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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포쟁이 뚱냥조커 Sep 02. 2019

인문학 두쪽읽기 니체41-신암행어사 리뷰7.계월향과방자

방자와 계월향 덕분에 건강을 되찾고 있는 자. 문수

건강을 되찾고 있는 자 356p

 

1.

동굴로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어느 날 아침, 차라투스트라는 미친 사람처럼 잠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무섭게 소리를 내지르고는 누군가 아직 잠자리에 누워서 도무지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고 있다는 몸짓을 했다. 차라투스트라의 소리가 울려퍼지자 기겁을 하고 놀란 그의 짐승들이 달려왔고, 차라투스트라의 동굴 가까이에 있던 모든 동굴과 은신처에서 온갖 동물들이 놀아 달아났다. 다리 달린 것들과 날개 달린 것들이 각각 생긴 대로 날거나 날개를 푸드덕거리거나 기거나 뛰어오르면서, 차라투스트라는 이에 마음쓰지 않고 다음과 같이 말했다.

 

“심연의 사상이여, 나의 내면 깊은 곳에서 올라오라! 잠꾸러기 벌레여, 나 너의 수탉이자 새벽이니. 일어나라! 일어나라! 나의 소리는 닭의 울음소리가 되어 너를 깨우고 말리라!

네 귀에 채워진 사슬을 풀라. 귀를 기울여라! 나 네 소리를 듣고 싶구나! 일어나라! 일어나라! 무덤들조차도 귀기울기에 족할 만큼 뇌성이 울리고 있으니!

그리고 눈에서 잠을, 그리고 온갖 어리어리한 것과 캄캄한 것을 씻어내도록 하라! 눈으로도 내 말을 들어보도록 하라! 눈으로도 내 말을 들어보도록 하라. 나의 소리는 타고난 장님까지도 고쳐주는 영약이니.

그리고 일단 깨어나면 영원히 깨어 있어야 하리라. 계속해서 주무시라고 말씀드릴 생각에서 이미 잠들어 있는 증조모들을 깨우는 것은 내 방식이 아니다!

몸을 뒤척이고 기지개를 펴가며 뭘 그리 웅얼거리고 있는가? 일어나라! 일어나라! 웅얼거리지만 말고, 말을 좀 해보아라! 신을 믿지 않는 자, 차라투스트라가 너를 부르고 있으니!

생의 대변자이자 고뇌의 대변자이며 둥근 고리의 대변자이기도 한 나 차라투스트라가 너를, 나의 더없이 깊은 심연의 사상을 부르고 있으니!

됐다! 오고 있구나. 올라오는 소리가 들리는구나! 나의 심연은 말문을 열고, 나 나의 마지막 깊은 곳을 백일하에 드러낸 것이다!

됐다! 가까이 오라! 손을 달라! 아! 놓아라! 아아! 메스껍다, 메스껍다, 메스껍다. 슬픈 일이로다.“

 

2.

말이 끝나기도 무섭게 차라투스트라는 돌연 시체처럼 그 자리에 쓰러져 시체라도 되듯 오랫동안 꼼짝하지 않았다. 다시 정신이 들기는 했지만, 그는 얼굴은 창백했고, 몸은 떨고 있었으며 그렇게 누워 오랫동안 먹고 마시려 하지를 않았다. 이런 상태에서 그는 이레를 보냈다. 그 동안 독수리가 먹을 거리를 구하기 위해 날아간 일이 있기는 했지만, 그의 짐승들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그의 곁을 떠나지 않았다. 독수리는 자신이 물어온 것과 낚아채온 것을 차라투스트라의 잠자리 위에 놓았다. 이렇게 하여 차라투스트라는 노란 딸기와 빨간 딸기, 포도송이, 장미사과, 향기로운 푸성귀와 솔방울 사이에 누워 있게 되었다. 그리고 그의 발 밑에는 독수리가 목동에게서 힘겹게 빼앗은 어린 양 두 마리가 사지를 뻗고 있었다.

