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이배 Zoe Sep 30. 2023

근육 빵빵 낭만가

23-02-17


우체국에 들리다가 원래 가던 해변 반대편으로도 해변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전혀 가본 적 없던 길이라 이런 근사한 곳이 있는 줄을 몰랐다.



요 며칠 나는 같은 노을을 봐도 집 안에서보다 바깥에서 봐야 하는 사람이란 걸 알았다. 어제의 노을을 봤을 때의 감상평은, "우와 예쁘다"였다.


오늘은 별이 떠 있는 시간에 출근을 했다. 새벽 4시. 시계가 없는 공장에서 컨베이어 벨트 속도에 맞춰 기계처럼 일을 하고 나면 요즘엔 11시간이 훌쩍 가 있다. 샐러드 공장이 좀 웃긴 게, 요즘 일이 많아서 11시간을 조금 오버해서 일을 하지만 12시간은 절대 넘기지 않는다. 12시간이 넘어가면 페이가 2배 이상으로 뛴다. 그래서 전에는 11시간 50분을 일하고 끝났던 적이 있다. 그것도 해야 할 물량이 남아 있었는데 갑자기 그 샐러드들이 전부 폐기 됐다. 팀리더는 어이없어했지만 다른 워커들은 11시간 50분 근무가 익숙하다고 했다. 아무래도 누군가 고의적으로 샐러드를 가져다 버린 것 같다는 의심이 피어올랐던 부분이다.


11시간을 일 하고 와도 한창 낮이라 편지를 부쳐놓고 와서 낮잠을 한숨 잤다. 4시에 출근하려면 나는 2시 반에는 일어나는데 일찍 잠들 수가 없었다.


그리고 노을이 지는 해변에서 하루를 마무리하러 나갔다. 나는 사람들이 별스럽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굉장한 낭만파다. 그래서 내 몸이 지치건 말건 우선 오늘 나가야만 하겠단 생각이 들었다. 요 며칠 집 안에서 힘들었던 경험도 내 발길을 더욱 밖으로 이끌었다.


그리고 해변으로 걸어가는 길에 이런 생각을 했다. 나는 넷플릭스를 진짜 싫어하게 됐다고. 코로나 시기에 사람들에게 큰 재미를 준 고마운 플랫폼일지 몰라도 지금은 사람들의 발목을 잡는 악당 같이 느껴진다.


대표적으로 넷플릭스지만 이 넷플릭스란 말은 광범위한 콘텐츠들을 포함하고 있다. 이 멋진 풍경들을 뒤로하고 방 안에만 머무르던 수많은 사람들이 떠오른다. 사람들은 드라마나 영화를 보며 환상적인 이야기에 매료된다. 하지만 방 안에서 넷플릭스만 봐서는 온전한 나의 낭만은 만들어 낼 수가 없다.


집 옆의 아주 큰 해변은 그냥 모래사장만 있었는데 반대편의 작은 해변가에는 벤치가 있다. 나 같은 낭만파는 '거기에 가서 글을 써야겠다.' 구상하고 떠난다. 이왕이면 사랑을 담은 글이면 더 좋겠다는 달뜬 마음으로.


애쓰지 않아도 쉽게 쓸 수 있었다. 그냥 보이던 모든 것을 적기만 하면 됐다.



해변으로 가는 길 옆으로 서있던 모든 집들의 창문엔 노을이 담겨있다. 파도 소리의 박자와 함께 헤엄치는 사람들이 있고, 강아지들은 서로의 냄새를 맡고 싶어 뛰어다니고, 아이들은 그냥 신이 나서 뛰어다닌다. 사진작가는 이 풍경을 담기 위해 여기저기 자리를 옮겨가며 분주하다.


노을이 지는 곳의 바다색은 정말 오렌지빛이었다. 출렁거리는 그 주황이, 마음을 얼마나 따사롭게 하는지. 갈매기들이 갑자기 떼로 운다. 풉 웃게 되는 뜬금없는 소리였지만 그것조차도 평화롭다.


조그만 아이는 작은 고사리 손으로 아빠가 손에 쥐여준 조개를 들고, 있는 힘껏 던진다. 그러면 그 조개는 해변가에서 겨우 파도의 꼬리만큼 닿는다. 그 작은 기쁨이 저 작은 아이에게 얼마나 큰지 콩콩거리며 발을 구른다. 그러면 그 콩콩거림에 내 마음은 땅이 흔들리는 것처럼 요동을 친다.



나는 이런 경험을 나 혼자 누리기가 싫다. 나는 몸의 근육도, 마음의 근육도 끝내 줘서 11시간 동안 기계처럼 일하고도 노을을 보러 바깥에 가는 체력이 있다. 일이 바쁜 거랑 내 평화랑은 별개다. 일과 내 삶을 분리시켜 평화를 찾을 수 있다. 내 하루를 그냥 버리고 싶지가 않다.


여기 사람들도 다 평화롭게 살지는 않는다. 샐러드 공장 사람들을 보면 기계처럼 일하기 위해 자꾸 푸시하고, 못하면 은근스레 눈치도 주고, 일이 밀리면 스트레스 받아한다.


하지만 다르게 사는 사람들도 분명 있다. 퇴근하고 가족들과 해변에 와서 수영을 하고 노을을 보고 산책을 하는 평화를 아는 사람들도 있다.


나는 이 평화를 알게 된 사람으로서 사람들을 바깥으로 끌어내고 싶다. 이 좋은 걸 나만 누리기가 싫다. 나만 웃고 있기 싫다. 같이 사는 사회다. 함께 행복해야 내 삶도 더 윤택해진다.



글쎄 치열하지 않은 삶은 없는 거 같다. 무언가 도전하고 일을 열심히 하는 사람만이 치열하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의 깊숙한 안, 치열한 투쟁을 보게 된다. 다들 힘이 별로 들지 않는 일이라고 치부하고 말지만 오히려 몸을 쓰는 것보다 더 힘에 겨운 내면의 싸움을 한다. 나는 운동을 두세 시간 해도 잠을 말끔히 자지만 걱정하고 불안한 날에는 뒤척이고 컨디션이 급격히 나빠진다. 마음속 투쟁은 몸이 알아챌 정도로 힘든 노동이다.


몸의 근육을 키우는 게 중요하듯 마음의 근육 또한 키우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 생각한다. 그 둘을 적절하게 키워뒀을 때 느낄 수 있는 인생의 생생함을 알게 된 이상 이걸 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


"걱정하지 않고 살기", "스스로를 사랑하기", "있는 지금을 온전히 느끼며 감사하기" 같은 걸 말하면 "나는 아니야", "나는 달라", "나를 인정해 줘"라고 아우성치는 친구들을 자주 느꼈다.


더 부드러운 것만 찾다 보면 자꾸 연약해지지 않을까? 요즘 나는 간이 거의 안 된 음식을 먹다 보니 조금만 짜고 매워도 아주 예민해진다.


진짜 맛있는 인생이 기다리고 있다면, 맛있는 인생을 음미하도록 하는 도전을 해보지 않을 이유가 있을까?




이전 21화 하이, 태즈메이니아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