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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승열 Jan 05. 2023

이혼 할 때 만나게 되는 사람들_11

큰 딸 1 (2042년)

[큰 딸 1 (2042년)]

부산에서 마음을 조금은 정리하고 온 것 같다.

아직도 마치 꿈을 꾸는 것 같지만...

이혼이라는 큰 문제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결혼의 실패가 꼭 이혼은 아니니까...


이제는 이혼을 잘 준비 해야겠다는 생각 뿐이다.

혹시나 이럴려고 이혼 했냐는 말을 들을 수 도 있으니까...


두 딸을 어떻게 키워야 할지부터, 혼자서 딸들과 살아 갈 것인지, 아님 부모님 집으로 들어 갈 것인지, 직장은 또 애들 키우면서 잘 다닐 수 있을지...


이혼이라는 문제가 이제 실전으로 다가온 것이다.

좀더 냉철해지고 현실적이고 차분해 질 필요가 있다.

아직 경험해 보지 못한 이혼이라는 새로운 세상에 적응하기 위해선...

그 세상 또한 어둠이 있다면 빛도 분명히 있을테니까 너무 좌절 할 필요도 없다.




서울에 도착해 기차역을 나왔다.


그런데...


내가 알던 서울역이 아니다.

이상하다. 그새 공사를 한 건가? 

얼굴을 꼬집어 보았다. 아직도 내가 꿈을 꾸고 있는건가?

그때 카톡 메시지가 울린다

“아빠 언제 와?”

큰딸 수정이의 메시지다

뭐지? 수정이가 어떻게 그 어린 아이가 카톡을 보낸거지? 

말도 안되는 상황이다.


카톡 날짜를 보니 2042년 12월 ...


쇼윈도에 비치는 내 얼굴을 바라 보았다.

나는 아직 2022년 얼굴 그 대로인데...

나만 빼고 세상이 다 2042년이 되어 버렸다.

SF영화처럼 하늘에 차들이 떠 다니고, 지구가 망하고, 어둠의 세상이 되어 버리기는커녕

여전히 세상은 별로 크게 달라진 게 없어 보인다.


잠시 후 핸드폰이 울린다.

큰 딸 수정이다


“아빠, 어디야? 우린 지금 도착했어”

“어딜? 왜?”

“왜라니? 오늘 아빠가 남친이랑 같이 소주 마시자고 했잖아”

“내가?”

“미치겠네...그럼 아빠말고 누구랑 약속했겠어? 빨리와”

“지금 내가 수정이랑 통화하는거 맞아? 아니 맞아요?”

“아빠, 하나도 안 재밌거든...묵은지 감자탕으로 주문한다~”

아니 4살 밖에 안 된 수정이가 벌써 남친이랑 소주를...

미치겠다.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20년이라는 세월이 지났다고 치자...근데 왜 내 얼굴은 그대로인거지?

아니 늙질 않는건가? 아무튼 지금 이럴때가 아니다.

빨리 수정이를 만나러 가야한다

<서울 감자탕> 간판이 보인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사람들로 가득 한데, 그때 저기 구석에서 긴 생머리의 여자, 아니 수정이가 손을 흔든다. 그 옆에 남친으로 보이는 남자가 일어나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한다.


“아빠, 왜 이렇게 늦게 와? 감자탕 다 쫄았어~”

“아버님, 처음 뵙겠습니다...정민기 라고 합니다”

“어..어...반가워요”

한참을 수정이를 뚜러지게 쳐다 보았다. 두 눈을 비비고 자세히 보았다.

눈이며, 코, 입이 내가 아는 큰딸 수정이가 맞다. 이쁘게 잘 컸다.

“아빠? 뭐해? 넋 나간 사람처럼...민기 팔 아프겠다...빨리 잔 받아”

그제서야 다시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내 앞에 수정이와 남친이 앉아 있다.

나는 재빨리 잔을 들고 소주를 받았다.

20년이 지났어도 처음처럼 소주는 여전히 존재하는 것 같았다.


“아버님 실제로 뵈니까 너무 젊으세요...수정이 친 오빠인줄 알겠어요.”

“야~~개오바좀 하지마....아빠한테 오빠가 뭐냐? 술이나 따라”

“아버님이, 그만큼 동안이라는거죠...관리를 잘 하시나봐요 크크”

“그래? 고마워. 젊게 봐줘서”

“뭐래? 아빠, 오늘 왜 이렇게 늦었어? 어디 갔다 온거야?”

“부산에서 막 온거야...지금”

“갑자기 부산? 왜?”

