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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포쟁이 뚱냥조커 Jul 29. 2019

인문학 두쪽읽기 니체22-MCU스포에세이 캡틴1

슈퍼히어로 이전에 히어로였던 말라깽이.

자유로운 죽음에 대하여.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전집판

119-123 중에서 다수 인용 및 필사

 

모두가 죽음을 대단하게 받아들인다. 그런데도 죽음은 아직도 축제로 승화되지 못하고 있다. 사람들이 이 더없이 아름다운 축제를 벌이는 방법을 아직 배우지 못한 것이다.

나 완성을 가져오는 죽음, 살아 있는 자에게는 가시바늘이 되고 굳은 언약이 될 그런 죽음을 너희에게 보여주겠다.

완성을 가져오는 자는 희망에 차 있는 자. 굳게 언약을 하는 자들에 둘러싸여 승리를 확신하며 자신의 죽음을 맞이한다.

그와 같이 죽음을 맞이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리고 그와 같이 죽어가는 자가 살아 있는 자의 맹세를 축성하는 그런 곳이 아니라면 그 어떤 축제도 열려서는 안 된다!

그렇게 죽는 것이 최선이다. 차선은 전투에 나가 죽는 것, 그리고 위대한 영혼을 낭비하는 것이다.

너희 죽음, 이를테면 도둑처럼 히죽이죽대며 몰래 찾아드는, 그러면서도 지배자라도 되는 양 거들먹거리며 찾아드는 죽음은 전투를 벌이고 있는 자나 승리를 구가하고 있는 자에게는 혐오스럽다.

나 너희에게 내 방식의 죽음을 기리는 바이다. 내가 원하여 찾아오는 그런 자유로운 죽음 말이다.

그렇다면 어느 시점에 나 원할 것인가? 이미 목표를 갖고 있을 뿐만 아니라 뒤따를 상속자까지 두고 있는 자는 바로 그 목표와 상속자를 위해 제때에 죽기를 원한다.

그리고 목표와 상속자에 대한 공경하고 두려워하는 마음에서 그는 생명의 성전에 더 이상 말라빠진 화환을 걸어놓지 않을 것이다.

진정, 나는 밧줄을 꼬고 있는 자와 같이 되고 싶지는 않다. 밧줄을 길게 잡아끌면서 그 자신은 언제나 뒤로 물러나고 있으니 말이다.

자신의 진리를 발견하고 승리를 얻어내기에는 너무 늙어버리게 될 사람들도 많다. 이빨 하나 없는 입으로는 더 이상 진리에 대해 그 어떤 권리도 주장할 수가 없다.

맛이 절정에 이르렀을 때, 헤프게 맛을 보이는 일이 없도록 하라. 오랫동안 사랑받기를 원하는 사람들은 이 점을 알고 있다. ...












/










캡틴 아메리카, 본명 스티브 로저스는 20세기 초반에 뉴욕 브루클린에서 태어나 천식에 걸렸고 스무살이 넘도록 40킬로밖에 되지 않는 말라깽이였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슈퍼맨같은 엄청난 근육질의 슈퍼히어로와는 완전히 반대편에 있는 존재였다. 하지만 그는 슈퍼히어로가 되기 이전에, 이미 히어로였다. 그렇기에 영화 캡틴 아메리카1편 퍼스트 어벤저에서 나온 것처럼 슈퍼솔져 혈청 실험 대상자로 선정될 수 있었다. 이번 글에서는 캡틴이 되기 이전 스티브 로저스와 니체의 접점에 대해서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이번 자유로운 죽음에 대하여 장은 자칫 그동안 니체를 뚜벅뚜벅 읽어온 독자들에게도 혼란과 오해를 불러일으키기 딱 좋다. 니체는 죽음을 설교하는 자들을 자기 신체를 경멸하는 바보들이라 비판하면서 그럴거면 차라리 태어나지 말던가 즉시 그 신체를 떠나라고, 경멸에 가까운 어조로 비판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이제 와서 자유로운 죽음이라니 무슨 소리인가? 니체는 스스로 이런 기초적인 자기모순도 알아채지 못할 만큼 형편없는 철학자이거나 글을 쓰다가 이미 치매에 걸리기라도 한 것일까??


자 이제 숨을 고르고 좀더 천천히 글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니체는 이전에 분명 신체야말로 두뇌에 한정된 이성보다도 더 큰 이성이라고 주장했다. 그렇기에 신체를 경멸하고 죽음을 설교하는 자들은 그야말로 멍청하다고 비판했던 것이다. 그러나 과연 죽음 그 자체를 피할 수 있는 생명체가 있을까. 신화 시절부터 영생이나 불노불사의 존재가 동서양 가리지 않고 끝없이 출몰한다는 것은 역으로 인간이 유한하고 언젠가 죽는 존재이기에 무한을 욕망했다는 것을 반증하지 않던가. 그래서 죽음 자체에 대해서 사유하는 것은 철학자로서 필수적이다. 사르트르도 말했지 않은가. 실로 중대한 철학적 문제는 단 하나. 자살 뿐이라고. 나머진 모두 장난에 불과하다고.


