말이었다!

그러나 그때 너희는 내게서 밤을 빼앗아 잠 못 이루는 번민에 팔아 넘겼지. 아. 그 즐거운 지혜는 어디로 달아나 없는 것인가?

언젠가 나 하늘을 나는 새의 모습에서 길조를 갈망하고 있었지. 그런 내 앞으로 너희는 역겨운 흉조인 부엉이를 날려 보냈겠다. 아, 나의 간절한 갈망은 어디로 달아나 없는 것인가?

일찍이 나 역겨운 것이라면 하나도 남김없이 뿌리치겠노라고 다짐했었다. 그러자 너희는 나의 이웃과 더없이 가까운 이웃을 농양으로 바꾸어놓았겠다. 아 그 고결한 다짐은 어디로 달아나 없는 것인가?

나 일찍이 눈은 멀었지만 그래도 행복한 길을 가고 있었다. 그때 너희는 장님이 가는 길에 오물을 던졌지. 그리하여 장님은 그가 장님으로서 걸어온 길에 역겨움을 느끼게 되었지.

내가 더없이 어려운 일을 해내고 그 극복의 승리를 자축하고 있을 때, 너희는 나를 사랑하고 있던 자들을 부추겨 내가 저들에게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을 주고 있다고 외치도록 했겠다.

진정, 너희가 해온 짓거리가 한결같이 이런 것들이었으니. 나의 가장 질 좋은 꿀을 쓰디쓰게 만들었으며 그렇게 하여 내 최상의 벌들의 노고를 헛되게 한 것이다.

너희는 자애로운 내게 허구한 날 뻔뻔스럽기 짝이 없는 거렁벵이들을 보냈다. 때를 가리지 않고 연민의 정이 깊은 내 주변으로 이루 말할 수 없이 파렴치한 자들을 내몰았던 것이다. 그렇게 하여 나의 덕의 신념에 상처를 입히고 말았지.

그리고 내 것 가운데서 가장 신성한 것을 내가 제물로 바치자 너희의 "경건"이라는 것은 서둘러 자신의 기름진 제물을 그 곁에다 놓았지. 나의 가장 신성한 것이 너희 기름덩이에서 피어오르는 증기 속에서 질식하도록.

그리고 언젠 나는 내가 여지껏 춰본 적이 없는 그런 춤을 추고자 했었다. 온 하늘 너머로 춤추며 가려 했던 것이다. 그때 너희는 나의 가장 사랑스러운 가인을 꼬드겼지.

그러자 그 가인은 숨막히도록 소름 끼치는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고. 아, 그때 그는 마치 음울한 뿔나팔을 불어대듯 내 귀를 마구 때려댔지!

살인적인 가인이여, 악의의 하수인이여, 순진하기 짝이 는 자여! 나 벌써 가장 멋진 춤을 출 채비를 하고 그렇게 서 있었지. 바로 그때 너 너의 가락으로 나의 황홀경에 찬물을 끼얹고 말았던 것이다!

나는 춤을 통해서만 최상의 사물에 대한 비유를 들 줄 안다. 마침 그때 나의 최상의 비유는 발설되지 않은 채 내 사지 속에 남아있던 터였다!

발설되지 않고 구제되지도 못한 채, 저 최상의 희망이 내게 그대로 남아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내 젊은 시절의 모든 곡두와 위안은 죽어간 것이다!

나 어떻게 이 일을 견뎌냈지? 나 어떻게 이같은 상처를 이겨내고 극복했지? 어떻게 나의 영혼은 이들 무덤으로부터 다시 소생한 것이지?

그렇다. 내게는 불사신적인 것, 영원히 묻어둘 수 없는 것, 바위까지 폭파해버릴 수 있는 그 어떤 것이 있다. 나의 의지가 바로 그것이다. 나의 의지는 묵묵히 그리고 변함없이 세월을 가로질러 간다.

나의 친애하는 의지는 내 발을 발삼아 그 자신의 길을 가고자 한다. 그의 기질은 박정하며 상처를 입는 일이 없다.

나는 발꿈치에서만은 상처를 입지 않는다. 너 더없이 인내심 많은 자여, 너 여전히 살아 있고, 변함이 없구나! 너 언제나 무덤이란 무덤은 다 뚫고 나왔지!

내 젊은 시절의, 구제받지 못한 그 어떤 것이 네 안에서 아직도 살아 있다. 그래서 생명과 젊음을 구가하며 너 희망을 품고 여기 폐허가 된 노란 무덤 위에 앉아 있는 것이다.

그렇다. 내게 있어 너 여전히 무덤이란 무덤을 다 파괴하는 자다. 나의 의지여, 건투를 빈다! 부활은 무덤이 있는 곳애만 있게 마련이니.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노래했다.










/





지난 글에서 차라투스트라는 소녀들과 우연히 만나서 모든 것을 무겁게 만드는 중력의 정령에 대항하는 춤을 췄지만, 시간이 지나가서 저녁이 되었고 그의 그림자는 길어졌다. 사람은 태양이 쨍쨍한 정오에는 기운이 왕성해지고 해가 지고 빛이 없는 밤에는 아무래도 힘이 빠지기 마련이다. 심지어 이 글에서 차라투스트라는 무덤에, 어린시절이 묻혀 있는 무덤에 도착한다.