이레가 지나서 차라투스트라는 마침내 잠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러고는 장미사과를 손에 들고 향기를 맡아보았다. 향기가 마음에 들었다. 그러자 그의 짐승들은 그에게 말을 건넬 때가 왔다고 믿게 되었다.

 

짐승들이 말했다. “오, 차라투스트라여, 그대는 지난 이레 동안 녹초가 되어 눈을 감고 누워 있었지. 이제 자리를 털고 다시 일어나지 않으시겠는가?

동굴 밖으로 나가보시라. 세계가 화원이라도 되는 양 차리고 그대를 기다리고 있으니. 바람은 그대에게 달려오려는 짙은 향기를 가지고 희롱하고 있고. 시냇물 또한 모두 그대를 뒤쫓아 달리고 싶어들 하니.

그대가 홀로 있던 지난 이레 동안 만물이 그대를 동경했지. 동굴 밖으로 나가보시라! 만물이 의사가 되어 그대를 치유하고자 하니!

어떤 새로운, 시큼한 맛에 묵직한 깨달음이 그대를 찾아오기라도 한 것인가? 마치 발효하여 시큼한 반죽처럼 그대는 그렇게 누워 있었고, 그대의 영혼은 몸을 솟구쳐 모든 가장자리로부터 부풀어올랐으니.“

차라투스트라가 대답했다. “오, 나의 짐승들이여, 계속 지껄여 나로 하여금 듣도록 하라. 너희가 지껄여대면 나는 생기가 돈다. 지껄여대는 소리가 있는 곳, 그곳에서 이 세계는 내게 화원과도 같다.

말이란 것이 있고 소리란 것이 있으니 얼마나 기분 좋은가. 말과 소리야말로 영원히 헤어진 자들 사이에 걸쳐 있는 무지개이자 가상의 교량이 아닌가?

저마다의 영혼에게는 저마다의 세계가 속해 있다. 저마다의 영혼에게 다른 영혼들은 일종의 배후 세계다.

더없이 비슷한 것 사이에서 가상은 가장 멋지게 거짓말을 한다. 더없이 좁은 틈새가 다리 놓기에 더없이 어렵기 때문이다.

나로 말한다면, 어찌 내게 나의 밖이라는 것이 있으리오? 밖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가 온갖 소리를 듣는 동안은 이 사실을 잊고 만다. 우리가 잊는다는 것, 얼마나 기분 좋은 일인가!

사물들로부터 기운을 얻기 위해 사람들이 그 사물들에 이름을 붙여주고 소리를 부여하지 않았는가? 말을 한다는 것은 아름다운 익살이다. 그럼으로써 사람들은 모든 사물을 넘어 춤을 추게 되니.

온갖 이야기와 소리의 온갖 속임수는 얼마나 듣기에 좋은가! 소리와 더불어 우리의 사랑이 형형색색의 무지개 위에서 춤을 추게 되니 말이다.“

이에 짐승들이 말했다. “오, 차라투스트라여, 우리처럼 생각하는 자들에게는 만물이 제 스스로 춤을 추지. 다가와 손을 내밀고는 웃고 달아나지. 그러고는 다시 돌아오지.

모든 것은 가고, 모든 것은 되돌아온다. 존재의 바퀴는 영원히 돌고 돈다. 모든 것은 죽고, 모든 것은 다시 소생한다. 존재의 해(年)는 영원히 흐른다.

모든 것은 꺽이고, 모든 것은 다시 이어진다. 똑같은 존재의 집이 영원히 지어진다. 모든 것은 헤어지고, 모든 것은 다시 만나 인사를 나눈다. 존재의 바퀴는 영원히 자신에게 신실하다.

매순간 존재는 시작된다. 모든 여기를 중심으로 저기라는 공이 굴러간다. 중심은 어디에나 있다. 영원이라는 오솔길을 굽어 있다.“

“오, 무뢰한 어릿광대들이여, 오르골들이여!”차라투스트라는 대답하고는 빙그레 미소지었다. “이레 동안에 이루어져야 했던 것들인데 어찌도 그리 잘들 아는가.

