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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미 Feb 24. 2021

모노애말

모든 건 노력이지만 애쓰지는 말아요, 우리.

어느덧 직장인 11년 차, 지금 나는 4번째 회사에 다니고 있다.

그간의 직업은 영화 업계에서 크게 테두리를 벗어나지 않은 일들이었지만, 직전에 다녔던 회사는 좀 달랐다. 엔터테인먼트사에서 배우들을 홍보-마케팅하는 일이었는데, 어쨌거나 나는 배우보다는 영화에 열광하는 편이었기 때문에 그런 날 잘 아는 친구들은 극구 만류했던 곳이었다.


혹시나는 역시나로 응답했다. 좋아하는 일은 ‘ 하면  된다고 누누이 듣고, 말해왔지만 나는 어쩔  없이 좋아하는 일을 해야 하는 사람이었다는걸, 입사  달도 되기 전에 알아버렸던 것이다.


‘어쩌자고 여길 들어왔을까’ 1분 1초가 숨 가빴다. 엔터테인먼트사의 홍보팀은 말하자면 ‘사건 사고 처리반’으로, 불시에 터지는 사건 사고에 명치 맞는 일은 일상이요, 종일 울려대는 뉴스와 톡 메시지를 사수해야 하는 ‘고충 전담반’이었다. 급기야 핸드폰을 붙잡고 샤워하러 들어갈 때면 내가 점차 희미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너무 많은 말과 표정이 쌓여만 가는데도 한없이 가벼워져 공중에 붕 떠다니던 그때, 나는 형님을 만났다.


통상 업계에서 그분을 호칭할 때는 선배님 혹은 선생님이 일반적이었다. ‘난 배우도 아니고, 아니었고, 아닐 건데 왜 선배님이지?’ 늘 의문이었지만 괜한 토를 달지 않고 뵐 때마다 꼬박꼬박 각 잡아 붙이곤 했다. 그렇게 뵙기를 한두 번, 선배님은 자신을 ‘형님’이라 불러달라고 청하셨다. ‘네가 배우가 아니니 선배는 아니고, 선생님은 늙어 보이고, 그렇다고 오빠는 좀 아니지 않냐’며 호탕하게 웃었다. 처음으로 이곳이 좀 재미있어질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형님과는 영화 취향과 주종(酒種)이 같은 덕에 금세 친해졌다. 우리는 종종 만나 온 세상의 이야기를 나누며 서서히 편해졌다. 지금껏 아빠 뻘의 남자 어른과, 아니 우리 아빠와도 그렇게 깊고 많은 이야기를 나눠본 적은 없었다. ‘행복이란 뭘까요’ ‘하고 싶은 일만 하면서 살아도 될까요’ 남들은 웃어넘겨 버릴 선문답에도 형님은 매번 푸근한 인내심을 갖고 응해주었다.


2년 반 정도 지났을 때였던가. 당시 개봉작의 부산 무대인사를 마치고 회식 자리에서 형님이 말했다. “조이미야, 모든 건 노력해야 하는데 그래도 애쓰지는 마.” 그 말을 듣고 나서야 내가 부단히 애쓰고 있었다는 걸 알았다. “네가 원하는 대로 자유롭게 느끼고, 만지고, 그걸 써봐.” 눈물을 참느라 남은 애를 짜냈지만 세꼬시를 머금은 채로 울고 말았다.


이후로 ‘모든 건 노력이지만 애쓰지는 말자’ 줄여, ‘모노애말’은 내게 일종의 주문이 되었다. 일상의 미풍에도 가끔은 크게 요동치는 나를 든든히 붙잡아주는 주문. ‘모노애말 모노애말’ 되뇌며 언젠가부터 즐겨찾기만 해뒀던 시나리오 수업의 커리큘럼을 살펴봤다. 몇 개월간 마음을 굳히고 퇴사했다. 내겐 도무지 별세계 같던 그곳에서 덕분에 3년을 다녔다.


누군가 가장 풍요로운 인생은 매번 같은 사람과 만나 매번 새로운 주제로 대화를 나누는 것이라고 했다. 믿을만한 큰 어른을 만난 것도 충분히 복 받은 일인데 나는 그분과 인생의 풍요를 나누는 시간을 지나고 있다.

형님을 오랜만에 만나러 가는 길, 꽃집에 들러 해바라기를 샀다. 만나자마자 폭 안겨드렸다. 5년 전 나를 붙잡아준 그때 그 모습 그대로, 숭배와 자부심이라는 꽃말처럼 피어나셨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화병을 장식한 해바라기 사진을 보내주셨다. ‘응원한다! 막걸리 생각날 때 또 보자’는 메시지와 함께.


아, 막걸리 생각난다!

안겨주고 안겨받은 나의 해바라기


/ from 에세이스탠드 글감 '내 귀에 들어온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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