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스포쟁이 뚱냥조커 Aug 20. 2019

인문학 두쪽읽기 니체33-변호사 조들호와 의료권력

의사라는 지식 권력의 정점에 대항할 수 있을까.

학자에 대하여 212-214p


(니체 전집 번역본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중에서 다수 인용 및 필사함.)

...


 사실은 이러했다. 나 학자들이 살고 있는 집을 뛰쳐나온 것이다. 그러고는 문을 등 뒤로 힘껏 닫아버렸던 것이다.

...

 나 내 자신의 생각들로 너무 달궈져 화상을 입고 있다. 그 때문에 숨을 제대로 쉴 수 없을 때가 자주 있다. 그러니 먼지투성이인 모든 방을 뛰쳐나올 수밖에.

 그러나 저들 학자들은 시원한 그늘 아래 시원하게 앉아 있다. 저들은 무슨 일에서나 관망자로 남기를 원하며, 태양이 작열하는 뜨거운 계단에는 앉지 않으려고 몸을 사린다.

 길에 서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우두커니 바라보고 있는 자들처럼 저들 또한 그렇게 기다리며, 다른 사람들이 생각해낸 사상들을 입을 벌리고 바라본다.

 손으로 잡기라도 하면 저들은 반사적으로 밀가루 부대처럼 온통 먼지를 일으킨다. 그러나 그 누가 짐작하겠는가? 저들의 먼지가 곡물에서, 그리고 여름 들녘의 황금빛 환희에서 유래했음을.

 저들이 지혜롭다고 자부하면서 내놓는 하찮은 잠언이나 진리는 나를 오싹하게 만든다. 늪에서 기어나온 것처럼, 저들이 말하는 지혜에서는 자주 퀴퀴한 냄새가 나니, 사실 나는 일찍이 저들의 지혜에서 꽉꽉대는 개구리 소리를 듣기까지 했다!
 
 저들은 능란하다. 영리한 손가락까지 갖고 있다. 저들의 복잡함. 그 앞에 나의 단순함이란 어디 이야깃거리가 되겠는가! 저들의 손가락은 실 꿰는 법, 매듭 짓는 법에 천 짜는 법 모두를 알고 있다. 이렇게 해서 저들은 정신이라는 양말을 뜨고 있는 것이다!

 저들은 훌륭한 시계다. 태엽을 제대로 감기만 하면 된다! 그러면 저들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시간을 알리며 보잘것 없기는 하지만 소리까지 낸다.

 맷돌처럼, 절굿공이처럼 저들은 일을 한다. 낟알을 던져주기만 하면 된다! 그것을 잘게 빻아 하얀 가루로 만드는 법을 이미 알고들 있으니.

 저들은 서로를 가까이에서 감시하며, 서로를 믿지 못한다. 잔꾀가 많은 저들은 절름발이 지식을 지닌 자들을 기다린다. 거미가 먹이를 기다리듯이.

 저들이 조심스럽게 독을 조제하는 것를 나 허구한 날 보아왔다. 그럴 때마다 저들은 손가락에 유리 장갑을 끼고 있었다.

 저들은 주사위로 농간을 부릴 줄도 안다. 땀을 흘릴 정도로 아주 열심히 놀이에 몰두하고 있는 저들을 나는 본 적이 있다.

 우리는 서로에 대해 낯설고, 저들이 말하고 있는 덕, 그것은 저들의 위선과 주사위 농간보다 한층 더 내 취향에 거슬린다.

 내가 저들 곁에 살았다고는 하지만 실은 나 그때 저들 위에 살고 있었던 것이다. 저들이 나를 싫어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저들은 저들의 머리 위에서 누군가가 걷고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저들의 머리와 나 사이에 이렇듯 나무토막과 흙 그리고 오물을 끼워 넣었던 것이다.

