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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배 Zoe Feb 02. 2023

호주의 소크라테스

저는 어제부로 성선설을 믿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쉽게 악마가 될 수도 있다는 점에도 강하게 동의합니다. 그래서 마치 인간은 악하기를 타고난 것처럼 보이는 것 같습니다. 인간에게는 부정적인 생각에 쉽게 혹하는 성향이 있습니다. 그것은 그 옛날 원시 시대의 삶에서 조그마한 신호를 부정적으로 받아들여 경계하고 막아 냈던 사람들이 생존할 수 있었고 결국 우리의 조상이 되었기 때문이죠.


저의 어린 시절을 생각해보면 아무것도 그려지지 않은 순백의 도화지처럼 깨끗하고 맑았습니다. 그 당시에는 무슨 의미인 줄도 몰랐으나 이제 보니 왜 그렇게들 저를 순하다고 말했었는지 알겠습니다. 저는 정말 나쁜 생각을 할 줄 모르는 아이였습니다. 어릴 적 저는 친구들은 볼 때 어떻게 저런 생각을 하지? 싶을 때가 많았습니다. 누군가 밉다는 생각을 왜 하는 거지? 상처를 왜 주려 하는 거지? 했습니다. 인간의 본능이 우리를 쉽게 검게 만든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누가 와서 먹을 뿌리면 그대로 흡수하고 맙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 아이들의 천성이 그랬다기보다 주변 환경에서 그런 나쁜 먹을 일찍 접했던 것이었겠죠.


물론 저도 언제까지고 하얗지는 못했습니다. 칠흑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아시나요? 옻칠을 한 것처럼 검고 광택이 있는 빛깔을 칠흑이라 합니다. 그 어두운 색이 얼마나 광이 나던지 그만 혹하고 만 것입니다. 제 본능이 그것을 받아들이라 시키는 것입니다. 칠흑을 잔뜩 빨아들이고 머금었을 때 저는 그 불행을 즐겼습니다. 마치 유희 같았어요. 저 나락 끝에서 위태로운 제가 아련한 것이 딱 주인공 같은 게 좋았습니다. 그건 성공을 위해 노력해서 주인공이 되는 것보다 더 손쉬운 방법이었고요.


저는 현대에 와서 사람들이 불행해졌다고 믿었습니다. 이 지나친 경쟁사회와 각박한 개인주의가 사람들을 외롭게 하고 고립시킨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행복을 공부하는 요즘 깨닫습니다. 기원전 사람들도 지금 우리와 별다른 바 없었고, 그때 연구한 행복의 방법이 지금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그 시절부터 행복에 대한 생각과 연구가 쭉 이어지는데도 인간은 여전히 불행을 끼고 삽니다.


호주 사람들은 행복할 거라 생각한 건 제 착각이었습니다. 임금이 높고, 자연환경이 아름답고, 인구 밀도가 낮은데다 그리 경쟁이 치열하지 않은 이곳도 마찬가지로 불행한 사람들은 넘쳐납니다. 차이점이 있다면 이곳에서는 성인 중 절반 정도가 우울하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대다수가 그런 것 같은데 말이죠. 그 차이점을 만드는 건 임금과 자연환경, 경쟁이 덜한 사회 때문이라기보다 적극적인 개입에 있습니다.


1년 이내에 떠나게 될 한낱 외국인 노동자에 불가한 저를 고용할 때도 신체 건강과 정신 건강의 중요성에 대한 영상을 시청하게 합니다. 실제로 어떤 활동들이 도움이 되는지를 알려줍니다. 그리고 그것에 접근하기 쉽게 사회적 시스템이 잘 구축되어 있다는 걸 느낍니다. 그런 사소한 부분에 영향을 받아 우리나라보다는 우울을 덜어낸 이들이 조금 있을 거라 짐작합니다.


사람은 쉽게 부정의 영향을 받기에 그 부정을 몰아내고 긍정을 채울 수 있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강요 같은 말처럼 들려 거부하고 싶어질지 모르겠지만 저는 이 부분은 아무리 강요해도 지나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호주에서 저를 알게 된 몇몇은 저를 처음 봤을 때 어디 꽃길만 걷다 온 허허실실인 줄 알았다고 했습니다. 그런 말을 들으며 생각해 보니 그렇습니다. 부정의 한 끝에 있을 때 저는 맑고 밝은 사람은 무한한 사랑에서 만들어지는 줄 알았습니다. 사랑을 많이 받은 아이들만이 그런 태가 난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화목하고 부유한 가정에서 큰 아이들이 부러웠었죠.


하지만 지금의 저를 보니 아닙니다. 끝없는 긍정은 학습에서 나옵니다. 부정적인 사고를 지우고 긍정으로 대체하는 법을 배우는 데서 밝은 에너지를 얻을 수 있습니다. 그건 절대 그냥 타고나는 것이 아닙니다. 또한 사랑 하나만으로는 만들어질 수 없기도 합니다.


호주에서 알게 된 현명한 친구가 있습니다. 그 친구는 제게 말하죠. 그저 그 모든 사람을 사랑하면 된다고. 사랑을 주다 보면 언젠가는 바뀌게 될 거라고. 하지만 저는 소크라테스와 닮은 사람입니다. 소크라테스는 왜 그렇게 아테네 광장을 떠돌며 사람들에게 말을 걸었을까요? 그리고 왜 자꾸 사람들에게 당신은 아무것도 모른다를 이야기하며 사람들을 불쾌하게 했을까요?


안타까웠을 겁니다. 분명 행복해질 방법이 있는데 그 방법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 행복해질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안타까웠을 겁니다. 그러면 그런 그는 불행한 사람들을 창피하게 하고 상처 주기 위해 대화를 시작했을까요? 제가 소크라테스라면 그렇습니다. 좀 더 효과적인 방법을 알려주고 싶습니다. 그 당시에도 지금에도 별다른 바 없이 비슷하게 적용되는 행복의 공식이 있습니다. 소크라테스가 살던 시절에는 연구도 별로 없었겠지만, 현대에는 연구로 수없이 입증된 사실입니다.


저는 선함을 타고난 사람들이 그 방법들을 배우면 모두 행복에 가까워질 수 있다고 믿습니다. 이건 꽃길만 걷지 않았던, 염세의 저 끝까지 가봤던 사람으로서 이야기하는 겁니다. 한번 검어진 도화지라 다시 하얘지기 어렵다고 믿겠지만 놀랍게도 그것에는 방법이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호주에서 소크라테스가 되기로 했습니다. 저는 이것이 소크라테스식 사랑이라고 믿습니다. 사람들을 입맛대로 바꾸기 위함이 아닙니다. 분명 조금 더 확실하게 행복해지기를 바라며 건네는 마음입니다. 그렇게 만난 이들에 대한 이야기들을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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