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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배 Zoe Sep 27. 2023

눈을 가리고 있던 건 누구였지

23-02-12


오전에는 흐렸다가, 잠깐 맑아졌다가, 비도 왔다가, 산에 구름이 눈처럼 소복이 쌓였다. 내 목적지인 저 산에 구름이 걸려 있으면 오늘 제대로 여행을 할 수가 없다. 내가 움직이려는 시간이 되니 다행히 또 날이 개어 햇빛이 쨍쨍해진다. 덕분에 산으로 올라가는 길, 큰 나무들 사이로 햇살이 조각조각 부서져 내린다.



드라이브를 하는 어느 시점에 틀어져 있던 노래에서 "꽃잎이 흩날리듯이~"라는 구절이 나왔고 때마침 내 시야 앞으로 나뭇잎이 꽃잎처럼 낙하했다. 그래서 난 자꾸 내가 주연 같다. 어떻게 나뭇잎이 그 부분에 그렇게 흩날렸지. 정말로 영화 같았다. 이런 날의 잔상이 내 눈을 멀게 했는지도 모른다. 자꾸 이런 감동적인 날의 잔상에 시달린다. 조금만 행복이 덜 해도 그 행복이 행복이 아닌 것처럼 여겼다.



웰링턴 산은 기대 이상이었다. 호주의 거의 모든 장소가 그렇다. 어딜 갈 때 기대를 아주 많이 하고 가는 건 아니지만, 실제로 봤을 때의 광활함은 도무지 어떤 사진으로도 담을 수가 없기에 어느 장소에 가던 엄청난 전율이 인다. 이러니 다들 좋다고 했구나. 이러니까.


집으로 돌아와 보니 파도소리가 들린다. 집에서는 항상 파도치는 소리가 들린다. 해가 지는 편에 위치해 있어 해가 지는 4시면 눈이 멀 것처럼 빛이 부서진다. 그렇게 눈이 먼다면 그것도 그것 나름대로 좋을 것만 같다.



길게 늘어선 해변을 따라 강아지들이 자주 산책을 나온다. 강아지들은 어디서 구해 오는 건지 나뭇가지들을 물고 있고 가끔 욕심이 많은 강아지들은 두 개씩도 물고 다닌다. 모래사장에는 아기 발자국, 새 발자국, 강아지 발자국이 도란도란 모임을 가졌다.


사람들은 해변에 뛰어들고, 강아지들도 마음껏 바다를 즐겼다. 한국에서는 사람을 피해 사진을 찍기 위해 항상 노력했다. 하지만 이곳의 풍경은 사람이 있어야 비로소 완성된다.


사뿐사뿐 여유롭게 걷는 노부부들, 강아지와 함께 산책 나온 견주들, 던져진 원반을 잡기 위해 바다로 들어가는 강아지들, 러닝을 하는 사람들, 비치타월을 깔고 태닝을 하는 젊은 여자애들, 가끔은 윈드서핑을 하는 사람들, 가끔은 서핑을 하는 사람들, 가끔은 패들보드를 가지고 오는 사람들.



강아지 3마리는 바다인 줄 알고 오물을 향해 뛰어들었다. 더러워져가는 강아지들을 실시간으로 바라보며 견주들은 더욱 한껏 웃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휘저었다.


여기, 이런 곳에서 나는 자꾸 불만을 토로하고 있었나? 시드니보다 덜 행복하다며 불평했던 건가? 시선을 조금만 돌려봐도 이런 행복이 넘치고 있었는데. 아마도 내가 보려 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바보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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