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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미 Feb 24. 2021

주머니에 콩을 숨긴 너에게

골고루 먹으면 자란다고 배웠는데, 키는 유전이었어요.

이상하지?

향도 비릿하니 밍숭맹숭한 검정콩 말이야. 대체 이걸 무슨 맛으로 먹는 건지, 감옥도 아닌데 왜 자꾸 밥에 넣는 건지 도무지 이해가 잘 안 되겠지. 그래서 식탁 밑에서 몰래 뱉어내 주머니에 숨긴 거잖아. 근데 그거 알아? 이번엔 잘 넘어갔어도 조만간 들통날지도 몰라. 주머니에 있는 콩들 얼른 빼서 먹던가 아니면 학교 쓰레기통에 버리는 게 좋을 거야. 왜인지는 묻지 마. 나도 몰랐으면 좋겠으니까...


지금도 엄마가 콩밥을 지을 때면 가끔 그때 얘길 하셔. 내심 속상하셨던 것 같으니 다음엔 딱 5초만 꼭꼭 씹어보길. 속는 셈 치고 한 번만 믿어봐. 꽤 맛있다니까? 그렇게 몰래 빼돌리기 바빴던 콩을 지금은 골라 먹을 만큼 좋아해. 아니, 사랑해! 두부, 콩비지, 두유, 후무스(삶은 병아리콩을 으깬 소스)... 콩으로 만든 것 모두! 심지어는 덖은 검정콩을 간식으로 먹는다니까? 참나!


넌 물컹한 식감도 싫어했지. 이를테면 생굴. 처음 먹어본 굴은 시큼하고 오묘한, 뭔가 멀미가 일 것 같은 쇠 맛이 입안에 한참 맴돌아서 몇 번이나 물을 마셔댔던 기억이 나. 그러다 된통 체해서 병원도 가고. 그 덕에 굴은 쭉 미지의 영역이었는데. 5년 전엔가? 통영에서 굴국밥을 먹고 깨졌어. 와, 국물이 그렇게 시원할 수가! 저 밑에서부터 뜨끈하게 솟아오르는 바다의 맛. 통영에 오면 이건 꼭 먹고 가야 한다며 기어이 권해줬던 친구의 인내심에 감사를, 시너지를 발휘해준 그 날 아침의 숙취에도 감사한 맛이었다니까. 신선한 굴은 시큼하지 않고 달콤하더라고. 여전히 김치에 넣은 생굴은 가려먹긴 하지만.


근데 가만 보니까 너 가지나 도가니탕은 물컹해도 좋아하잖아? 굴을 싫어했던 건 물컹함이 아니라 단단히 체했던 그때의 기억이 단단하기 때문인 거 아닐까. 아직도 생굴을 보면 위가 바짝 긴장하는 느낌이 들거든.


참, 좀 이르긴 한데 위 건강은 꼭 챙기길 바라. 지금은 위가 많이 약해져서 자극적인 음식은 잘 못 먹어. 한창 바쁠 때 끼니가 불규칙해서 위염으로 고생했거든. 뭐 원래도 매운 건 잘 못 먹었지만. 그래도 학교 끝나고 매일 사 먹던 떡볶이는 이제 한 달에 한 번 먹을까 말까 하는 이벤트가 되었네. 아니다. 지금처럼 위가 튼튼할 때 실컷 먹어두는 게 좋을지도!


김밥도 먹어 둬. 지금은 김밥 안 좋아하거든. 김밥은 직장인의 소울 푸드라고들 하는데 야근할 때 하도 먹어서 그런가? 내 입맛엔 너무 짜기도 하고, 한 끼를 뚝딱 해치워버리는 느낌이 들어서 별로야. 하긴 어릴 때도 김밥보단 유부초밥을 더 좋아하긴 했다. 본디 김밥과 유부초밥은 소풍의 단짝인데, 왜 분식집엔 김밥은 있고 유부초밥은 없는 건지. 대체 왜 ‘유부초밥천국’은 될 수 없는 건지. 의문하다 불만하게 되는 날이 올 거야. 애석하게도 2021년에도 유부초밥은 찾기 어렵단다. 미리 김밥의 맛을 단련해두도록 해.


다행히 좋아하는 음식은 여전할 거야. 과일이나 떡, 해산물(아, 생굴은 예외)은 여전히 종류 불문하고 다 좋아하지. 물론 더 좋아하게 된 것도 있어. 구황작물이나 엄마가 차려준 집밥 같은 것.


생각해보니 음식에 한 번 기억이 박혀버리면 머리보다는 몸이 더 잘 기억하는 것 같기도 해. 이제는 다 잊었다고 생각했던 기억도 굳이 맛을 떠올리지 않아도 듣거나 보거나 맡는 것만으로도 몸이 먼저 반응하더라. 그러니 지금부터 다양한 음식들 두루 맛보고 좋은 기억들로 많이 박아두길.


그리고 새로운 음식을 접했을 때, 네 가치에 어긋나지만 않는다면 한 번쯤 시도해보기를. 혹시 알아? 무수한 과일을 제치고 최애가 될지. 지금은 소화하기 어렵더라도 ‘언젠가’라는 가능성은 열어두었으면. 세상에 절대로 아닌 건 절대로 없으니까 단언하지 말고 음식도, 영화도, 책도, 음악도, 그리고 사람도 골고루 맛보길 바란다.

- 미래의 네가


/ from 에세이드라이브 글감 '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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