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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포쟁이 뚱냥조커 Aug 18. 2019

인문학 두쪽읽기 니체32-학자란? 동네변호사 조들호1

깡패같은 조들호와 약자의 지킴이인 조들호


학자에 대하여 211-214p


(니체 전집 번역본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중에서 다수 인용 및 필사함.)



 언젠가 누워 잠을 자고 있을 때였다. 양 한 마리가 다가와 내가 머리에 쓰고 있던, 담쟁이덩굴을 엮어 만든 관을 먹어치우고 나서 말했다. "차라투스트라는 더 이상 학자가 아니다."

 양은 그렇게 말하고 도도하게 거들먹거리며 사라졌다. 어떤 아이가 내게 들려준 이야기다.

 나는 여기 어린아이들이 뛰어 노는 곳, 허물어진 담 옆, 엉겅퀴와 빨간 양귀비꽃 사이에 누워 있기를 좋아한다.

 어린아이들과 엉겅퀴 그리고 빨간 양귀꽃에기는 나 아직 학자다. 저들은 순진무구하다. 악의가 있을 때조차도 그렇다.

 그러나 양들에게는 나 더이상 학자가 아니다. 나의 운명이 원하는 것이 그것이니 내 운명에 축복이 있기를!

 사실은 이러했다. 나 학자들이 살고 있는 집을 뛰쳐나온 것이다. 그러고는 문을 등 뒤로 힘껏 닫아버렸던 것이다.

 내 영혼은 허기진 배를 하고 너무나도 오랫동안 저들의 식탁 곁에 앉아 있었다. 나 저들과는 달라서 호두를 까듯, 그렇게 깨치는 일에 길들여지지 않은 터였다.

 나 자유를 사랑하며 신선한 대지를 감싸고 있는 대기를 사랑한다. 그리고 저들 학자들이 누리는 존엄과 존경 위에서 잠들기보다는 차라리 황소 가죽 위에서 잠을 청하겠다.

 나 내 자신의 생각들로 너무 달궈져 화상을 입고 있다. 그 때문에 숨을 제대로 쉴 수 없을 때가 자주 있다. 그러니 먼지투성이인 모든 방을 뛰쳐나올 수밖에.

 그러나 저들 학자들은 시원한 그늘 아래 시원하게 앉아 있다. 저들은 무슨 일에서나 관망자로 남기를 원하며, 태양이 작열하는 뜨거운 계단에는 앉지 않으려고 몸을 사린다.

 길에 서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우두커니 바라보고 있는 자들처럼 저들 또한 그렇게 기다리며, 다른 사람들이 생각해낸 사상들을 입을 벌리고 바라본다.

 손으로 잡기라도 하면 저들은 반사적으로 밀가루 부대처럼 온통 먼지를 일으킨다. 그러나 그 누가 짐작하겠는가? 저들의 먼지가 곡물에서, 그리고 여름 들녘의 황금빛 환희에서 유래했음을.

 저들이 지혜롭다고 자부하면서 내놓는 하찮은 잠언이나 진리는 나를 오싹하게 만든다. 늪에서 기어나온 것처럼, 저들이 말하는 지혜에서는 자주 퀴퀴한 냄새가 나니, 사실 나는 일찍이 저들의 지혜에서 꽉꽉대는 개구리 소리를 듣기까지 했다!

 저들은 능란하다. 영리한 손가락까지 갖고 있다. 저들의 복잡함. 그 앞에 나의 단순함이란 어디 이야깃거리가 되겠는가! 저들의 손가락은 실 꿰는 법, 매듭 짓는 법에 천 짜는 법 모두를 알고 있다. 이렇게 해서 저들은 정신이라는 양말을 뜨고 있는 것이다!

 저들은 훌륭한 시계다. 태엽을 제대로 감기만 하면 된다! 그러면 저들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시간을 알리며 보잘것 없기는 하지만 소리까지 낸다.


...













/







니체에 대해서 한번 제대로 알아본 사람들은 다들 알고 있는 놀라운 진실 중 하나는, 그가 겨우 25세에 바젤 대학에서 연금을 받는 교수 직위를 받았다는 것이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책은 니체가 스스로도 자기의 책 중 자서전 격인 '사람을 보라' 에서 차라투스라는 내가 인류를 위해 주는 위대한 선물이라고 말했다시피 자신의 철학을 집대성한 성숙기의 저작이지만, 니체는 이렇게 자신의 철학을 완성시키기 전에 젊은 시절에는 그야말로 가장 기대받는, 고전 문헌학자중의 유망주였다. 니체의 첫 저작으로 인정받는 비극의 탄생 부터가 아폴론적인 예술과 디오니소스적인 예술을 다루는, 그리스 고전에 대한 니체의 재해석이니까.