“어...그게...친구들 좀 만나느라고”

“아빠 또 혼자서 부산가서 야구 보고 온 거 아냐? 맨날 이기는 롯데 야구? 지겹지도 않아?

맨날 이기는데 뭘 보러 가? 그냥 결과만 보면 되지...”

“지금 겨울인데 야구는 무슨....근데 맨날 이겨? 롯데가?”

“야구 얘기는 됐고...민기 어때? 아빠가 오늘 한번 제대로 술 마시는 법 좀 알려줘”

그렇게 술자리는 시작되었다.

뭐가 뭔지 나도 잘 모르겠다. 그럼 지금 내 나이가 55살? 말도 안돼...

갑자기 20년이라는 시간을 점프라도 했단 말인가?

그동안 너무 영화나 드라마를 많이 본 탓일까? 

이건 분명 환상일거다. 아님 나의 미래를 잠시 보게 되는 초능력이라도 생긴 건가?

아무리 생각해도 이 상황이 설명이 되질 않는다.


다시 정신을 차리고 보니 앞에 어엿하게 다 큰 20대의 수정이가 앉아 있다.

그동안 어떻게 살아왔는지, 지금은 또 어떻게 살고 있는지 너무 궁금했다.

하지만 자리가 자리인지라 아무렇지 않은 듯 소주를 주고 받으며 그들의 이야기를 듣기만 했다.

“아빠, 나는 왜 아직도 하고 싶은 게 없을까? 대학교를 졸업하면 당연히 취업하고 그럴줄 알았는데...

선배들도 그렇고 나도 이렇게 딱히 취업하고 싶은 맘도 없고...내가 이상한건가?

가끔은 호정이가 부러워...벌써 그 나이에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으니까...”

수정이의 말을 들어보니 대학교를 졸업한 것 같고, 아직 취업은 안 한게 분명해보인다.

어느 대학교, 무슨 과를 졸업했는지 물어 볼 수도 없고, 그리고 수정이만 나이가 든게 아니었다. 

그 갓난쟁이 호정이도 어른이 되었음이 분명한데....일까지 하고 있다니...놀랍고 신기하고 기뜩하고...

도무지 감이 잡히질 않는다.

“걱정하지마...아빠도 수정이 나이때는 다 그랬어...천천히 생각해도 돼”

“뭐래? 맨날 아빠는 대학교 졸업 전부터 회사다녔다고 할머니가 늘 얘기했는데...그 놈의 광고에 미쳐서...”

“할머니가 그래? 생각해보니 그렇네...쏘리...아빠때는 조금이라도 일찍 취업하고 자리잡는게 잘 하는거라 생각했거든...그래서 아빠도 아마 그랬을거야...하고 싶기도 했지만, 빨리 성공하고 싶다는 강박관념 같은 게 있었어. 지금 생각 해보면 다 별거 아닌데...”

“그래서 그 놈의 광고 때문에 아빠가 이혼도 한거잖아...안 그래?”

“이혼?”

“농담이야...아니 내 말은 그만큼 아빠가 광고에 열정적이다보니 가족들과는 그만큼 거리가 멀어지고 그러다보니 이렇게 됐다라는 뭐 그런 거야...사실 틀린 말도 아니잖아”


수정이의 말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

결국 난 이혼을 했다. 휴~~우

하지만 어떻게 어떤 이유로 이혼을 했는지는 수정이도 알고 있을까 궁금했다.

“그래서 아빠가 밉겠네?”

“갑자기? 무슨 말이야? 밉다니?”

“아빠가 이혼해서 수정이가 많이 힘들었을 것 같은데...”

“20년도 지난 일을 이제와서 왜 그래? 다 팔자지 뭐”

“팔자? 우리 수정이 많이 컸네...아빠 안 미워?”

“미워~ 아주 미워 죽겠어...그러니 술이나 마셔”

그랬다.

내가 이혼 한지 20년이 지났다.

수정이의 말 속에 뼈가 있다. 아빠가 미울 수 밖에...

결국 이혼은 누군가에게는 상처를 줄 수 밖에 없는 고통이기도 하다.

남녀 두사람만의 문제로 끝나는 것이 아닌 게 이혼인 것이다.


어찌보면 내가 착각을 했는지도 모르겠다

이혼을 잘 하고 싶다는 나의 잘못된 바램은 역시나 나의 자식들에게는 커다란 상처임이 분명했다.

세상에 잘 한 이혼은 없다.

이혼하려는 당사자의 변명일 뿐이다.


“아빠~~아까부터 뭘 그리 혼자 고민해?”

수정이가 라면사리를 덜어주면서 나를 부른다


<12부에서 계속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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