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n은 호주에서의 첫 코워커(co-worker)였다.
호주에서 첫 직장에 가던 날, 일찍 도착한 나는 사무실 직원이 와서 문을 열어줄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출근 10분 전에 도착해야 한다고 들었는데 거긴 그럴 필요가 없는 곳이었다.
함께 들어간 동료들과 인사를 나눴다. 처음이라 정신이 없어서 이름을 말해주는데도 머릿속에 박히지도 않았다. 한참을 몽롱하게 인사를 하는데 한 동료가 내게 Where are you from?이라고 물었다. I’m from South Korea 했더니 어? 션도 한국인일 텐데? 했다. 션 한국 이름이 뭐였더라?라고 말하는 순간 저 멀리 션이 걸어 들어왔다.
션은 출근 시간에 거의 딱 맞춰서 출근을 했다. 아니 아마 1-2분 늦었을지도? 나는 20대의 전부를 남자들의 세계 안에서 보냈다. 그래서 호주에서는 한국 여자애들을 많이 만나고 싶었다. 그래서 일터에서 한국 남자애랑 일하게 된 거? 음… 한국인이랑 같이 지내면 일하기는 편하겠네 싶었다. 션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내가 했던 생각은 딱 거기까지였다.
그런데 걸어 들어온 션이, 굉장히 잘생긴 거다. 션은 마치 아이돌처럼 생겼다. 션은 심지어 키도 크다. 이건 내 객관적인 평가만은 아닌 게 우연히 션을 알던 다른 친구도 나와 같은 이야기를 했다. 션은 진짜 훤칠하다.
션은 차림새도 깔끔했다. 나는 그 회사에서 박스에다가 물품을 넣어 포장하는 일을 했는데 박스들의 먼지들 때문에 손이 꺼뭇하고, 포장하며 온몸을 썼는지 옷도 꺼뭇꺼뭇했는데 션은 어떻게 세탁을 하는 건지, 어떻게 일을 하는 건지 항상 옷이 깔끔했다. 또한 나는 출근 전에 급하게 옷장에서 옷을 빼서 입느라 맨날 옷이 심각하게 구겨져 있을 때 션의 옷은 구김 없이 빳빳했다.
아마 그건 션의 성향 때문이려나? 션은 세심하고 꼼꼼한 편이다. 다른 말로 하자면 완벽주의자에 가까워 보였다. 완벽주의자는 보통 스스로가 세운 기준에 엄격할 때가 많다. 나는 완벽한 걸 추구하는 건 정신 건강에 좋지 않다고 믿는 편이다. 물론 내가 대충 살겠다는 말도 아니고 완벽한 게 항상 나쁘다는 말도 아니다. 다만 최선을 다하되, 그것이 언제나 최상일 필요는 없다는 말이다. 내가 본 스스로에게 철저한 기준을 세우는 사람은 나는 물론이고 남에게, 세상에게도 그 기준이 남다른 경우가 왕왕 있었다. 그 기준을 자꾸 의식하다 보면 스트레스가 안 생길 수가 없다. 세상에 완벽이라는 것만큼 추구하기 어려운 것이 있을까? 어떤 것을 틀림없이 해내려고 하다 보면 당연히 피로감이 생길 수밖에 없다. 그렇게 완벽을 쫓다 보면 알게 모르게 스스로에게 생채기를 낼 수 있다. 션과는 2주밖에 같이 근무하지 않아 그 애의 상처는 잘 모른다. 하지만 스스로에게 거는 기대가, 세상에 거는 기대가, 크고 또 사소해서 그만큼의 결과를 받지 못했을 때 무너짐을 여러 번 겪지 않았을까 한다.
스스로에게 조금 더 관대해지는 게 좋다
나를 포용해야, 타인도 포용하기가 쉬워진다. 나를 몰아세우면 남도 몰아세우기 쉬워진다. 물론 션은 아주 착한 친구라 남을 쉽게 몰아세울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분명 나에게 너그러워지는 건 앞으로 세상을 살아가는데 큰 도움이 될 거다. 나까지 나를 눌러버리기엔 세상은 이미 충분히 각박하고 험하다.
나는 션에게 칭찬을 꽤 자주 했다. 아니 션이 직장 선밴데 내가 칭찬을 해도 되나? 그래 좋은 말을 했었다. 일을 잘할 수 있게 알려준 것도 굉장히 고마웠고, 일 하는 걸 보면 또 잘하는 것처럼 보였다. 션의 꼼꼼함은 그 애가 겪은 시행착오를 기억하게 했고, 그런 션에게 배운 나는 손쉽게 일에 적응해 나갔다. 나 같이 별생각 없이 배우는 사람에게 시행착오를 기억하는 일은 턱도 없는 일이다. 션은 게다가 영어를 잘하니까 뭐든 능숙해 보이는 면도 있었다. 내가 한 칭찬은 그러니 모두 진심이었다. 그걸 자꾸 재해석하고 아니라고 부정할 필요가 없다. 션은 내가 어떤 좋은 말을 해도 본인이 믿는 자신과 다르면 그걸 절대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 자꾸 내가 잘못 생각했다는 힌트들을 찾으려 했다. 그냥 스스로 좋은 사람이라고 믿으면 된다. 스스로가 자신의 가장 큰 지지자가 되어줘야 한다. 세상 그 누구에게 보다 자신에게 가장 친절해야 한다. 나를 믿고 그 힘으로 나아갈 때 세상과 세계에게 자신만만해질 수 있다.
션에게는 여전히 이 말을 하고 싶다. 션! 스스로에게 언제나 말랑하게 구는 거, 잊지 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