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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포쟁이 뚱냥조커 Jun 12. 2019

새벽감성 조커의 회상일기 190603

벤야민의 곱추난쟁이

새벽감성 조커의 회상일기 190603 벤야민의 꼽추난쟁이


 뾰족한 모자를 쓴 난쟁이들이 나를 겨냥하는 시선에 밤의 꿈속에서 내가 뼛속까지 공포심을 느끼자마자 그들은 어느덧 사라졌다. 그런데 낮에 본 창문 안에 살고 있는 사람들과 밤이 되면 꿈속에서 나를 습격할 기회를 엿보는 사람들이 내게는 그다지 다르지 않았다. 나는 남에게 피해를 주고 장난을 일삼는 그러한 무리들, ‘건달’을 알고 있었다. 꼽추 난쟁이도 그들과 한통속이었다. 그러나 그는 내게 접근하지 않았다. 그가 쳐다보면 사람들은 주의력을 잃는다. 그가 나타나면 나는 헛수고를 했다. 모든 사물은 오그라들었다. 그 우중충한 관리인이 하는 일이란, 내가 사물에 다가갈 때마다 망각의 창고에 저장하기 위해 거기서 절반을 회수해가는 일 뿐이다. 꼽추 난쟁이는 그렇게 자주 나타났다. 다만 나는 그를 한 번도 보지 못했다. ...  사람들은 죽어가는 사람의 눈앞에 ‘전 생애’가 스쳐 지나간다고 말하는데, 그것은 난쟁이가 우리 모두에 대해 갖고 있는 상들로 이루어져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사기의 전신인 연속 사진처럼, 난쟁이는 항상 나를 보았다. 그리고 벌써 오래전에 물러나 있었다. 그러나 가스버너의 지직거리는 소리 같은 그의 목소리가 세기의 문턱 너머로 나에게 속삭이고 있다. 


-발터 벤야민. 베를린의 유년시절(최성만 역) 중에서 발췌.



 며칠전에 벤야민의 독특한 역사철학에 대해 새로운 해석을 시도하는 발표회에 구경을 다녀왔다. 아쉬운 점도 있었지만 대체적으로 시간내서 가길 잘한 멋진 발표회였기에, 기억이 흐려지기 전에 오늘은 그 중에서도 벤야민이 중요하게 여긴 상징 중 하나인 곱추 난쟁이에 대해 이야기해볼까. 


 서양에서 난쟁이는 여러가지 신비한 구전 설화들로 다양한 이미지로 알려졌다. 그 중에서도 대표적인 이미지로 흔히 생일날 케이크를 먹기 직전에 난쟁이가 잠깐 사람들의 주의를 다른곳으로 분산시키고 휙 바람같이 나타나서 케이크를 엎어버리는 장난을 치고 휙 사라져버리는, 그런 말썽쟁이의 이미지가 강하다고 한다. 그 외에도 손재주가 좋아서 일반적으론 만드는 게 불가능한, 만화의 도라에몽같이 마술적인 물건을 만들어 낸다거나,  몸이 작고 왜소하기 때문에 힘이 약하지만 움직이면 매우 날쌔기에 눈으로 그 움직임을 포착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고 한다. 이쯤 되면 난쟁이가 현실의 어떤 존재에 대한 비유, 상징인지 과감히 추측해 볼만도 하다. 그것은 바로 민중 또는 대중mass이다. 


 민중은 평소에 약하고 아무것도 아닌 존재처럼, 심지어 모 영화의 표현을 빌리면 개돼지처럼 보이지만 한번 움직이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이 재빠르고, 높으신 분들의 잔칫상에 재를 뿌리는 장난질을 치며 심지어 다들 불가능다고 생각하던 마술을 현실에 구현하기도 한다. 그렇기에 동서양을 막론하고 민중은 하나의 희망이자 공포이며 이중성을 지닌 존재였다. 이러한 민중/대중의 이중성에 대해 고찰한 철학자로는 대표적으로 스피노자가 있으며 현대 철학으로는 알튀세르의 제자 에티엔 발리바르가 대중들의 공포/맑스주의 이전과 이후의 철학 이라는 이름으로 멋드러지게 써낸바 있다.


 그런데 벤야민은 이 민중의 상징인 난쟁이에 곱추라는 설정을 부가했다. 이건 대체 왜일까? 등이 굽어서 제대로 서지 못하는 민중? 이것은 벤야민이 살았던 시대. 독일에서 파시즘이 발흥하고 전후 경제 불황으로 힘들어하던 독일대중이 스스로 히틀러를 총통으로 숭배했던 2차 대전과 분리 불가능한 맥락이 아닐까.


 허나 그렇다고 해서 벤야민은 꼽추 난쟁이를 단순히 부정적으로만 본 것은 아니다. 만약 그랬다면 벤야민이 나치를 피해 피레네 산맥을 넘던 중 음독자살하기 직전에 남긴 최후의 글. 역사의 개념에 대하여 1번 테제에서 굳이 꼽추 난쟁이에 대해 말하진 않았을 것이다. 이 역사철학 테제는 어떻게 해석할지 백년 가까이 사람들을 매혹시키면서도 혼란의 대상이었다. 나는 이에 대해서 다음 회상일기에서 영화 하나와 관련하여 다시 벤야민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벤야민의 말을 따르자면, 우리는 난쟁이를 잘 알지 못하지만, 난쟁이는 항상 우리를 보고 있다. 그리고 그의 목소리가 세기를 넘어서 우리에게 속삭이고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역사의 개념에 대하여(1940) 발터 벤야민



1. 사람들 말에 의하면 어떤 체스 자동기계가 있었다고 하는데, 이 기계는 어떤 사람이 체스를 두면 그때마다 그 반대 수를 둠으로써 언제나 이기게끔 만들어졌었다. 터키 의상을 하고 입에는 담뱃대를 문 인형이 넓은 책상 위에 놓여진 체스판 앞에 앉아 잇었다. 거울로 장치를 함으로써 이 책상은 사방에서 훤히 들여다볼 수 있다는 환상을 불러일으키게 하였다. 그러나 실제로는 체스의 명수인 꼽추 난장이가 그 책상 안에 앉아서는 줄을 당겨 인형의 손놀림을 조종하였다. 우리는 철학에서도 이러한 장치에 대응되는 것을 상상할 수가 있다. 항상 승리하게끔 되어 있는 것은 소위 <역사적 유물론>이라고 불리어지는 인형이다. 이 역사적 유물론은, 만약 그것이 오늘날 왜소하고 못생겼으며, 그렇기 때문에 어떻게 해서라도 그 모습을 밖으로 드러내어서는 안되는 신학을 자기의 것으로 이용한다면, 누구하고도 한판 승부를 벌일 수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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