어떻게 저 괴물이 내 목구멍으로 기어 들어와 나를 질식시켰는지를! 하지만 나 그 괴물의 대가리를 물어뜯어 뱉어버렸지.

그런데 너희는, 너희는 벌써 그 일을 리라에 맞춰 부를 노래로 만들었는가? 나 아직도 물어뜯어 뱉은 그 일로 인해 지치고, 나 자신을 구제하는 일로 병들어 여기 누워있거늘

이 모든 것을 그저 보고만 있었는가? 오, 나의 짐승들이여, 잔인하기는 너희도 마찬가지인가? 사람들이 그리하듯 너희 또한 나의 크나큰 고통을 그저 구경만 하려 했다는 말인가? 사람 이상의 잔인한 짐승은 없거늘.

사람은 이제까지 비극과 투우, 그리고 십자가형을 보면서 지상에서 맛볼 수 있는 최상의 희열을 느껴왔다. 그가 지옥을 지어냈을 때, 보라, 저들에게는 그것이 지상천국이었으니.

위대한 사람이 비명이라도 지르면 왜소한 사람은 서둘러 달려온다. 그러고는 욕정으로 인해 혀를 입 밖으로 늘어뜨린다. 그런 것을 두고 왜소한 사람은 그 자신의 ‘연민의 정’이라고 부른다.

왜소한 사람, 누구보다도 시인이 얼마나 열심히 혀를 놀려 생을 헐뜯고 있는가! 귀를 기울이되 저 온갖 헐뜯음 속에 들어 있는 즐거움만은 흘려듣지 말라!

생을 탄핵하는 그같은 자들, 생은 눈 깜박할 사이에 그같은 자들을 제압하고 만다. 저 뻔뻔한 여인은 말한다. ‘나를 사랑한다고? 조금만 더 기다려라. 아직은 너를 위해 시간을 낼 수가 없으니.’

사람은 자기 자신에게 더없이 잔인한 짐승이다. 그러니, 스스로를 ‘죄인’, ‘십자가를 짊어지고 있는 자, 그리고 ’속죄자‘로 부르고 있는 모두가 내뱉는 이같은 헐뜯음과 탄핵 속에 깃들어 있는 관능적 쾌락은 흘려듣지 말라!

그렇다면 나 자신은, 나 이런 말을 함으로써 사람을 탄핵하는 자가 되려고 하는 것일까? 아, 나의 짐승들이여, 지금까지 내가 배워온 단 하나, 그것은 사람에게는 최선의 것을 위해 최악의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더없이 악하다는 것도 하나같이 사람에게는 최선의 힘이 되며, 최고의 창조자에게는 더없이 단단한 돌이 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은 한층 선해져야 하며 한층 악해져야 한다는 것이다.

사람이 악하다는 것을 나 알고 있지만, 이 고통의 십자가에 내가 묶여 있었던 것은 아니다. 나는 오히려 그 누구도 일찍이 질러보지 못한 소리로 외쳤다.

‘아, 사람에게 있어서 최악이란 것이 이처럼 보잘것없다니! 아, 사람에게 있어서 최선이란 것이 이처럼 보잘것없다니!’

사람에 대한 크나큰 싫증, 그것이 나의 목을 조여왔으며 내 목구멍으로 기어 들어왔다. 거기에다 예언자가 예언했던 것, ‘모든 것은 같다. 아무 소용 없다. 앎은 목을 주른다’는 말이

...











/









'너 아니면 나' 일 수밖에 없는 차라투스트라와 중력의 령의 치열한 전투는, 모든 전투가 그러하듯이 차라투스트라에게도 피로와 상처를 남다. 지난 글에서 중력의 령과 큰 전투를 치른 차라투스트라는, 자기가 처음에 머리말에서 떠나온 동굴을 다시 찾아와 휴식을 취한다. 리고 잠든 중에도 미친 사람처럼 소리를 지르면서 자기 안의 심연의 사상과 마주친다.


