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이배 Zoe Feb 09. 2023

걱정은 아무것도 바꾸지 못해

나는 Judy를 백패커에서 만났다.

나는 주디를 백패커에서 만났다. 호주에 워킹홀리데이를 가는 워홀러들의 첫 행선지는 보통 백패커다. 낯선 나라에 정착하지 못한 사람들을 위한 숙소로 이만한 데가 없다. 내가 지내는 백패커 방에는 3개의 2층 침대가 놓여 최대 6명까지 수용할 수 있었지만, 어떤 곳에는 12명까지 지내는 곳도 있다고 한다. 그만큼 많은 인원을 수용해 싼 가격에 방을 내놓는 거다.


내가 호주에서 처음 머물렀던 백패커의 이름은 Central YHA, 시드니의 중앙역 바로 앞에 자리하고 있다. 공항에서 공항철도를 타고 중앙역에 내려 고단한 몸을 뉘이기에 제격이다. 시드니는 호주에서도 한국인이 가장 많이 머무는 곳이다. 그렇지만 중앙역 부근은 그것의 예외로 보였다. 숙소에 짐을 두고 호주 핸드폰 번호를 개통하고자 유심을 사러 가는 길에 스치는 동양인들의 말소리에 귀 기울여 보면 전부 중국말이었다. 한국인을 만나는 건 마치 하늘의 별따기와 같았다.


먼 나라에 갔지만 나는 호주에 한국인들을 만나러 간 거였다. 접근성이 좋아 한국인이 꽤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백패커에는 심지어 동양인들 조차 보이지 않았다. 나는 처음 같은 방에 지내는 사람들이 대화를 하는 걸 보고 얼마나 주눅이 들었는지 모른다. 영어가 정말 유창해서 내가 그들과 일자리 경쟁을 한다면 100% 뒤쳐질 거였다. 게다가 무슨 말을 하는지 샬라샬라 잘 들리지도 않는다. 어쩌면 영어를 저렇게 잘할까 했는데 알고 보니 그들은 영국인들이었다. 내 방에는 영국인이 3명, 독일인이 2명, 나까지 총 6명이 지냈다. 이러기도 쉽지 않을 텐데, 나는 유럽에서 온 워홀러, 여행객들 사이에 껴서 소외감에 빠져 들었던 거였다.


길거리에도 백팩커스에도 한국인은 보이질 않았고, 도서관에 앉아 공부를 하며 내 심장은 자꾸 바닥으로 떨어져만 갔다. 이 나라에서의 생활이 조금은 두려워지는 거다. 그냥 관광을 온 것도 아니고 여기서 일을 하고 입에 풀칠은 하고 살아야 하는데 그게 갑자기 막막한 거지. 그래서 나는 저녁거리로 샌드위치를 사들고 백패커의 식당에 앉았다. 9층짜리 그 건물에 한국인 한 두 명쯤은 있겠거니, 물가가 비싼 이 호주에서 외식을 하기보다 여기 와서 만들어 먹는 사람들이 있겠거니 하는 기대를 품고 눈에 불을 켰다. 그리고 한국인이 보이면 가서 바로 말을 걸어야지 했다.


그렇게 만난 호주에서 만난 첫 친구 주디다.


내가 말을 걸었던 한국인들은 총 세 명인 무리였는데 그중 한 명이 주디였다. 주디는 얼굴이 얼마나 새하얀지 말랑콩떡 같다. 하지만 주디에게 처음부터 큰 호감을 느낀 건 말랑콩떡 같은 인상보다 주디의 리액션에 있다. 어쩜 그렇게 말할 맛이 나게 맞장구를 쳐주는지 내가 “아” 하면 꼭 “맞아, 아”같은 식의 추임새를 넣는다. 나는 주디를 보는 내내 저런 식으로 대화를 편안하게 하는 방법도 있구나를 배웠다. 주디 덕에 내 화술 실력이 +1 정도는 됐을 거다. 게다가 주디는 정말 재밌다. 어떻게 하면 사람을 즐겁게 하는지를 안다. 주디는 사람들을 웃길 때 뿌듯함을 느낀다고 한다. 그러니 주디는 호주에서도 많은 파파라치들을 몰고 다녔다. 주디의 웃긴 모습을 담아보려고 저 멀리서라도 우선 카메라를 켜는 거다. 그렇게 찍힌 사진과 영상을 파파라치들은 며칠씩 돌려보며 웃는다. 물론 나도 그 파파라치 중의 하나였다.


우리는 시드니의 정착기를 함께한 동료다. 서로 구직을 하는 과정도, 집을 구하는 과정도 지켜봤다. 나는 홀로 워홀을 떠났지만 첫날에 친동생과 같은 친구 주디를 만났다. 우리가 처음 시드니의 오페라 하우스를 갔던 날 파란 하늘 아래 요상한 선글라스를 끼고 걷던 주디는 그 순간에도 그랬지만, 앞으로도 평생 그리워하게 될 기쁜 우리 젊은 날의 한 시간을 나에게 선물로 주었다. 그때부터 내 호주 생활이 파란 봄을 향해 뻗어 나가기 시작했는지 모른다.


우리는 함께였지만 각자도생 했다. 내가 중고차를 알아보고 있을 때 주디는 지낼 집을 보러 다녔고, 내가 포크리프트 학원에 갈 때 주디는 회사에 인터뷰를 보러 갔다. 그래서 우리가 백패커에서 나와 잠깐 단기숙소로 옮겨 같은 방에서 지내기 전까지는 몰랐었다. 주디는 걱정이 많고 겁이 많은 아이란 걸.


