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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배 Zoe Feb 23. 2023

언니의 평온함 유지 비결

Gloria 언니는 평화주의자다.

글로리아 언니는 셰어하우스의 룸메이트였다. 호주의 셰어하우스 중 생판 모르는 사람과 2인 1실을 사용할 수 있는 곳이 얼마나 있을지 모르겠다. 내가 지내던 곳에서는 우연히 그런 자리가 났다. 당연한 기회는 아니었다. 언니와 나, 우리는 2인실 사용을 흔쾌히 받아들여 만날 수 있었다.


언니는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왔다. 한국에서 태어나 어릴 때 이주해 간 영주권자다. 한국인들 사이에서는 설명이 필요해질 때가 많아서 첫 만남에 꼭 하는 인사말과 같았다. 언니는 나와 같은 워홀러였지만 특정 스포츠 종목의 강사로 일을 했다. 그 종목 선수를 꿈꾼 과거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지만, 평범한 워홀러들이 할만한 일은 아니었기 때문에 나는 그런 언니가 멋있다고 자주 생각했다. 아이들 수업을 하고 와서 그날 재밌었던 일을 이야기해주는 언니를 볼 때면 언니는 일을 하며 도리어 힘을 얻는 것처럼 보였다. 퇴근하고 온 언니는 지쳐 있었지만, 어딘가 기운이 넘쳐흐르는 게 느껴졌다.


언니는 평화주의자다. 대자연의 아프리카에서 자라와서 언니가 자연의 넓은 마음과 평화를 닮았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 적도 있다. 언젠가 한 번은 언니를 불편하게 하는 사람에게 왜 그런 사실을 말하지 않는지를 물은 적이 있었다. 언니가 그 사람을 피하느라 신경을 쓰는 게 많이 느껴져서, 나라면 불편하게 만들지 말아 달라고 말했을 거 같아 물은 거였다. 언니는 본인이 참을 수 있는 거라면 굳이 다툼으로 번질 요소를 제공하고 싶지 않아 했다. 잘못된 걸 알았지만 분쟁이 생길까 꾹 참았던 거였다. 나는 약간 반골 기질이 있어 잘못된 걸 은근스레 지적하려 드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언니가 평화를 위해 무언가 참는 게 느껴질 때면 배우고 싶었다. 바꾸려 드는 게 정답이 아닐 수도 있으니까. 그게 상황을 나쁘게 만드는 걸 수도 있으니까. 언니가 있었기 때문에 그 집은 더 평화롭게 유지될 때가 있었다. 분명.


글로리아 언니는 정말 침착한 데다 참을성이 많다. 백패커에서 함께 지냈던 친구들은 방을 구하지 못해 골머리를 앓을 때 정말 싼 가격에 셰어를 내주는 곳을 발견했었다. 정 방을 못 구하면 그곳에 들어가야지 대화하는 걸 들었다. 백패커 친구들은 다른 집을 구해 둥지를 틀었고, 내가 언니를 만났을 때 언니는 그 친구들이 가지 않았던 그 보금자리에서 갓 떠나왔었다. 언니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싼 가격이 그저 싼 게 아니었다.


빨래는 일주일에 한 번 그것도 모두가 함께 모아서 돌려야만 했고, 식사는 공동으로 이루어져서 일주일에 몇 번씩 모든 이들을 위한 식사를 개인이 부담해서 준비해야 했기에 식비가 꽤 들었다고 했다. 새벽과 저녁, 주말에는 셰어하우스에서 거의 강제로 진행하는 일정이 있었고 그것 때문에 제대로 된 일자리를 구할 수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 집에 있던 모든 이들이 일을 구하지 못하고 집 생활만 했다고. 그렇게 4개월의 시간을 집에서만 보내다시피 했댔다. 언니가 4개월을 지냈던 이유는 최소 기간 4개월을 채우지 않으면 보증금 400달러를 돌려주지 않겠다고 해서였다. 처음에는 이런 사항에 관해 이야기를 해주지 않아서 그곳의 생활이 어떻게 펼쳐질지 알 수 없었기 때문에 그곳에 묶이게 된 언니는, 하는 수 없이 그 시간을 견뎌낸 것이다. 어처구니없는 그곳에서 언니는 분명 평온하고 온화하게 지냈을 거였다. 우리가 함께 지낼 때 있었던 많은 일들을 속으로 참고 겉으로 무던하게 넘겼던 언니처럼.


대다수 사람에게 종교는 심신의 건강에 큰 도움이 된다.

언니는 교회에 다녔다. 일요일 전날이면 언니는 항상 내게 예배 끝나고 어딜 갈 건데 같이 가겠느냐고 제안했다. 무교의 신념이 확고한 나는 결국 가지 않았지만, 교회의 놀이 활동을 하면서 생긴 재미난 일화들을 언니에게서 들을 때면 나도 교회에 한 번쯤은 가보고 싶어질 정도였다. 종교 때문이 아니라 그 공동체와 소속감이 좋다는 걸 알고 있어서 그랬다. 밀크 비치에 버너를 챙겨가서 신나게 수영하고 라면을 먹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나도 그날같이 가볼걸 싶었다. 함께 하는 사람들과 즐겁고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것, 그것만큼 우리 인생에 반짝이는 일은 없으니까.


언니의 평온함의 근원은 바로 언니가 믿는 하나님이지 않을까 했다. 한낱 작은 인간인 내가 이런 말을 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언니를 볼 때면 언니의 하느님은 언니를 많이 아끼고 사랑하시는 것처럼 보였다. 언니에게선 꼭 그런 너른 기운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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