이 심연의 사상이란 이전 글에도 나왔듯이 바로 연민의 정이다. 특히 이 경우엔 수많은 종류의 연민 중에서도 자기연민이 아닐까. 무언가를 불쌍히 여기는 마음은 니체가 보기에 결코 힘을 주는 것이 아니라 그저 그 대상을 작게 만들고 갉아먹을 뿐인데, 특히 그 대상이 자기 자신일 경우에 그러하다. 누구나 자신의 내면 깊숙한 곳에는 이런 자기연민이 있으리라. 잘난 사람은 잘난 대로의 자기연민. 못난 사람은 못난 대로의 자기연민이...


그러면 이 깊숙한 자기연민이라는 늪, 심연의 사상에서 어떻게 깨어날 것인가? 물론 니체의 분신 차라투스트라는 강한 정신력을 가지고 있고 스스로 이 난국을 타개하려고 무던한 애를 쓴다. 하지만 니체는 그 누구보다도 신체야말로 정신보다 큰 존재라고 주장한 사상가가 아니던가. 정신만이 아니라 결국 신체에 활기가 돌아야만 진흙탕같은 싸움을 자기 몸으로 이겨낼 수 있는 것이다.


이런 니체의 사상을 이해하기라도 하는 듯 동굴 주변의 동물들이, 특히 용맹하게 하늘을 나는 독수리가 먹지도 마시지도 않던 차라투스트라를 위해 양 두마리와 장미사과 등 과일들을 구해온다. 또한 옆에서 계속 말을 걸어서 차라투스트라가 정신을 차리도록 도와준다. 이런 충직한 동물의 도움이 아니라면 아무리 차라투스트라가 위대한 정신력의 소유자라 해도, 신체 힘이 없 전투의 깊은 상처와 피로에서 깨어날 수 없으리라. 이러한 진실은 차라투스트라 뿐만 아니라 모든 인간에게, 신암행어사의 주인공 문수에게도 그러하다. 문수는 쥬신의 대장군이자 암행어사로 대단한 정신력의 주인공이지만 계월향과 방자를 비롯해 주변인의, 길동무들의 도움이 아니었다면 만다라케 침의 환각에서 깨어나는 기적은 매우 요원했으리라.



문수는 처음 만다라케 침을 맞고 가사상태의 환각에 들어가면서부터 방자의 목소리를 듣는다. 그리고 계속 환각의 꿈속에서 과거로 과거로 거슬러올라가면서 종종 방자가 자신을 찾으며 기다려달라는 말을 들으면서 이게 꿈인지 현실인지 의심하기 시작한다. 게다가 애초에 심장이 멈춘 문수를 모든 사람이 장례를 지내자고 했지만, 단 한사람 방자가 계속 문수의 앞에서 그는 반드시 다시 깨어날 것이라고 작은 몸집에도 태산과 같은 기세로 일주일이나 문수를 지켜주었다.  외에도 자는 이전에 마패가 부서져 더이상 팬텀솔져를 소환하지 못하게 된 문수에게, 처음엔 방자도 사람이라 신뢰가 약간  흔들렸지만 결국엔 마패가 없어도 문수는 암행어사라고 인정하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무한한 신뢰를 보여준 바 있다.



이런 방자의 문수에 대한 무한신뢰 덕분에 미토 영감을 비롯한 다른 이들도 문수를 깨우기 위해 방법을 찾기 시작하지 않았던가. 물론 만다라케 침의 해독제를 찾으려는 미끼는 애초에 아지태의 계략이었고 영실과 방자의 행동은 완전히 헛수고로 돌아갔다. ... 허나 이와는 별개로 문수가 꿈과 현실에 대해 제대로 의심하기 시작한 것은 분명 계월향의 희생과 믿음 덕분이지만, 애초애 방자가 없었다면 아지태에 대항하는 유일한 희망인 문수의 각성, 부활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아무 능력도 없어보이고 문수에게 위급상황엔 널 미끼로 쓰다가 버릴 거라는 말조차 들은 방자지만, 바로 그 무능력한 방자가 아니었다면 아지태에 대항하는  유일한 희망 문수를 구해낼 수 없었으리라.




