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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미 Feb 24. 2021

새가슴과 뒤꿈치

엄마와 아빠의 딸내미

‘네 이름 옆에 땅콩 그린 거 미안해.’

견과류로 불리던 시절이 있었다. 주로 땅콩,  있어 보이고 싶던 애들은 아몬드. 왠지 나는 어릴 적부터 별명이 많았는데 견과류 시기의 이유는 분명했다. 또래 친구들보다 작은 .

초딩 때 좋아했던 남사친이 그려준 땅콩. 넌 이해ㅇㅋ

이삿짐 정리 중에 발견한 초6 교환일기 속 내 이름 옆에는 작은 땅콩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넌 정말 작아서 귀여워’ ‘팔과 다리에 중학교 교복이 맞을까 고민하는 모습이 재미있었어’ ‘다음에 또 목마 태워줄게’(세상에, 친구의 목마를 탔었나 보다) 같은 유의 다정한 말풍선들이 달려있기도 했다. 늘 맨 앞줄에 앉았던 여자 1번이었지만, 작은 키에 어울리는 귀여운(!) 외모 덕분에 딱히 콤플렉스는 아니었다. 오히려 그 걱정은 나보다 부모님의 몫이었는데, 아마도 두 분 모두 크지 않은 편이라 딸의 뼈 성장에 일종의 유전적 부채감이 있으셨던 것 같다.


정작 나는 키보다 더 신경 쓰이는 부위가 따로 있다. 새가슴과 뒤꿈치. 여기서 새가슴은 ‘놀라서 새가슴이 됐다.’ 할 때의 새가슴이 아니라, 말 그대로 새처럼 볼록한 가슴 모양을 말한다. 내 양쪽 가슴 위 정 중앙에 살짝 볼록한 뼈(찾아보니 ‘복장뼈’라고 한단다)는 눈에 확 띌 정도는 아니지만, 스웨터 같은 부피 있는 옷을 입으면 확 부해 보이거나 넥라인이 파인 옷을 입으면 확 드러나기에 십상이라 은근히 신경 쓰인다. 혹자는 튀어나온 부위를 누르면 가슴뼈가 폐를 관통해 즉사하는 급소라며 겁을 주기도 했다. 따져보면 말도 안 되는 말인 것 같긴 하지만 은근히 좀 신경은 쓰인다.


새가슴처럼 뒤꿈치 이놈도 튀어나왔다. 지금 만져보니 정확히는 뒤꿈치와 아킬레스건을 잇는 뼈. 남들보다 더 튀어나온 탓에 성한 뒤꿈치로 새 신발을 신어본 적은 손에 꼽고, 양말은 무조건 뒤꿈치부터 해졌다. 러닝하거나 스케이트를 탈 때는 일부러 두꺼운 종이나 여분의 양말을 따로 챙겨가 덧대곤 했다. 역시 은근히 신경 쓰이는 일이다.


자잘하게 신경 써야 하지만 싫으냐고 물으면 또 그렇게 싫지는 않다. 엄마의 새가슴과 아빠의 뒤꿈치, 두 분의 은근한 고충을 꼭 닮은 나는 부모님의 딸이라는 증명이기 때문이다. 포옹하면 맞닿는 가슴과 늘 같은 위치에 해져있는 양말들. 떨어져 있어도 같은 모양의 연결고리를 확인할 때면 꽤 안심이 된다.


강추위에 뼈까지 시렸던 지난 일요일 그러니까 어제, 아는 감독님의 결혼식에 갔다. 코로나 시국에 홍대라니. 윽. 결혼식 장소인 홍대 인근까지 가는 길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아득해져서 일찍 갔다가 후다닥 빠질 요량으로 서둘렀다. 한 시간이나 일찍 도착해 사회적인 얼굴 도장만 찍고 나오려는데, 다들 같은 전략이었던 건지 일로 만난 얼굴들 몇몇을 만나 (일요일인데!) 사무적인 대화까지 오갔다.


이윽고 피할 수 없는 어색한 시간이 흐르고. 마침 누군가의 눈에 웨딩 사진이 보였던지 “부부가 닮으면 잘 산다던데 정말 닮았네요~”라며 운을 띄웠다. 이어 다른 분이 틈을 채우려 “어머, 정말 눈썹 부분이 닮았네요~”하고 내게 눈으로 동의를 구했지만 “그러게요! 같은 샵에서 문신하셨나 봐요~”하고 거짓말하긴 싫어서 마스크 위로만 애매하게 웃었다. ‘누가 봐도 전혀 안 닮았잖아...’ 라고 생각하던 차에 감독님이 웃으며 신부의 손을 잡고 걸어오셨다. 쑥스러워하면서도 달뜬 웃음. 눈썹이 닮은 두 사람은 웃는 얼굴도 서로 닮아 있었다.


부부가 닮아서 잘 살거라 축복하며 집으로 가는 길. 결혼식에 갔다가 집에 돌아가는 길은 어쩐지 허기가 진다. 좋아하는 빵집에 들러 빵을 사 들고 지나치는 AK몰 벽면에는 벌써부터 2021년을 반기는 전광판이 반짝거린다. 헬로 2021년이라니, 아직 2020년을 제대로 굿바이 하지도 못했는데.


굿바이 2020년도 10 남짓 남았다.(*작성 당시 12월말) 2021년에는 나와  모양은 달라도 웃는 근육이 닮은 사람을 만나고 싶다.  근육을 한껏 끌어올려 서로에게 미소 지을  같은 모양의 고리로 연결되기를. 그때 그의 가슴과 뒤꿈치도 만져보고 싶다.


/ from 에세이드라이브 글감 '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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