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2-15
오늘은 샐러드 공장으로 출근하는 날이다. 요즘 샐러드 물량이 많아서 그런지 아침 일찍부터 일을 시작한다. 그리고 꽤 오랜 시간 일을 한다. 막 섞여 있는 샐러드를 퍼서 샐러드 볼에 담아놓는 작업은 이 공장의 어떤 작업보다도 꽤 힘든 일이다. 다른 워커들의 말을 들어보면 이 공정이 제일 하기 싫단 사람이 많았다.
로스터(근무 일정표)를 보니 내 이름이 목, 금요일에 적혀 있다. 보통 나는 근무 일정을 하루 전에 문자로 통보받는다. 다음 날 일을 할지, 안 할지, 어디로 가게 될지 알 수 있는 건 전 날 오후쯤이다. 나는 이 로스터 덕분에 내 목요일, 금요일 출근 일정을 미리 알게 됐다. 팀리더가 내가 어느 나라에서 왔는지 묻더니, 아마 여기 고정시키려고 물었던 건가? 싶기도 하다.
퇴근을 하면 도시락을 싸는 건 일상이다. 시드니에 있을 때는 매일 도시락을 싸다가, 여기 와서는 이틀 치를 한꺼번에 싼다. 빨래를 돌려놓고 러닝을 나간다.
해변 옆 산책로에 서니 저 멀리 바다에는 요트들이 둥둥 떠다니고 있다. 해변 바로 앞에는 모녀 같아 보이는 사람들이 바다를 보며 이야기 중이다. 그 오른쪽 가까이 윈드서핑을 준비 중인지 요트의 돛이 바다에 누워 있고 그 옆으로 사람이 몸을 담그고 있다. 그 앞바다에 산책 중인 두 사람이 지나가고 오른쪽으로 시선을 더 돌리면 내가 있는 산책길이 나오는데, 저 앞으로 러닝을 하는 사람이 열심히 달려가고 있다. 조금 더 옆으로 보면 학교가 있다. 아이들이 운동장에서 운동에 한창이다. 그 풍경 중간중간에 해변가의 나무들이 바람을 맞아 이리저리 나뭇잎을 흔들거린다.
완벽하게 평화로운 풍경이다. 바다 위의 요트는 하얗기도, 까맣기도 하다. 경주를 하는 건지 놀이를 하는 건지 둥그런 원을 그리며 빙글빙글 돌고 있다.
나는 호주에 경험을 하러 왔다. 여러 많은 경험을 하고 있지만 그중에 최고는 평화구나. 이 평화를 알게 되었으니 나는 이걸 유지하기 위해서 살아야겠구나. 오늘은 날도 따뜻해서 기분이 너무 좋고, 또 인생이 이렇게나 아름다울 수 있는지에 대해 감탄하게 된다. 요트가 떠다니는 풍경을 보고 있을 때의 묵직한 울림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자고 일어난 아침에 늦었지만 생각지 못했던 밸런타인 선물도 받았다. 미치도록 평화로워서 감동적이다. 그래서 나는 눈물이 마를 새가 없이 산다. 행복에 겨워 운다는 게 이런 기분이었구나. 감동이 마음 안에 자꾸 요동친다. 어떻게 이런 경험을 할 수 있게 되었는지 경이로운 감정이 나를 휩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