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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묘하게 바쁜 날이었습니다. 아침에 눈을 뜨는 순간부터 뭔가 다른 기운이 감돌았어요. 평소와 똑같은 알람 소리, 똑같은 침대, 똑같은 천장인데도 공기가 달랐습니다. 마치 시간이 평소보다 빨리 흘러가기로 작정한 것 같은 그런 느낌말이죠. 비가 올 것이라는 예보를 보고 우산을 들고 집을 나섰습니다.
바쁘다고 해서 특별히 중요한 일이 있었던 것도 아니에요. 회사에서 처리해야 할 업무들은 늘 그랬듯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고, 점심시간에는 회식이 있었으며, 저녁에는 집에서 밀린 집안일을 하고 운동을 가야 했습니다. 평범한 일상의 연속이었어요.
아마도 마음의 상태 때문이 아니었을까 합니다. 어떤 날은 같은 일을 해도 여유롭게 느껴지고, 어떤 날은 숨이 막힐 듯 급하게 느껴지곤 하잖아요. 오늘이 바로 그런 날이었습니다. 커피를 마시는 5분조차 아까워서 후루룩 마셔버렸고, 평소엔 천천히 읽던 메시지들을 빠르게 훑어만 봤어요.
이메일 확인, 거래처 미팅 준비, 업무 처리… 하나하나는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닌데 모든 게 동시에 밀려오는 느낌이었습니다. 평소 같으면 우선순위를 정해서 차근차근 처리했을 일들이 오늘은 이것도 해야 하고 저것도 해야 한다는 생각에 정신이 없어 이 글도 하루를 마치는 일기가 되어버렸네요.
퇴근 후 집으로 오는 지하철에서도 시간을 확인하며 조바심을 냈습니다. 운동까진 분명 충분한 시간이 있었는데도 말이죠. 저는 하루 종일 ‘지금 이 순간’에 온전히 집중하지 못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항상 다음에 해야 할 일, 아직 끝내지 못한 일을 생각하며 마음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어요.
집에 돌아와 잠시 하루를 되돌아보니, 실제로는 그렇게 바쁘지도 않았던 것 같아요. 모든 일을 제시간에 마쳤고, 점심 회식도 즐거웠으며, 특별히 스트레스받을 일도 없었습니다. 그저 마음이 바빴을 뿐이었어요.
이럴 때 중요한 건 그런 날을 보내고 난 후, 잠시 멈춰서 돌아보는 것입니다. 저는 과거에 살면 불행하고 미래에 살면 불안하다는 마음으로 지금 이 현실에 집중하자는 생각을 항상 되뇝니다. 깊게 숨을 한 번 들이쉬고, 지금 이 순간에 조금 더 집중해보려 해요. 그러면 분명 시간이 조금은 느려질 것이고, 마음도 조금은 여유로워질 것입니다.
결국 시간의 문제가 아니라 마음의 문제인 것 같아요. 같은 24시간이어도 어떤 마음으로 보내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하루가 되니까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