그 요상한 선글라스를 끼고 시드니 시티를 걷던 주디를 보면 누구라도 씩씩하고 대범한 애처럼 볼 거였다. 주디는 말을 할 때도 그런 호탕함이 돋보였다. 발걸음도 어찌나 빠르고 당찬지 모른다. 게다가 우리는 Central YHA에서 만났기에, 나는 주디가 즉흥적인 편에 가까울 거라 생각했었다. 워홀을 떠나기 전 찾다 보면 더 괜찮다고 평가되는 백패커가 몇 군데 있었는데 나는 늦게 예약을 했고 Central YHA 밖에 자리가 없어서 거길 간 거였기 때문이었다. 아마 그곳에 있는 한국인들이란 다들 비슷할 거라 예상했다. 행동이 조금 늦던지 아니면 블로그에 검색을 잘해보지 않던지. 하지만 주디는 굉장히 계획 파다.


깔끔하고 단정해서 나는 계획파들을 좋아한다. 그래서 친구들 중에 계획파가 많다. 내가 만나본 계획파들은 대체로 그랬다. 가만 보면 그 친구들은 본인이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 대한 불안이 크다. 그래서 계획을 더 촘촘하고 세밀하게 짠다. 그 계획의 틈으로 예측불가한 어떤 일이 생겨나지 않기를 바라면서.


주디는 이제 막 대학을 졸업하고 호주에 왔다. 대학을 갓 졸업했을 때 나도 완전한 성인이 된 것처럼 굴었지만, 예측할 수 없는 것들이 많이 두려웠다. 아직은 이 세상과 세계가 너무 크고 그 큰 세상이 품은 많은 선택지들 사이에서 어떤 것이 옳은 것인지를 구별할 수 있는 힘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디는 초기 결정 몇 가지에서 큰 교훈들을 얻었다. 무언가 선택이 잘못되었고, 힘들어했고, 그 상황을 빠져나오는 동안 불안해하고 걱정했다. 나는 그런 주디에게 하나 강조했던 사실이 있다.


걱정은 할 필요가 없다.


내가 주디에게 바라는 건 이거 하나 빼곤 아무것도 없었다. (아니 사실 몇 개 더 있었다.) 불안해하고 걱정하는 것은 실제 상황과 문제 해결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걱정을 하는 것보다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시간을 보내는 게 훨씬 더 효과적이다. 문제를 해결하고 나면 걱정도 사라지고 고통도 사라진다. 하지만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찾는 건 그리 쉽지 않다. 그러니 다들 걱정을 택한다. 하지만 이번에 방법을 찾지 않으면 다음번에도 택할 수 있는 선택지는 걱정뿐일 거다.


주디는 셰어하우스에서 집주인과의 문제로 꽤 오랫동안 걱정을 했다. 걱정을 하다 한 번은 집에서 나올 수 있었던 기회를 놓쳤고, 꽤 오랜 고통 속에 머물기도 했다. 나는 그렇게 고통 속에 보내는 이 시간이 너무 아까웠다. 걱정으로, 고통으로 보내기엔 우리의 시간은 정말 짧고 소중하다. 바꿀 수 없는 것에는 그리 큰 마음을 쓰지 않는 것이 좋다. 하지만 바꿀 수 있는 기회가 온다면 더는 걱정 같은 게 비집고 들어오지 못하게 그 기회를 빨리 낚아 채야한다. 나는 그게 우리의 소중한 시간을 귀하게 보내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집 문제를 앓고 있을 때 나는 주디에게 걱정을 하지 않으면 된다고만 얘기했다. 기회가 보였을 때 그걸 빨리 잡으라고 강요하고 싶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런 실수 또한 주디에게 큰 교훈이 될 거였기 때문이다. 사실 그 정도는 사소한 실수다. 이런 선택지 사이에서 작고 사소한 실수로 배우고 큰 실수를 하지 않게 된다면 실수도 해볼 만한 가치가 있다. 반복된 잔소리 덕인지, 전번의 교훈 덕인지 다행히 주디는 이제 걱정을 하면서도 가끔은 걱정하지 않는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 같다. 그렇게 걱정 없이 지내다 좋은 집으로 이사를 하게 됐으니 걱정 없는 삶이 정말 좋은 결과를 가져다준 것 같지?  주디는 겁쟁이지만 또 용감하고 씩씩하다. 그러니 호주에 홀로 오지 않았겠나!  나는 주디가 앞으로도 잘 해낼 거라 믿는다. 주디는 사람을 끌어당기는 힘을 가지고 있어서 앞으로도 그 복을 가지고 즐거운 날들을 보낼게 틀림없다는 걸 안다.


주디는 호주에서 돌아갔을 때 다시 취준생이 되겠지. 어떤 미래가 다가올지 막연하고 아득할 거다. 그게 주디를 짓누르고 아프게 할지도 모른다. 그러면서 다시 걱정과 불안이 스멀스멀 피어오를지도. 하지만 주디는 주디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크고 강하다. 주디는 상황을 이길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 스스로를 제한하기보다 더 크고 멀리 뻗어나갈 수 있는 주디가 되기를. 주디! GOOD LUCK!

매거진의 이전글 호주의 소크라테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