21세기인 지금 인문학의 위기니 뭐니 말이 많지만, 우리 시대의 학자들이 고전으로 인정하고 숭상하다시피 하는 과거 19세기, 사실 이제 자본주의가 시대의 흐름으로 자리잡는 마당에 돈이 될리가 없는 인문학 학자를 위한 자리가 많을리가 없다. 그런데 그 드물고 귀한 연금받는 교수 직위를 니체는 겨우 25세에 스위스 바젤 대학의 다른 교수들로부터 인정받은 것이다. 19세기의 유럽 학계가 아무래도 지금보다도 보수적일 가능성이 높을 수밖에 없는 폐쇄적 공동체인데, 그런 곳에서 이런 파격적인 대우를 결정할 만큼 니체의 천재적인 재능과 악마적 역량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허나 니체는 학문을 업으로 삼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부러워 할 만한, 아니 공부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라도 다들 부러워하고 질투할 만한 연금받는 교수 직위를 그만두고 방랑의 길을 나섰다. 아마도 목사집안인 니체의 가족을 비롯한 친구들이 기를 쓰며 니체를 말렸을 것이다. 대체 니체는 왜 그 좋은 직위를 그만두었을까? 아마도 이번 학자에 대하여 편에서 차라투스트라는 학자들의 가치에 대해 평가하며 스스로의 과거를 해석하는 게 아닐까.


니체는 말한다. 자신이 학자라는 증명인 화관을 양이 먹어 치우는 것은 자기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고. 자신은 지금도 순진무구한 어린아이에게는 여전히 학자이며, 양에게는 학자가 아니라고. 보통 우리는 낯선 자리에서 스스로를 소개할때 회사원이라던가 선생님이라던가 하는 방식의, 직업으로 나의 고정적인 정체성을 밝히지만 차라투스트라는 분명 그런 방식과는 다르다.


그는 자신과 타인 사이의 관계에 따라 자신은 학자이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고 말한다. 그리고 나서는 학자들 무리를 부정적으로 평가한다. 니체 자신은 자신의 생각들로 달궈져 화상을 입을 정도의, 마치 활화산과 같이 철학과 사상을 화산재 내뿜듯 창조해내는 존재인데... 그런 존재가 엄숙한 척 몸만 사리고 관망만 하려 드는 학자들 사이에 있으니 도저히 숨도 제대로 쉬기 힘들 수밖에. 그리고 난 바로 이런 이유로 학자들 사이를 뛰쳐나온 매력적인 캐릭터를 하나 알고 있다. 이제는 2부도 완결되고 공중파에서 드라마로도 만들어진 웹툰, 동네변호사 조들호다.



이 조들호는 1화에 첫 등장부터 비범하다. 깡패들이 잔뜩 진치고 있는 사채업자 사무실에 나타나서, 별 고민도 없이 깡패를 자기 서류가방으로 후려버린다. 첫 대사도 "니 눈에는 내가 사채 쓰러온 것처럼 보이냐" 라고 뱉어버리는데 웹툰 제목만 아니었으면 한국 영화에사 동네 조폭 중간보스A 쯤 되는 흔한 단역이 쓸법한 대사가 아닌가. 그러나 이렇게 깡패 앞에서는 깡패같은 조들호는 자기가 진짜 해야될 본업을 해야 되자 또 다른 사람이 된다. 차라투스트라가 자신은 아이에겐 학자이지만 양에게는 학자가 아니라고 말하는 것처럼.




이렇게 법 전문지식을 배운 법조인이 아니면 할 수 없는 변호사로서의 법적 상담을 할 때는 아까 10초 전의 깡패같은 조들호와는 또 다른 사람이 된다. 의뢰인인 석다은 할머니의 돈을 떼먹으려고 했던 깡패는 처음엔 변호사라고 해봤자 약해빠진 책상굴림이나 하던 놈이니까 겁 좀 주면 도망갈 거라고 생각했지만, 조들호의 법적 지식으로 인해 오히려 자기 편이라고 생각했던 사무실 깡패들까지 얼른 돈 돌려주라고 등을 돌려버린다.




결국 조들호는 처음 방문한 목적대로 깡패들로부터 미수금을 받는데 성공한다. 그런데 재밌게도 조들호는 자신을 깡패들에게 소개할때 서울 중앙지부 강력계 검사에 있다가 지금은 변호사로 개업했다고 말한다. 조들호는 왜 그 위세좋고 대한민국 누구나 부러워할만 직업인 검사를 그만두고 허름한 사무실에서 변호사를 하고 있을까? 그야말로 악폐습이지만 한국 사회의 관습, 아니 상식대로라면... 서울중앙 검사를 했던 엘리트 변호사는 전관예우를 받아가며 대기업 법무팀이나 로펌에서 떵떵거리는게 보통 아닌가? 혹시 조들호 그도 니체가 학자들 사이에서 숨이 막혔다고 하는 것처럼, 검사라는 고위 공직자 사회에서 도저히 활화산같은 자신을 참아내기 힘들고 숨이 막혔던 건 아닐까...?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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