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말 대잔치국수주의자-국밥을 어쩌다 부산밀면

때때로 일이 끝난 휴식시간엔 실수가 필요한 국수주의자

by 스포쟁이 뚱냥조커


야간 근무가 끝나면 난 종종 입맛을 잃는다. 낮에 일을 끝내고서 퇴근하고 해가 져가는 모습을 보는 것과는 달리, 야간 근무후 아직 해가 뜨지 않은 새벽녘 퇴근은 종종 모든 의욕을 잃게 만든다. 그래도 어떻게든 온 몸을 움직여서 겨우겨우 퇴근 버스에 몸을 실어놓는다. 다행히 버스는 매일 와준다. 비가 와도 눈이 와도 천둥이 내리쳐도. 버스 기사 아저씨는 밥은 제대로 드시고 운전을 하실까. ...


버스 좌석에 앉는다기보다는 몸을 기대둔 채로 그런 생각을 하다보면 다행히 내 위장도 활한다. 꾸릉꾸릉 거리면서 뭔가를 내놓으라고 아우성친다. 그리고 그 신호는 대뇌의 전두엽까지 빛보다 빠르게 도달한다. 물론 대뇌는 오늘도 나름의 방어기제를 준비해놓았다. 며칠전 밤에는 뷔폐를 갔다오지 않았느냐. 바로 어제 밤에 편의점의 고기고기 도시락을 거하게 해치우지 않았느냐. 미리 사놓은 슈크림 빵을 다 먹어치운게 겨우 두시간 전이란 말이다!


그러나 역시나 소용없다. 니체같은 철학자가 굳이 가르쳐주지 않아도 신체는 정신보다 강하다! 퇴근 버스에서 내리자 이미 항복한 나의 전두엽은 행복한 끼니를 구상하리라. 어차피 집에 가봐야 밥을 차려주는 우렁각시라던가 툴툴거리며 라면이라도 끓여주는 가족따위 애초에 존재하지도 않으니 다른 대안을 찾을 수밖에. 신은 죽어도 신을 염원하는 신앙은 사라지지 않듯이, 가족이 없어도 가족같은 관계를 원하는 욕망은 사라지질 않는다. 그렇기에 배고플때 외로울때 난 종종 가족을 창조한다. 주로 국밥이 30분 동안이라도 나와 같이 가족같은 사이가 되어주기에 알맞은 친구다!


그래서 난 어제도 국밥을 먹었지만 오늘도 국밥을 먹으러 자주가던 국밥집으로 향했다. 다행히 이 집은 역 근처에다가 24시간 운영이라 너무나 마음이 놓였다. 거두절미하고 정말로 위장이 난리치니까 얼른 식탁으로 돌격했다. 헛. 그런데 메뉴표를 보니까 아... 분명히 원래는 국밥이 먹고 싶었는데 아직 손톱만큼 남아있는 이성의 한 조각이 그래도 어제 먹은 메뉴를 똑같이 먹기보단 아직 안 먹어본 메뉴를 먹어보는게 경제적으로 효용이 더 클거라고 속삭인다. 일리가 있다. 그래서 나는 어제먹은 돼지국밥메뉴 바로 옆의 고기국수를 살펴보았다. 그리고 당당히 주문했다.


"여기 밀면 하나요!"


어라 내가 방금 무슨 말을 한걸까... 자자 침착하자 음 분명 나는 국밥을 먹으려다가 아직 안 먹어본 고기국수를 먹어보려고 했다 여기까진 오 케이. 다행인지 불행인지 새벽 5시인데도 손님이 꽤 많은 당 아니 맛집이라서 내가 주문을 철회하려면 30초 아니다 2분 이내로 말하기만 하면 충분히 다시 주문하고도 남는다 30초만 하더라도 물론 충분한 시간이다 스피디한 현대 축구에서는 30초면 골키퍼부터 수비수가 빌드업해서 미드필더 스트라이커까지 골로 연결되는데 충분한 시간이니까. 아 그런데 어차피 중요한 건 돼지국밥 말고 새로운 메뉴를 시켜본다는 거 아니었나? 그러면 어제와 똑같은 육수에 밥 대신 국수면발만 주는 고기국수보다 시원한 얼음육수에 밀로 만든 면을 먹는 부산식 밀면이 더 나은 선택이 아닐까? 에이 근데 자칫 차가운 거 먹다가 집가는 지하철에서 배가 아프면 오 마이 갓 상상만 해도 갑자기 아랫배가 아파오는 듯하다. 안그래도 과민성 대장증후근이 아닐까 스스로 의심되는데 하필 집가는 길에 또 그런 고통을 겪는다고 생각하니 고환이 오그라들것만 같은 공포로 온 몸이 서늘해진다. 그리고 테이블도 서늘해졌다.



