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 나이가 드니 바쁜게 자랑이 되더라
바쁜게 능력이라고 믿었던 시절이었다.
명절 때도 회사에 출근해서 일을 하는 처지임에도 불구하고
그땐 그것이 능력이고 당연한 거라고 생각했다.
남들 일 없이 놀 때, 나는 쉼 없이 일을 하고 있다는 게
오히려 내가 더 앞서가고 있다라고 자평하며 불만 없이 일을 했다.
꽉 막힌 월요일 아침 출근시간에 나는 반대 차선에서
밤을 지새고 퇴근을 하면서 뻥 뚫린 나의 앞길을 흐믓해 했다.
역시 반대로 살아야 성공 할 수 있는걸까? 아님 남들과는 다른 자유를 느낄 수 있는걸까?
나의 현 상황을 비관하기 보다는 늘 긍정적으로 봤다.
그래야 내가 억울하지 않으니까, 그리고 후회 없으니까.
때론 나의 처지를 딱하게 생각한 친구가 내가 좀더 평범하고 남들과 비슷한 삶을 살기를 바랬다.
지금 누리지 못하면 안 되는 것들이 있음을 좀 보고 느끼고 살라 했는데 난 그 말을 듣지 않았다.
나 처럼 바쁘지 않은 오히려 바쁨을 부러워하는 친구의 핑계려니 생각했다.
가끔 일이 다 정리되고 하루 일정이 일찍 끝날 때면 오히려 불안했다.
나만 일이 없는건가? 경쟁사 친구들에게 돌려 말하며 안부를 묻곤 했다.
바쁘냐고?
역시 한가하다는 말을 들으면 마음이 편해졌다.
나만 일이 없는 게 아니구나 하면서...
놀부 심보 마냥 나만 일 없이 노는게 싫었다고나 할까?
어찌됐건 나는 바뻐야 마음이 놓였다.
한가해 진다는 건 결국 나의 경쟁력이 떨어진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일이 없어도 늘 많은 척을 해야 광고계는 오히려 바쁜 사람과 일을 하고 싶어했기 때문이다.
바빠서 자기 일을 할 시간이 있겠냐면서도 꾸역구역 자기 일을 신경써달라고 의뢰했다.
한 달에 20개 이상의 광고 아이디어를 낸 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
아니 불가능하다. 하지만 나는 잠을 안 자면서라도 그것을 해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어느 것 하나도 헛투로 하는게 아닌 모든 일에 최선을 다 해야 하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었다.
본래 아이디어라는 것은 선수들은 보면 알기 때문이다.
고민을 많이 했는지, 아님 대충 했는지를...
그래서 아이디어를 내는 일을 하는 것은 늘 고통의 연속인 것이다.
세월이 흘러 많은 선배들이 은퇴를 했다.
제일 힘든 게 할 일이 없다 는 것과 시간이 너무 많이 남아서 한가로운데 그것이 곤욕이라고 한다.
나는 충분히 공감한다.
광고에 청춘을 바쳤고, 그렇게 없는 시간을 쪼개가며 살아왔던 그들이기에...
시간이 남아 돈다는 것은 상상해 본 적 없는 일이었으리라...
나이가 드니 스케쥴이 있다는 것이 행복해졌다.
해야 할 일이 있다는 것.
바쁜게 자랑이 되어버리는 중년이 되어 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