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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미 Feb 19. 2021

오고 있나?

살림 레벨~업! 을 꿈꾸는 자취 2년 차 쪼랩

“오고 있나?”

자정이 되면 어김없이 울리던 톡. 보나 마나 엄마다. 

대화창 옆 1이 지워지지 않은 채 5분 후. 

“늦네?” 또 “언제쯤 오나?” 

30초 후. 

“어여 와서 쉬어라~ 잠 좀 자자!” 

그제야 나는 “오늘도 야근 ㅠㅠ 먼저 자”

보던 화면에 다시 열중해보지만 이미 머릿속엔 소파에 앉아 꾸벅거리는 엄마가 재생된다. 

이내 자리를 털고 나선다.


개봉 일정에 맞춰 숨 쉬듯 야근하던 그때. 엄마는 꼭 12시 땡 하면 신데렐라의 귀가를 재촉하던 요정 할머니처럼 노파심을 발동했다. 그 재촉에 유리 구두를 빼먹고 온 것 마냥 어딘가 허술해진 상태로 퇴근하면 엄마는 늘 반쯤 감은 눈으로 날 맞이했다. 

모두가 잠든 까만 밤, 부엌의 작은 불 하나 켜둔 채 거실 소파에 꾸벅이며 졸고 있는 엄마를 볼 때면 가슴이 까맣게 멍드는 기분이 들었다. 아니, 대체 왜 안/못 자는 건지. 속상한 마음이 울컥해 툴툴대기도 여러 번. 그때마다 엄마는 “딸내미가 품에 안 들어왔는데 어떻게 잠이 오냐~” 하며 배시시 웃는다. 

잠까지 줄여가며 오매불망 기다리는 엄마의 사랑을, 그 사랑을 소박하게 풀어 늘 건강하고 안전하길 바라는 마음이라는 걸 왜 모를까. 괜찮다고, 신경 쓰지 말라고는 해도 점점 거칠어져 가는 엄마의 얼굴을 보고 있는 건 역시 괴로웠다. 


대체로 퇴근이 늦는 나를 기다리던 엄마의 헌신은 안정감을 주면서도 문득문득 과제처럼 느껴졌다. 부모님의 아늑한 관성 속에 갇혀 있던 나는 이제 다른 항로를 찾아보고 싶었다. 서른이 넘어서까지 튼튼히 품어 주신 덕에 크게 흔들리지 않고 커리어를 쌓아갈 수 있었지만, 시집가면 어차피 다 해야 한다며 손사래 치던 탓에 실질적인 생활력은 제로에 가까웠다.


이제는 고이 씻어 코앞에 내어주는 열매보다 그 빛깔이 익어가는 과정이 궁금했다. 밥솥에는 손등 높이에 얼마큼 물이 차야 진밥이 되는지, 된밥이 되는지. 크고 작은 세탁물은 어떻게 분류해 빨아야 하는지. 분리수거의 잔재미도. 갖고 싶던 살림을 벼르고 벼르다 하나씩 장만해가는 큰 재미도. 그렇게 장만한 살림에 애착이 생기고 내 생활에 맞춰보는 아기자기한 재미도. 식물도, 동물도 키워보고 싶었다. 

몇 번의 연애 끝에 어쩌면 혼자 살아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도 그 즈음이었다. 호기심을 넘어 필요로 전환된 시점이랄까.


퇴근길에 만나 막걸리에 두부 짜글이를 먹던 친구가 “같이 살아볼래?” 묻기에 한 점 남은 두부 대신 덥석 물었다. 취기인지 자취 로망에 젖어서인지 나 자신도 놀랄 만큼 빠르고 선명한 결정이었다. 기세를 몰아 집에 가자마자 부모님께 허락 아닌 통보를 했는데. 

아뿔싸. 엄마를 울리고 말았다. 그저 내 세계를 넓혀보고 싶었던 신호탄이 엄마의 세계를 좁히는 선언이었다는 걸 몰랐던 것이다. 이렇게 나가면 앞으로는 영영 같이 살 일 없지 않겠냐며 만류하던 엄마가 눈에 남아 그날 밤은 한참을 뒤척였다.


옷 몇 가지랑 등받이 좌식 의자 하나만 들고 가라고. 끼니도 제대로 못 챙겨서 분명 입가에 버짐 필 거라고. 임시로 경험 삼아 살아보다 언제든 돌아오라고. 그렇게 부모님을 떠나 산 지 어느새 1년하고도 9개월이 되었다.


“춥네~~ 오늘 따뜻하게 입고 출근해라. 이따 보자~^^”

이제는 제법 요리 조리하며 살림 레벨 0.5단 정도는 업그레이드되었지만, 엄마에겐 여전히 잘 모르는 척. 그간 먹고 싶던 집밥 메뉴를 칭얼대본다. 

엄마의 생신을 겸해 근 한 달 만에 집으로 퇴근하는 길. 현관에 들어서기 전 일부러 고개를 들어 엄마가 켜둔 빛을 본다. 여전히 단지에서 가장 밝게 켜져 있는 나의 등대. 멀리 품을 떠난 배의 귀가를 재촉한다.


“딸~~ 오고 있나~?”


/ from 에세이드라이브 글감 '퇴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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