 저들은 이렇게 해서 나의 발소리를 잠재웠다. 그 후 지금까지 나는 누구보다도 많이 배웠다는 자들에게 제대로 경청되지 않았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지니고 있었을 그런 결함과 약점을 저들은 자신들과 나 사이에 끼워 놓았던 것이다. 그러고는 그것을 "방음층"이라고 부르고 있지

 그렇지만 나는 나의 사상을 품은 채 여전히 저들의 머리 위를 거닌다. 그리고 비록 내가 내 자신의 과오를 다리 삼아 걷게 될지라 나는 변함없이 저들과 저들의 머리 위에 있게 되리라.

 평등하지 않은 것이 사람이기 때문이다. 정의가 말해주고 있는 것이 그것이고, 따라서 내가 소망하고 있는 것, 저들에게는 그것을 소망할 권리가 없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









지난 글에 이어 니체는 학자들, 지식-권력집단에 대해 가차없는 비판을 가한다. 니체 자신은 스스로의 생각으로 달궈져 화상을 입는다고 표현할 정도로 사유의 용광로 속으로 들어가지만, 저들 학자들은  시원하게 관망이나 하고 몸을 사릴 뿐이며, 하찮은 잠언이나 진리를 외우면서 스스로 지혜롭다고 자부, 아니 자만한다.


게다가 그들은 이미 태엽만 감아주면 항상 오차도 없이 돌아가기만 하는 시계나 다름없다. 분명 학자란 새로운 지식을 창조해야 하는 존재이건만, 그저 보던 책만 보고 하던 공부만 계속 하며 태만한 공무원처럼 시간을 보낼 뿐인 것이다. 이러니 니체는 자신이 저 학자들 곁에 살았었지만 실은 저들 위에 살고 있었고, 그래서 저들이 나를 그렇게나 싫어했다고 밝힌다. 이 말이 단순히 허풍이나 정신승리가 아닌 것은 저번 글에서 말했듯이 니체는 이미 25세에 학계에서 연금받는 교수직을 제안받았다는 진실 때문이리라.


우리는 이런 앎, 지식이라는 것에 대해서 대단히 이중적인, 양가적인 마음을 흔히 품는다. 기레기나 판레기 같이 흔히 배웠다는 먹물들을 쓰레기에 비유하며 그들의 능력과 지식을 폄하하기도 하지만, 또한 다들 끝없는 영어공부와 자격증 시험 등등 자기계발에 시달리며 어떻게든 자기의 지식 수준을 더 높여서 인정받으 난리인게 21세기 무한경쟁 각자도생으로 요약되는 대한민국의 거부할 수 없는 현실 아니겠는가. 이렇게 아는 것이 곧 힘이라는, 지식과 권력이 한몸인 사회의 피라미드 안에서도 꼭대기 최상층은 역시 대학입시 결과가 말해주듯이 의사, 즉 의료권력이다. 그리고 동네변호사 조들호 2화는 바로 이 현대사회의 지식 중의 지식-권력인 의료권력에 대한 이야기이다



조들호는 한때 서울중앙 검사였고 지금도 변호사라는 지식 권력을 가지고 있음에도, 이렇게 많은 물리적 힘들 앞에서는 누구든 잠시나마 쫄아드는 마음이 들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런 깡패의 물리적 힘 외에도 사람들이 다들 찾아가게 되면 대부분 머리부터 숙이는 곳이 대한민국에는 딱 두군데 있다. 바로 검찰과 병원이다.


 허나 한국사회에서 검찰 내부의 권력다툼이나 우병우로 대표되는 정권을 위한 충성경쟁과 부패 등등 이제는 그 문제가 많이 드러났기에, 한 법학자의 표현을 빌리자면 불멸의 신성가족, 그들만의 성역이 허물어져가고 있는 검찰과는 달리, 병원과 의료권력은 여전히 공고하며 아직도 무너질 기미도 잘 보이지 않는다. PD수첩 등에서 드러난 것처럼 의사가 아닌 간호사의 대리수술이나 술먹고 진료나 수술을 하는 등등의 상식 이하의 불성실한 모습이 드러나도 사들은 여전히 그들의 견고한 카르텔로 수술실에 cctv설치조차도 거부한다. 조들호 2화에서 환자 가족을 대하는 의사의 모습은 바로 이런 의료권력 자체가 아닐까.