문수가 자꾸만 꿈 속에서 혼란스러워하며 이게 꿈인지 현실인지 자신은 어떻게 하면 되는지 꾸물거리자, 계월향은 얼른 일어나라고 마을 사람들이 아카시아나무를 베어버리기 전에 막아야 한다고 꿈 속에서 문수를 다그친다. 그리고 문수가 세상 모든 게 참인지 거짓인지 헷갈린다고,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하냐고 하자 어릴때부터 친구인 해모수와 계월향은 둘 다 문수의 판단을 전적으로 신뢰한다고 말해준다.


이는 실로 사람을 각성시키고 한계를 넘어서게 하는 고전적인 방법인 채찍과 당근의 전형적인 사례가 아닐까. 이렇게 자신을 절대적으로 믿어주는 사람이 있었기에 모두가 아지태에게 흔들릴 때조차도 문수는 자기 자신의 판단에 절대적인 확신이 생긴 것이 아닐까.



자신의 힘으로 악수들의 모체 쾌타천마저 날려버린 쥬신 최고의 검사, 화랑 원술마저도 아지태의 말 한마디로 사람을 죽여버리는 신과 같은 엄청난 힘과 공포에 무릎을 꿇기 직전일때, 문수는 정면으로 아지태는 절대 해모수가 아니라고 단언한다.


 물론 문수조차도 4년만에 처음으로 아지태를 볼때는 혹시나 저것이 해모수일지도 모른다고 흔들렸지만, 그의 연인이자 인생의 길동무 계월향의 도움과 희생이 있었기에 문수는 정신을 차리고 아지태와 정면대결을 펼칠 수 있었던 것이다. 차라투스트라가 처음에 동굴에서 내려와 머리말에서부터 애타게 찾던 자신과 대등한, 베푸는 덕을 갖추고 실천하는 길동무가 바로 이 문수와 계월향 같은 관계가 아니었을까.




스스로 그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미래의 시간마저도 예측하는 절대적인 신이라 자부하던 아지태지만 그는 계월향의 자기희생을 예측하지 못했고, 그녀의 죽음이 문수에게 자신을 타격할 수 있는 힘을 주리란 것도 전혀 생각지도 못했다. 이것만 봐도 아지태는 좀 특별한 힘이 있을 뿐 결코 절대적인 신 같은 존재는 아니란 것이 확실해진다. 계월향의 문수를 위해 모든 것을 내던지는 위대한 사랑이 아니었다면 문수 뿐만 아니라 쥬신의, 그리고 슈퍼스트링 세계관의 인간세상 전체가 정말로 아지태의 놀이로 전락하여 재미삼아 하얗게 지워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계월향은 새크로피아 주술과는 별개로 이미 자신이 죽은 시체나 다름없는 상태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서양에서 반역이라는 누명을 뒤집어 쓴 문수와 헤어지고나서, 사실상 반강제로 해모수 아니 아지태와 혼약한 4년 동안 문수를 잊지 못하고 언젠가는 그가 돌아올 것이라는 희망으로 하루하루를 버텨왔으리라. 허나 돌아온 문수가 아지태고 해모수고 쥬신이고 뭐고 다 잊고 둘이서 도피하자고 말하자 대체 무슨 소리냐며 정신 좀 차리라고, 문수 당신에게 그토록 소중했던 것을 그렇게 쉽게 버려서는 안 된다고 문수를 다그친다.





 그리고 평소에 말해왔던 것처럼 자연의 이치를 온몸에 새기고 실천하는 문수에게 자신을 이젠 계절이 지나면 자연스레 지는 꽃처럼 자연의 이치를 따르게 해달라고 말한다. 이로 인해 문수는 자신의 뿌리가 얼마나 깊은지 다시한번 각성하여 아지태건 신이건 그 누구도 자신의 판단에 간섭할 수 없는 절대적인 확신을 가질 수 있게 되고, 꿈 속마저 간섭하어 문수의 판단을 어지럽히려는 아지태에게 다시한번 한방을 먹일 재장전을 하게 된다...



내일 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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