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에 게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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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녹아




친구와 만나면 하는 게임이 있습니다. 제목은 '만약에'인데요, 지극히 현실적인 편에 속하는 저는 항상 백기를 들고 맙니다.


'만약에' 게임이 특기인 친구는 수많은 예시와 정하지 않으면 안 되는 선택지를 늘어놓습니다. 예를 들면 이런 식입니다.


"만약에 네가 시간을 되돌릴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된다면, 단 하루만 선택할 수 있다면 언제로 돌아갈 거야?"


처음엔 단순해 보입니다. 하지만 친구는 여기서 멈추지 않습니다.


"근데 조건이 있어. 그날로 돌아가면 그 이후의 모든 기억을 잃게 돼. 그래도 갈 거야? 아니면 기억은 그대로 두고 단순히 관찰만 할 수 있는 능력이라면? 그리고 만약에 그날 바꾼 선택 때문에 지금의 소중한 사람들을 만나지 못하게 된다면?"


저는 이런 질문 앞에서 늘 멈춰 서게 됩니다. 머릿속에서는 계산기가 돌아가죠. 현실적 이익과 손해, 가능성과 위험성을 따지다 보면 결국 "그냥 지금이 좋은 것 같은데..."라는 시시한 결론에 도달합니다.


- 만약에 세상의 모든 책을 읽을 수 있는 능력과 세상의 모든 언어를 구사할 수 있는 능력 중 하나만 선택해야 한다면?


- 만약에 당신의 꿈이 모두 실현되지만, 그 대신 지금까지의 모든 인간관계를 새로 시작해야 한다면?


- 만약에 모든 동물과 대화할 수 있게 된다면?


정답이 없는 선택, 상상 속에서만 존재하는 딜레마들이 오히려 현실을 더 복잡하게 느끼게 만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친구와 이 게임을 하다 보면, 제가 얼마나 좁은 테두리 안에서만 생각하고 있었는지 깨닫게 됩니다.


친구의 ‘만약에’ 게임은 우리가 평소에 하지 않는 선택들, 고려하지 않는 가능성들을 탐험해 보는 안전한 실험실 이라고나 할까요. 친구는 이 실험실에서 자유롭게 뛰어놀고, 저는 여전히 출입문 앞에서 망설이고 있지만요.


최근에는 조금씩 달라지고 있습니다. 여전히 친구만큼 자유롭게 상상의 날개를 펼치지는 못하지만, 적어도 질문을 피하지는 않게 되었어요. 오히려 '만약에'라는 가정 속에서 평소 꺼내지 못했던 솔직한 마음들을 발견하기도 합니다.


결국 '만약에'라는 게임의 진짜 재미는 정답을 찾는 것이 아니라, 질문을 통해 자신을 더 깊이 들여다보는 데 있었던 것 같아요.​​​​


어쩌면 현실주의자인 저에게 '만약에' 게임은 꼭 필요한 시간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정답이 없는 질문들, 그 혼란 속에서 제가 정말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조금씩 찾아가고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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