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정같은 소리하고 있네 라는 소설이 한때 히트를 치고 영화로도 만들어졌었다. 뭐 그 뒤로도 계속 인기가 있고 후속작이 나왔는지는 모르겠지만, 5년 전쯤 한창 열정 열정 강요하던 시대에 하나의 카운터펀치로, 시원한 사이다같이 청량감을 주는 제목이 아닐 수 없다. 내가 좋아하는 장강명의 데뷔소설 표백 같이 열정에 대해 좀더 딥 다크한 관점으로 바라보는 글도 좋지만, 때때로 우리는 사이다처럼 뻥 뚫리는 해방감을 갈구하지 않던가?
이런 열정같은 소리하고 있네 라는 제목을 패러디해서 난 이번 글을 집밥같은 소리하고 있네 라고 지어봤다. 집밥을 가족과 함께했던 소중한 추억? 그런건 참 드라마에나 나오는 서울에 2층집 주택을 소유하고 청소와 빨래를 대신해주는 가정부가 있을 경우에나 가능한 환상이 아닐까?마치 영화 기생충에 나오는 것처럼 말이다. 그 영화에서도 원래 일하던 가정부 분이 해고되니까 단 일주일만에 그 좋은 저택이 난장판이 되어버린다. 사실은 집밥이란 상당한 열정이 필요한 가사 노동이니까 말이다. 나처럼 2년 내내 군대 식당에서 밥만 해본 경험자는 아니라도, 한 일주일만 자기 밥을 자기가 집에서 차려먹은 경험만 있다면 집에서 밥을 만들어준다는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다들 알지 않는가?지금도 여전히 돈에 비하면 노동은 쉽게 무시당한다. 그 형태에 상관없이.
며칠전 만들어 먹은 소시지 계란볶음밥. 맛있지만 귀찮다...
집밥 열풍은 어디서부터 언제부터일까. 물론 21세기 들어서 1인 가구의 증가는 세계적인 트렌드다. 하지만 한국적인 맥락에서 본다면 역시 수년전부터 사업가로 승승장구하고 계시고 얼마전 유튜버로 순식간에 200만을 찍어버린 백종원의 티비프로 집밥 백선생이 그 시초가 아닐까. 마치 큰 힘 안 들이고도, 외부 식당처럼 위생에 대한 의문이나 가격에 대한 부담 없이도 집에서 충분히 맛있는 밥을 먹을 수 있다는 그런 환상. 만능 간장이니 하는 신비한 백종원 레시피가 전파되면서 그 집밥이라는 환상은 마치 진리처럼 대한민국을 휩쓸었다. 하지만 과연 지금도 그 만능 간장을 매번 만들어 먹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아무리 한국인도 밥과 김치외에 다른게 먹고 싶은 날이 있는데 하물며 간장같은 센 조미료에 물리지 않는 사람이 있을 수 있을까...
바로 어제 먹었던 뼈다구 해장국. 매우 든든했다.
그래서일까 집밥 열풍이 대중매체를 타고 한국 전체로 퍼지는 와중에 내가 주로 눈팅하는 남초 축구 커뮤니티에서는 또 반대의 경향이 나타났다. 집밥에 대한 카운터. 그것은 바로 국밥이었다. 원 글을 퍼오기엔 상당한 욕설과 비속어도 있기에 나름 요약하자면, 밖에서 쓸데없이 이상한 음식 먹는다고 폼잡고 외식하지 말고, 오천원짜리 국밥 하나면 뜨뜻한 국물에 고기에 깍두기까지 주니 굉장히 합리적이고 만족스럽지 않냐는 글이었다. 그후 요상할 정도로 사람들이 각종 국밥을 먹고 인증하면 많은 추천을 받고 베스트 글로 쉽게 올라갔다.
월요일에 고기국수를 먹다가 밥도 말아 먹어버렸다... 국밥 이 너의 마성이란...
심지어 국밥 사진이 너무 많이 종합 베스트에 올라오자 여기가 XX 코리아 사이트인지 국밥 코리아 사이트인지 모르겠다는 자조적인 글이 또 베스트를 갈 지경이 되었다. 심지어 그런 글조차 마지막엔 자기가 먹은 국밥 사진을 끼고서... 꼭 거기가 아니더라도 내가 눈팅하는 상당수의 남초 커뮤니티에서 국밥집 방문사진은 10년 전에 비하면 실로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고 베스트에 자주 오는 현상을 나는 체감했다. 어쩌면 이는 만들어먹는 집밥에 대해서 국밥이라는 대항 문화, 카운터 컬쳐를 상징으로 삼아 남자들이 집단적으로 무의식적으로 저항한 것은 아니었을까?
나의 소울푸드 그 자체 신성한 그 이름 순대국밥...
뭐 당연하지만 내 말에 대단한 근거는 없고 그저 집밥에 대해서 생각하다보니까 다소 엉뚱한 쪽으로 생각이 튀다보니 이런 글이 나왔다.그치만 나처럼 따로 집밥을 해줄 가족이 없는 사람에겐 집밥에 대한 환상 자체가 생길수 없으리라. 자기가 해먹는 집밥이란 재료사러 마트에 가는 것부터 음식 간보고 마지막 설거지까지... 참으로 귀찮음 그 자체이니까.여성시대니 쭉빵이니 하는 여초 커뮤니티는 어떤지 궁금하지만 아쉽게도 나는 가입부터 막혀 있기에 아쉬울 따름. 허나 꼭 직접 보지는 못해도 남자든 여자든 가사노동이 상당한 열정과 에너지가 필요한 작업이라는 점은 똑같이 느끼지 않겠는가. 마침 오늘은 대다수가 고대하던 불금이다. 모두에게 집밥이라는 천상계의 환상이 아닌 국밥이라는 대지의 행복감이 가득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