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승열 Dec 14. 2022

이혼 할 때 만나게 되는 사람들_8

아내

[아내]

“수정 아빠? 일어났어?”


아내가 불쑥 들어섰다.

이번엔 눈을 감을 수도 없었고, 이미 앉아서 노트북 불빛에 내 얼굴이 그 사람도 보고 있는터라

잠 잔다고는 더더욱 말 할 수 없었다. 성급히 보고 있던 네이버 창을 닫았다.

“어? 어...어제 잠을 못 잤더니 피곤했나봐...왜, 안자고...?”

“언제까지 나 피할거야? 다시는 안 볼 사람 처럼...”

“피하긴 누가 피했다고...피곤해서 잠든 거라니까...”

“자기가 하라는대로 할게...이혼하자면 이혼할게”

“뭐, 이혼? 너 이혼이라는 말 참 쉽게 한다...”

“아니 그런 뜻이 아니라, 자기 성격상 그냥 넘어갈 것 같지도 않고, 평생 이렇게 남처럼 살 것도 아니고 애들 봐서라도....”

“애들? 애들? 나 어이가 없네... 그래서 하필 애들 봐서 그 딴 놈 집에 끌어 들이고 그런거야?”

“......”


다시 그 일이 머릿 속에 떠 올랐다. 

게다가 장모와 처남이 한 행동은 다시 생각해도 이해 할 수 없었다.

“난 이제 엄마, 동생에게도 얼굴을 들 수 없어. 물론 내가 자초한 일이지만...

꼭 그 시간에 다른 사람도 아닌 엄마를 불러야 했어? ”

“지금 나에게 잘 했다고 따지는거야? 내가 아주 큰 잘못을 했네...미안해, 아주 미안해~

내가 지금 이래야 하는거야?”

“아니야...차라리 경찰을 부르지 그랬어? 어차피 이 지경까지 갈 게 뻔히 보이는 일인데...

자긴 용서 안 할거잖아...”

“아니...그걸 알면서 넌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랬냐?...”

잠시 정적이 흘렀다.

“미안해, 정말 미안해...내가 미친년이야...흑흑~~”

아내는 눈물을 흘리며 나에게 두 손을 빌면서 미안하다고 한다.

더 이상 나도 대꾸하는게 의미없다고 생각했다.

푹푹 내 쉬는 나의 한숨 소리만이 이 밤의 정적을 무너뜨린다.

계속 말을 해 봤자, 마음만 더 상하고 내 앞에서 병든 닭 마냥 고개 푹 숙이고 눈치보는 아내의 모습도 보기 싫었다. 

도대체 나보고 어쩌란 말이냐?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보이질 않는다.

선배 말처럼 시간이 더 지나야 답이 보이는건가?

잠시 후, 식탁에 아내와 마주보고 앉아 침착하게 대화를 다시 시작했다.

아내도 사뭇 긴장한 채 나의 눈치를 보면서...

“나도 지금 이런 상황이 너무 힘들어? 미칠 것 같아...”

“미안해...”

“제발~~~미안하다는 말 좀 그만해~~~, 어제 처럼 내 눈 똑바로 보고 당당하게 대들어!!

원래 그게 너 잖아~~... 그래야 내가 결정하기 편하잖아...자꾸 불쌍한 척 좀 그만해!!!”

“정말 잘 못 했어...한번만 정말 한번만 용서해 줘....흑흑흑...”

“왜 울어? 그만 울어!! 뭘 잘했다고...정말...휴~~우”

“흑흑흑...”

“나에게 생각할 시간을 좀 줘...

당장 나도 뭐라고 말 못할 거 같으니까....”

“그럼 자기 고민 할 시간을 좀 갖고 생각 해줄래? 나 보기 싫으면 친정에 가 있을게...

자기 휴가 냈다고 했으니까 혼자서 좀 바람도 쐬고 ...”

“.......”

“자기가 어떤 결정을 내려도 거기에 따를게...자기 하고 싶은대로 해...진심이야...”

“...내가 왜 이런 고민을 해야 돼? 잘못한 사람은 넌데 내가 왜?”

“미안해...”

“그럼, 이혼 하자면 할거야? ”

“할게...”

“참, 쉽구나....넌...이혼이.........”



우리의 대화는 여기서 끝났다.

아침에 일어나니 아내와 아이들은 이미 집에 없었다.

식탁에 쪽지 하나 써 놓고 친정으로 가 버렸다.





결혼 전, 동생 민지는 나의 결혼에 반대가 심했다.

이유는 아내와 우리 집안 분위기랑 너무 안 맞아 트러블 생길 게 불 보듯 뻔하다는 이유에서였다.

우리 집안이 뭐가 그렇게 대단하다고? 그리고 살면서 맞추면 돼지 뭐가 그리 불만이냐고?

나는 오히려 민지에게 서운하다고 했었다.

오빠의 결혼을 축하는 못 할망정..

우리 집안은 남들과는 다르게 좀 부모와 자식간에 거리가 없이 친구처럼 지내며 자유분방한 환경이었다. 