어린 시절, 유년기에 누구나 꿈이 있었을 것이다. 차라투스트라가 말하는 것처럼 마치 사랑스럽고 행복한 정령들과 같이 노는 듯한 환영같은 풍경. 허나 질투심 많은, 원한의식을 전염시키는 역병같은 존재,  차라투스트라의 적인 중력의 정령은 이런 행복한 정령이라는 환영을 살해했다. 이에 차라투스트라는 진심으로 슬퍼하고 이 적을 향한 저주를 퍼붓는다. 이는 마치 기형도 시인의 시를 떠올리게 한다.







  빈 집                /              기형도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잘 있거라, 짧았던 밤들아
창밖을 떠돌던 겨울 안개들아
아무것도 모르던 촛불들아, 잘 있거라
공포를 기다리던 흰 종이들아
망설임을 대신하던 눈물들아
잘 있거라,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들아

장님처럼 나 이제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네
가엾은 내 사랑 빈집에 갇혔네











어쩌면 기형도도 니체를 읽었던 것일까. 아니면 사랑하는 대상의 죽음이라는 이 상처 애도하는 감수성에는 어쩌면 인류적인 보편성이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차라투스트라는 여기서 조금 더 나아가서, 자신은 이 무덤에서 일어나서 상처를 극복하고 나의 의지로 부활할 것이라고 말한다. 이 의지란 역시 이전에도 니체가 말했던 힘에의 의지일 것이다. 이것은 단순히 힘으로 누굴 지배하고 종속시키고자 하는 의지가 아니라, 지금의 자신보다 더 나은 존재. 더 강한 존재가 되고자 하는 의지다. 그리고 오늘 말하려는 삼국지의 간웅 조조. 창천항로 만화의 조조가 바로 이런 캐릭터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다.




보통 삼국지의 조조 하면 난세의 간웅 이미지로, 서주대학살로 강을 시체로 메워버리는 잔인하고 결단력있는 카리스마적인 군주의 형상으로 나타난다. 심지어 다른 삼국지 매체에서는 타인의 마음이나 공감이 뭔지 모르는 악마적인 사이코패스 간웅 조조로 묘사되기도 한다. 하지만 창천항로는 분명 조조가 주인공이고 조조가 거의 신격화된다고 비판받기도 하는 만화다. 그러면 창천항로에서는 왜 조조가 서주대학살같은 잔혹무도한 짓을 벌였다고 볼까? 작가는 조조의 이 악행을 독자에게 어떻게 설득시킬 것인가?



서주로 출진해서 사실상 대학살을 명령하기 직전에 신하들이 자칫 천하의 뜻을 거스르는 대참사를 우려해서 출진을 말린다. 허나 조조 맹덕은 자신이 바로 천하라고. 하늘의 뜻을 헤아리려고 하는 게 아니라 니체가 외치듯이 자신이 바로 하늘이라고, 가치를 창조하고 기준을 입법하는 존재라고 선언한다. 자신은 서주자사 도겸의 부하에게 아버지 조승이 살해당했기에 효를 실천하고 복수하려는 그런 것이 아니라,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하는 존재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왜 조조가 사람의 생명을 쉽게 보는 듯한 이런 명령을 내리는지는 납득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이에 대해선 창천항로의 초반부로, 조조의 젊은시절로 거슬러 올라갈 필요가 있다.



조조는 어릴 적 수정이라는 여자를 만나 단순한 욕정이 아닌 사랑이라는 것을 처음 알아가게 된다. 그리고 그녀에게서 아모레 라는 사랑한다는 말도 처음으로 배우고 말하게 되지만, 후한 말 권력의 실세인 십상시의 한명인 장양의 눈에 수정은 팔려가버린다. 이에 조조는 하늘에 분노하고, 앞뒤가리지 않고 당대 최고 권력자의 집에 쳐들어간다.





하지만 수정은 저항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고서 조조에게 마지막으로 아모레 사랑한다고 말하고서 장양을 치려다 실패한다. 당연히 장양의 부하들에게 바로 활을 맞고 죽게 되고 조조는 겨우 목숨만 부지한채 도망쳤다. 게다가 장양은 그녀의 시체마저 모욕하여 조조의 집에 보내기에 이른다. 니체에겐 적수로 중력의 정령이 있듯이 조조에겐 바로 이 장양이 젊은시절의 행복한 정령같은 수정을 망친 적이 아니었을까. 이렇게 가장 사랑하는 대상을 잃어버린 조조에겐 차라투스트라가 말하는 것처럼 살인이 대단한 것이 아니게 된 것이 아닐까.




하지만 결국 마지막에 조조는 어쩌면 자신이 바로 천하이고 자신을 천하처럼 사랑하면서 스스로를 극복하게 된 것은 아닐까? 앞으로도 계속 창천항로의 조조와 함께 이야기를 풀어내보자.



땅에서 넘어진 자. 그 땅을 짚고 일어나야만 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노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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