그렇기에 니체는 자기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어린아이, 위버멘쉬의 죽음에 대해서도 회피할 수 없었을 것이다. 위버멘쉬는 신과 같이 죽지 않는 초월적 존재가 절대 아니니까. 그렇다면 지금까지 니체가 숙고한 대로 자기를 극복하는 죽음, 가치를 창조하는 죽음에 대해서 생각했을 것이다. 그렇기에 완성을 가져오고 희망을 가져오는 자들에 둘러싸여 제때에 맞이하는 죽음에 대해 찬양하고 그런 날이야말로 진정한 축제가 벌어져야 한다고 역설한 게 아닐까. 이는 21세기의 존엄사 논쟁에 대해서 예고하는 듯 보이기도 한다.



그리고 이 지점에서 우리는 영화 캡틴 아메리카 1편으로 돌아가서 생각해볼 수 있다. 영화는 시대적 배경으로 2차 세계대전이 한창인 미국에서 시작하고, 동네친구인 로저스와 버키는 자기들도 나치와 싸우기 위해 입대하길 원한다. 하지만 버키와는 달리 브루클린의 말라깽이 로저스는 이미 입대 시험에 체력문제로 여러번 떨어져서 우울한 상태다. 그러나 다행히도 아브라함 박사를 만나 나치를 죽이고 싶냐는 질문을 받자, 나쁜 놈들이 싫을 뿐이라는 답변을 서 박사가 그의 선함을 높이 평가하고 입대 시험에 합격한다.


이런 영화의 초반부부터 스티브 로저스는 니체를 떠올리게 하지 않는가? 니체의 위버멘쉬는 무엇보다도 자기를 극복하는 존재고, 니체 본인도 스스로 약한 몸을 극복하기 위해 끝없이 걸어다니고 여행을 다니며 스스로의 몸에 충실했던 철학자이다. 스티브 또한 40킬로에 천식 홍역 등등 온갖 병을 가진 걸어다니는 종합병동이지만, 그는 한두번도 아니고 7번이나 입대 시험에 떨어졌어도 포기하지 않다가 박사를 만나고 버키와 함께  자기를 극복하는 것에 한걸음 다가간다. 이는 차라투스트라가 머리말에서 길동무를 찾아다니던 모습에 비견되지 않을까


그후 힘들어도 여러 훈련을 받는 와중에 박사는 나치에 맞서는 슈퍼솔져 실험 대상자로 로저스를 선발하려고 한다. 지휘관은 그는 너무 말랐다며 반대하려는 와중에 훈련장에서 사고가 터진다. 실수로 수류탄이 던져진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 그가 왜 슈퍼히어로 이전에 히어로인지 진가가 드러난다.



다들 자기 생명이 아까워서 도망가는 와중에 스티브 로저스는 수류탄을 온 몸으로 감싸안고 모두 피하라고 외치는 것이다. 이러한 희생정신, 자기희생을 감수하는 마음이야말로 동서양을 막론하고 위대한 영웅으로 추앙받은 이들의 공통점 아닐까. 역발산 기개세라고 불리는 엄청난 무력의 소유자인 항우나, 키가 2미터를 넘고 마찬가지로 웅대한 힘을 가져서 후에 이름 자체가 거인의 대명사가 된 골리앗 같은 인물은 시쳇말로 사람을 잘 죽이는 인간백정에 불과할 뿐, 후대에도 기억되고 추앙받을 만한 영웅은 아닌 것이다. 러한 희생의 정신은 이후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작품에서도 영웅의 자격, 덕목으로 매우 중요하게 다뤄진다. 니체도 위의 글에서 말했지 않은가. 밧줄을 길게 잡아끌면서 자신은 뒤로 물러나있는 자가 되고 싶지는 않다고.


그리고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이것이 단지 영화의, 슈퍼히어로라는 장르물 속의 이야기만이 아니라는 것을. 니체의 철학이 단지 철학 속에서만 끝나지 않고 21세기의 세계에도 영향을 미치듯이 말이다. 지금 한국의 현실에서도, 다른 어떤 나라에서도 스스로를 희생해서 타인을 구하고자 하는 이는 충분히 히어로라 불릴 만하다. 니체가 말하는 자유로운 죽음을 기다리는 그런 슈퍼히어로가 항상 우리 곁에서 이미 대기중이라는 것을, 우리는 평상시에는 잘 알지 못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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