어려서부터 일찍 아빠에게 술을 배워서 가족과 새벽까지 술도 마시고, 고스톱도 치고, 가족여행도 자주 가고... 이런 일들이 나에게는 누구나 다 그렇게 사는 줄 알았지만, 정작 내 주변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우리 집만 그랬던 것 같다. 그래서 친구들이 부러워 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의아해하기도 했다. 

가족끼리 너무 가까운 거 아니냐면서...


아내는 결혼 전까지는 전혀 자기의 생각을 드러내지 않았다.

부모님과도 잘 어울리고 동생들과도 잘 맞추어 가면서 별 문제 없이 지나갔다.

연애기간 동안엔 가족 식사 모임도 좋아했고, 때마다 가족들 생일도 챙겨주며 나의 부족한 부분을 아내는 잘 메꿔 주었다. 고마웠고 자연스럽게 우리 가족과 잘 스며드는 것 같았다.

하지만 민지의 예상대로 결혼 후 트러블은 곧바로 일어났다.

신혼 여행을 다녀와서 본가에 인사를 드리러 간날,

아내는 돌발선언을 했다.


“이제 가족 모임은 1년에 4번만 하시죠? 추석, 구정, 부모님 생신. 이렇게요.

미국에서는 다 큰 성인들이 독립하면 부모와의 만남은 1년에 한번 만나요....그냥 넘어 갈데도 있구요...

오히려 자주 만나면 능력 없는 자식이라고 놀림을 당한다니까요...

그리고 가끔 봐야 더 반갑고 애뜻하죠...

솔직히 그동안 아무 말씀 안 드렸는데 저희 가족은 만나도 너무 자주 만나는 것 같아요..

대신 자주 연락 드리고 걱정하시지 않게 잘 살게요..아버님,어머님 그렇게 해 주실거죠?”

“언니!! 지금 뭐라고 하는거야? 방금, 신혼여행 갔다온 며느리가 그게 할 말은 아닌 것 같은데...

언니가 뭔데...우리집안에 대해서 이래라 말라야?”

“아가씨, 너무 흥분하지 말고...아가씨도 곧 결혼 할거잖아...

입장바꿔서 생각해봐...내 말이 틀린 말은 아니잖아...”

“아빠,엄마 뭐라고 말 좀 해봐? 이게 지금 말이 돼?”



갑작스런 아내의 발언에 나는 말 문이 막혔고, 부모님은 어이가 없어 아버지는 자리를 뜨셨고,

엄마는 아무 대꾸도 안 하셨다. 중간에서 민지만 홀로 대변을 하듯 소리를 지르며 얼굴을 붉혔다.


아내를 이끌고 나오듯 나와서 집으로 향했다.

너무 어이가 없어서 그냥 운전만 하며 집으로 왔다.

아내는 정말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집으로 와서 여행 짐들을 정리했다.

그리곤 나에게 한 마디를 덧 붙였다.

“자기집도 우리집도 마찬가지야...딱 1년에 4번!!!”

“너 미쳤냐? 그리고 그런 중요한 결정을 왜 나한테 상의도 없이 너 혼자해?”

“그동안 연애할 때 내가 다 맞춰서 다 해 줬잖아...그러니까 이제는 좀 나에게도 맞춰줘

부탁할게...”

“싫다면? 싫다면 어쩔건데?”

“싫음, 할 수 없지...이혼 해~~그럼”

“이혼? 야~~ 우리 결혼 한지 아직 한 달도 안 됐어? 지금 이혼이 무슨 애들 장난이야?”

“그러니까...이혼하기 싫으면 내가 하자는 대로 해.

여자말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나와...난 그거만 지켜주면 돼..알았지?”



아내와 부모님과의 갈등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그 날 이후, 부모님은 3개월간 나와 아내를 만나지 않으셨다.

나의 전화는 물론, 아내의 전화도 받지 않으셨다. 내가 따로 집으로 찾아가 보았지만 출입을 허락하지 않으셨다. 


나는 중간에서 우유부단하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부모님 편을 들자니 마마보이라는 말에 사랑을 저 버린 철부지 남편이 되어 버리고,

아내 편을 들자니 여자에 빠져 지 부모도 못 알아보는 불효자 아들이 되어 버렸다.



결국, 우리 기족 모임은 아내 말대로 1년에 4번으로 줄었다.

자식 이기는 부모는 없는 것인가? 자식의 행복을 위해서 부모님께서 양보를 해 주셨다.

하지만 중간에 나의 동생들은 부모님과는 다르게 나와도 서먹해졌고, 아내와는 거의 만나지 않았다

“오빠, 내가 이 두눈으로 지켜볼거야....똑똑한 며느리가 얼마나 잘 하는줄...

그리고 오빠랑 얼마나 잘 사는 줄...못 살기만 해봐...내가 가만 안 있을거야?”





이랬는데....

민지는 이미 알아버렸고...

이 사실을 엄마에게 말 했을것이 뻔 하고....

이제야 아들이 이혼을 한다고? 

참...얄궂다....


이혼한다는 사실이 고민이 아니고, 

이 사실을 내 가족에게 말하는 것 자체가 더 큰 고민이다.



<9부에서 계속 됩니다>

작가의 이전글 너는 솔직해질때, 나는 불편해진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