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승열 Dec 15. 2022

이혼 할 때 만나게 되는 사람들_9


[나]



결혼하고 처음 혼자만의 시간을 갖게 되었다.

자유롭다기 보다는 왠지 모르게 외롭다는 생각이 든다.

마음이 불편해서 그런 것인지, 아님 나이가 들어서인지...

늘 누군가의 남편, 누군가의 아빠로 살다보니 갑자기 옆에 아무도 없다는 것이 어색했다.


이런 게 가족병? 인가 싶기도 하다.

가족 때문에 참고 버티는 삶인데, 때론 그 가족이 나의 삶의 무게를 너무 짓누를때에는 원망도 많았는데...

막상 당장 빈자리가 보이니 허전하다고 느끼는 이 아이러니는 뭔가?

내가 생각해도 참 나라는 놈은 이기적이다.


갑자기 바다가 보고 싶어졌다.

멈추지 않는 파도 소리와 비릿한 바다 냄새가 맡고 싶어졌다.

아는 사람을 만날 것도 아니고, 아는 곳을 찾아가는 것도 아니었지만 발걸음을 재촉해 수서역으로 갔다. 

그리고 부산행 STX에 몸을 실었다.

너무 오랜만에 부산을 찾는다.


어렸을적 부터 부산에 대한 향수를 갖고 있었다.

그래서 지금까지도 아무 연고가 없지만, 맨날 꼴찌에 머물러 있는 롯데자이언츠를 응원하고 있는지 도 모른다. 서울이 고향이지만, 부산에만 가면 마음이 편해진다. 


누구는 바다 하면 동해를 떠 올리지만, 나에게 바다는 부산 해운대다.

그것도 여름 바다 보다는 겨울 해운대 바다를 좋아한다.




아주 오래 전. 

재수를 하고 대학입시 결과를 기다리던 겨울이었다.

열심히 준비했고, 수학 과목도 만족스러운 점수를 받았기에 당연히 합격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미 대학에 먼저 들어간 친구들과 신촌에서 맥주를 기울이며 자축을 하고 있었다.


나도 곧 대학생이 된다는 들 뜬 마음에 친구들과 웃고 떠들고 마냥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간만에 친구집에서 자고 간다는 허락을 받으러 집에 전화를 걸었다

(그 당시에는 삐삐, 핸드폰도 없던 시절이라 당연히 공중전화를 걸었다)


생각보다 하루 빨리 합격자를 발표했다는 말을 아빠가 전해주셨다.

근데 명단에 내 이름이 없다는 것이다.

즉 떨어졌다는...


나는 도저히 믿기지 않아서 전화를 하다 말고 그 대학교로 무작정 뛰어갔다.

그런 나를 보던 친구들 역시도 함께 뛰었다.


학교 정문 앞에 커다란 벽보에 합격자 명단이 환한 불빛 아래 빛나고 있었다.

숨을 가다듬고 계속 내 이름을 100번 이상은 찾아 보았다.

친구들도 계속 찾아보았다.

하지만 어디에도 김민석은 보이지 않았다.


그 자리에 털석 주저앉아 펑펑 울었다. 

너무 슬펐다. 

정말 시험도 잘 보았는데...

떨어질 리가 없는데...


내 자신에게 너무 속상했고,

미리 자축을 한다며 친구들과 함께 설레발 친 내가 너무 창피했고,

1년 동안 새벽에 도시락 2개씩 싸주시며 뒷 바라지 하신 엄마의 얼굴을 생각하니 더더욱 미안했다.


30분 이상을 울었던 것 같다.

친구 대일이가 나를 일으키며 진정을 시켰다.


“민석아, 우리 바다 보러 갈래?”


친구들과 나는 곧바로 택시를 타고 서울역으로 가서 새벽 기차표를 끊고 우리는 그렇게 부산으로 향했다.

그리고 무작정 해운대로 가서 3시간 넘게 바다만 바라 보았다.


그날 참 눈이 많이 내렸었다. 

부산에 간만에 내리는 눈이라는데...

나를 반겨주는 눈인건지, 나의 슬픔을 위로 해주는 눈인지는 몰라도


어린 나이였지만, 바다를 보면서 많은 생각을 했었다.

그땐 정말 하늘이 무너진 것 같았고,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앞이 캄캄했었다.

현실을 인정하는 게 너무 힘들었다.


'삼수를 해야 하나? 삼수를 한다고 성공한다는 보장도 없는데...

아님 2년제를 가서 빨리 취업을 하는 게 좋을까?'


그땐 나의 고민은 대학이 전부였다.

대학만 가면 모든 게 다 끝나는 줄 알고... 


지금 생각하면 대학 떨어진 건 정말 아무것도 아닌 것을...

나이를 먹고 살아보니 그보다 많은 어려움과 시련이 정말 곳곳에 나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그땐 정말 대학이 나에게 가장 큰 고민이자 아픔이었다






창 밖으로 보이는 시골 전경들이 빠르게 지나쳐 가면서, 오래 전 해운대 기억이 떠 올랐다.

물론 지금은 나 혼자 가는 길이지만, 해운대를 간다는 것 자체만으로 마음은 한결 가벼워졌다.


역시 겨울 해운대 바다는 운치가 있다

사람들도 많지 않고, 멈추지 않는 파도소리도 여전하고, 모래사장에 앉아 저 멀리 보이는 수평선을 바라보았다. 지금 이 시간 내가 해운대에 있다는 것 자체가 꿈만 같다. 

내 마음만 빼고 나머진 다 평화롭기만 하다.


한참을 바다만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때 어디선가 낯익은 목소리가 들린다.


“민석아, 힘들지?”



깜짝 놀라 주위를 둘러 보아도 아무도 없다.

이제 환청까지 생긴 건가? 


“민석아, 다 지나갈거야....이미 넌 결정했잖아....”



누구지? 지금 내 옆엔 아무도 없는데, 이젠 정신까지도 이상해지는건가?



“누구긴?

나야 민석이...나라고”


아무도 없는데, 내가 나에게 말을 걸고 있다.

영화 속 한 장면처럼 내 안의 민석이가 나에게 말을 걸고 있다.


“그래...힘들다...알면서 뭘 물어?”



“이미 너는 결정 했잖아...나한테까지 거짓말 할 필요는 없어...”



“거짓말이 아니라 아직 용기가 없는거야”



“용기?”



“아직 이혼을 선택할 자신이 없어...”



“민석아 이혼은 니가 선택하는 것이 아니야...그냥 부닥치는거지...”



“부닥쳐?”



“갑자기 튀어 나온 자동차에 너는 어쩔 수 없이 교통사고를 당한거야...

운전자가 졸음운전을 했던, 운전 미숙이던...이미 너는 자동차 사고를 당한거야...

너는 어쩔 수 없이 부닥친거야...당장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아야지...아픈 곳을...

그게 지금 니가 할 일이야”



“교통사고?”



“사고는 어쩔 수 없잖아, 이미 벌어진 일인데...수습을 해야지...다음을 생각해야지”



“....다음.....”



그 때 울리는 핸드폰,

발신자는 엄마다.


받을까 말까를 고민하다가 통화 버튼을 눌렀다



“민석아, 얘긴 다 들었다...나좀 보자”



<10부에서 계속 됩니다>




작가의 이전글 이혼 할 때 만나게 되는 사람들_8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