하 카이사르여, 주사위는 이미 던져졌도다. 이제는 그대가 루비콘 강을 건너 로마로 진격할 수밖에 없었듯이, 난 이제 이 가여운 밀면을 해치울 수밖에 없는 운명이로구나! 그렇다 비정하게 젓가락을 들어라. 저 살얼음들이 녹기 전에 우리는 아이언맨 슈트와 토니 스타크가 하나가 되듯이 한 몸이 되어야만 한다. 이제 최악의 폭염과 열대야는 지나가고 있지만 아직도 나는 배가 고프다. 준비되었는가? 우리 모두 밀면과 함께 잠시 부산의 광안리 바닷가와 자갈치 시장을 떠올리도록 하자 물론 그 전에 신성하고 거룩하게 가위를 들어야만 할 것이다.




면식을 하시다가 너무 긴 면발이 목에 걸려서 돌아가신 최초의 선구자에게 아멘! 실 난 어릴적에 냉면이 너무나 싫었고 짜장면을 정말정말 좋아했다. 냉면은 양도 적은데 먹다보면 자꾸 목에 걸려서 짜증만 나기 일쑤였지만 짜장면은 곱배기를 시켜서 끊김없이 후루룩 후루룩 먹어도 너무나 잘 넘어가면서 달짝지근한 카라멜 향이 내 온몸을 만족시켜 주었으니까. 허나 냉면에 가위라는 새로운 조합을 알고 나서는 난... 어른의 맛에 눈을 떠버렸다. 냉면이 이렇게 맛있는 줄 어릴 때는 몰랐었다니 아아 나는 그렇게나 많은 죄를 지었구나. 스쳐가는 바람에도 괴로워했구나. 오늘 밤도 면발이 내 위장을 스치운다...





그리고... 아아 나는 면을 먹었으나 면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 대한민국에서 6차나 7차 교육과정을 겪어본 세대라면 다 알만한 한용운의 님의 침묵 시에서 님은 잃어버린 국가일 수도 얻지 못한 사랑일수도 있지만, 더 먹지 못한 밀면일수도 있지 않을까. 쫄깃한 고기와 살얼음어린 밀면의 조화는 그 열대야내내 소금냄새를 내며 절여진 내 몸을 녹여버렸다. 혼밥이란 실로 성스럽고도 거룩한 것이리라. 그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맛 하나에만 집중할 수 있는 시간. 난 고독한 미식가 중 한 명으로서 너무나 행복해졌다.





난 이전에 다른 글에서 나는 다른 사람들이 나를 뭐라고 판단할 지라도 그 어떠한 ~~주의자도 아니라고 말한 적이 있다. 난 진보주의자도 아니고 사회주의자나 무정부주의자도 아니고 유니콘같은 환상의 동물 남자 페미니스트도 아니다 근데 오늘 다시 생각해보니 이전의 내가 틀렸을 수도 있늘 것 같다 나는... 난 바로... 아무말 대잔치국수주의자다 엄밀성이니 논리니 개연성이니 해방되어 내 맘대로 처묵처묵하며 지껄일 때 나는 연인과 춤추는 듯 행복하도다 영어론 쉘 위 댄스? 불어론 불래 부 당세 아베끄 므와? 우리 같이 춤춰보지 않겠는가 함께 비워보지 않겠는가... 그 누구도 아닌 자기 몸을 위해서. 또 한곡 같이 추는 날이 오겠지요...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