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껍아, 두껍아, 내 헌 집을 내어다오!
지난 주말, 집에 다녀왔다.
독립한 지 벌써 2년이 다 되어가는데도 여전히 부모님이 계신 과천이 집처럼 느껴진다. 실제로 주민등록등본의 집 주소도 아직 과천인데, 주소 이전을 서운해하시는 부모님이 이유이기도 했지만 스스로도 과천을 떠나기 싫은 마음이 컸기 때문이다.
24년간 살았던 과천은 내가 고향이라고 느끼는 유일한 곳이다. 고향을 태어난 곳이라고 한다면 광명이겠지만, 누군가 고향을 묻는다면 나는 과천이라고 답한다. 전혀 관심 없던 사람도 과천에 한번 와 본 적 있다고 하면 그게 그렇게 반갑고 심지어는 없던 호감도 생긴다.
나의 과천이 자랑스럽고 좋아서, 대학교 신입생 때는 동기들을 초청해 당시 부모님이 취미 삼아 하시던 주말농장에서 상추를 따 삼겹살을 구워 먹이고 서울대공원-서울랜드-현대미술관 투어를 하기도 했다. 누가 봤으면 아마 과천시 국회의원 출마라도 하는 줄 알았을 거다. 하여간 남다른 애향심이었다.
그렇게 사랑하는 과천이었는데, 영 낯설어졌다. 2018년 재건축을 시작해 최근 단장을 마친 7단지 주공아파트. 울창한 수풀과 어우러져 화목하던 5층짜리 아파트 단지는 이제 저마다 30층으로 우뚝 솟아올라 주변 경관을 압도한다. 가려진 하늘은 고개를 꺾어 올려다보는 것만으로도 숨이 차오른다.
처음 재건축이 확정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주변에서는 집값 많이 오르겠다며 새집이라 좋지 않냐고 물어오곤 했다. 물론 축하할만한 일이었지만 내게 좋은 소식이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떠나온 5층 집에서의 마지막 날을 떠올리면 마음이 일렁인다. 그곳에서 보낸 나의 10대, 20대도 같이 떠나 보낸 기분이었다고 하면 오바려나.
724동 504호, 나이 들어 헐려버린 우리 집이 너무나도 그립다. 탁 트인 관악산 능선을 따라 보랏빛 노을이 보이던 거실, 달을 보며 샤워했던 화장실 창문과 침대에 누워 눈 감고 새 소리를 듣던 내 방이 그립다.
5층보다 키 큰 소나무, 메타세쿼이아 나무들로 푸르던 단지도, 해마다 고운 빛으로 피고 지던 꽃들과 그 꽃잎을 찧어 소꿉놀이 밥을 짓고 네잎 클로버를 찾던 시절도, 속셈학원 땡땡이를 치고 삼각 커피우유에 생라면을 부숴먹으며 단짠을 즐기던 정자도, 등나무 그늘 밑에 묻어두고 10년 후에 꺼내 보자 새끼손가락 걸던 타임캡슐도, 놀이터 미끄럼틀 뒤편에 몰래 새겨 놓았던 이름도, 집 앞 벤치에서 서성이던 첫 연애의 기억도, 늦은 밤 퇴근길 아빠가 마중 나오던 어둑한 골목길도 모두 다 보고 싶다.
지나온 풍경들을 걸으며 그리운 것들을 찾아봤다. 둔중한 포크레인 갈퀴에 밀려 모든 것이 사라져버리기에 3년이라는 공사 기간은 길지 않은 시간이었다. 문득 이웃들이 궁금해졌다. 앞니가 빠져있던 옆집 꼬마들과 4층의 공무원 아저씨, 3층 미술 선생님은 어디로 갔을까? 언젠가 다시 마주칠 수 있을까?
재건축을 앞둔 둔촌 주공아파트를 담은 ‘집의 시간들’이라는 다큐멘터리가 있다. 개봉 당시 이미 과천을 떠나 인덕원에서 살고 있던 나는 정겨운 주공아파트 풍경 속에 흐르는 ‘이 집에 살아서 참 행복했던 것 같다’는 목소리를 듣곤 이내 먹먹해졌다. 집 안 곳곳에 묻은 손때를 만지며 고마웠던 기억을 나눴던 과천에서의 마지막 밤이 떠올라 훌쩍일 수밖에 없었다.
이후 ‘과천 사랑’ 카페를 통해 과천 1단지 주공아파트의 추억을 담은 책이 있다는 걸 알았다. 때론 같은 정서를 공유하는 사람들이 어딘가 있다는 것만으로 큰 위안이 되기도 한다. ‘집의 시간들’과 ‘과천 주공아파트 101동 102호’는 내게 그런 위안이 되어주었다. 앞으로 내 삶에 어떤 집이 들어서도 한 켠에는 영원히 724동 504호가 남아있을 거라는 위안.
부모님의 배웅을 받으며 과천역으로 가는 길, 따뜻해진 봄날의 놀이터는 다시 아이들로 북적인다. 이 아이들은 지금의 풍경을 고향으로 삼겠지, 생각하며 섣부르게 짠해진다. 역 앞에 큼지막하게 걸린 ‘정부과천청사 시민 광장 유휴지 아파트 건설 반대’ 현수막을 본다. 한창 시민들의 서명을 받고 있다기에 물어봤다가 아빠의 열을 올리고 말았다.
푸른 숨을 쉬던 내 고향 과천이 이제는 조금의 숨 쉴 공간조차 내어주지 못하는 곳이 되었다니 생경하다. 왜들 그렇게 꽉꽉 채워 올리지 못해 안달인 건지. 결국 한 뼘 땅에 뿌려질 텐데 말이다. 아, 그 위에도 현수막을 세우려나? ‘축! 재건축 인가 완료’라고. 그들이 다루는 숫자나 논리는 몰라도 이건 알고 있다.
누군가의 고향에는 쉴 곳이 필요하다.
/ from 에세이드라이브 글감 '미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