"학생, 말한다고 뭘 알어?"


의사의 저 말은 분명히 진실을 담고 있다.  한 의대생이 의사가 되기까지 10년 넘게 공부한 엄청난 양의 직간접 지식은 단순히 환자의 가족에게 설명해준다고 해서 바로 알아들을 수 있을 만큼 쉽기는 어려울 것이다. 허나 이 의사는 그 지식 이상으로 인간으로서 수준 이하다. 아닌가? 아에 수술이 잘못되면 환자가족의 면회 상담신청도 거부하고 면피하는 일부 의사에 비하면 그래도 양심이 있는 편이라고 해야 할까. 결국 의뢰자의 부모님은 사망했고, 심지어 이 의사는 환자의 직계 가족인 딸 몰래 다른 친척과 보상 밀실합의마저 하려고 한다.


다행히도 합의를 하기 직전에 지나가던 담임 선생님이 말해줘서 이 밀실합의는 들키고, 의사는 대충 마무리해버리고 싶었지만 이 일은 결국 법원까지 가게 된다. 앞에서 의사는 결국 자신을 포함한 병원의 잘못으로 환자가 사망했기에 환자의 가족이 자신에게 먼저 대들고 멱살을 잡자 니가 먼저 법적으로 잘못한거다 라는 보통 상식적인 수준의 법 지식은 있었지만, 이런 세세한 의료법에 대한 지식은 아무래도 알지 못했던 것 같다. 물론 사실 조들호조차도 의료법을 다 외우고 다니지는 않지만, 의사는 조들호에게 일침을 먹는다.



이는 어쩌면 의료권력이나 법 권력 같은 고등한 지식권력의 소유자에게도 틈이 있지만, 그 틈은 더 높은 지식으로만 극복된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무슨 3류 드라마에 나오는 것처럼  일자무식의 주인공이 어쩌다가 행운과 인맥에 의지해서 모든 난제들을 척척 풀어나가는 스토리텔링은 이제 21세기에 맞지 않는 것이다. 그런 스토리는 20세기 구 무협소설의 시대에 끝이 났듯이, 지금 시대에 의료권력이나 법조인의 권력을 극복하려면 결국 더 많은 지식, 더 많은 공부가 필요할지도 모른다. 피노자가 말했듯이, 무지는 논거가 될 수 없다. 사람들이 그 어떤 무지한 행태를 보이더라도, 슬퍼하거나 저주하거나 조롱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인식해야만 한다...


또한 여기에 하나 더해서, 국제경제와 금융상품에 대한 공부가 더더 필요해지는 세계가 되고 있다. 노무현의 유산 중 하나인 로스쿨은 분명 그런 시대에 대응하기 위한 것일텐데, 과연 로스쿨이 도입된지도 10년이 넘었는데 시대는 그렇게 가고 있을까. 아니면 푸코 같은 철학자가 말한대로 지식권력은 20세기 이후로 더욱 서로 결탁하고 밀접한 관계를 맺어서 권력의 미시물리학이라 불릴만한 새로운 체제를 만드는 중일까... 나야말로 더 공부가 필요하다... 또한 공부를 위해서라도 진정한 휴식도... 나뿐만이 아니라 모두에게.






P.S. 니체가 사람이라면 누구나 지니고 있을 결함과 약점이라고 말한 '방음층'의 원어는 무엇일까. 더 탐구가 필요하다. 결국 이럴 때마다 독일어 원전의 지식이 필요하다...

작가의 이전글 인문학 두쪽읽기 니체32-학자란? 동네변호사 조들호1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