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1-26
너무 추웠던 바람에 오래 못자고 일어났다. 나눠준 담요에 내가 챙겨 온 두툼한 비치타월까지 덮었는데도 한기가 돈다. 리클라이너가 불편했는지 바닥에 누워 자는 사람도 있다. 계속 깨서 줄줄 흘러내리는 양말을 올리느라 밤에 고생 아닌 고생을 했다.
밥은 어제 마트에서 사 온 빵으로 대체하고 따뜻한 커피만 한잔 시켜 바다를 보고 앉았다. 그리고 책을 꽤 많이 읽었다. 데이터가 터지지 않는 곳에선 책을 읽는 게 정말 딱이다.
태즈메이니아가 한국의 제주도라고 알려진 바람에 나는 그만큼 가까운 거리와 크기를 생각했다. 배로는 10시간을 달려왔고, 내가 가야 할 호바트라는 도시는 크루즈가 있는 부두에서 3시간 반을 달려가야 한다. 남한의 3분의 2 크기만 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차로 달리다 보니 느낌이 비슷하다. 말을 키우고 초콜릿을 만드는 관광산업이 발달해 있다.
나는 이 호주의 화장실 문화를 꼭 어딘가에 알리고 싶었다. 아마도 캠핑 문화의 발달 때문이겠지? 분기점 같은 곳마다 화장실이 있는지에 대한 안내가 있다. 그리고 내가 가본 화장실은 거의 모든 곳이 깨끗했다. 한국의 백화점 화장실을 생각한다면 한국이 깨끗하지만 공공화장실 대부분을 생각해 보면 나는 호주의 화장실이 더 관리가 잘 된다고 느낀다. 화장실 휴지가 비어있는 곳을 본 적이 없다. 아마도 청소 노동자가 시급이 높은 것도 한 몫할 것이다. 당연하게 기본 시급을 받을 뿐만 아니라 청소일은 대부분 다른 일보다 시급이 높거나 한 청소 건물당 단가가 높다.
태즈메이니아 다음 행선지로 뉴질랜드를 생각하고 있었다. 내가 뉴질랜드에 기대했던 풍경을 이곳에서 만났다. 내비게이션이 알려준 길로 왔지만 어쩐지 평범한 길은 아닌 듯 구불구불한 길이 나왔다. 처음 만나보는 탁 트인 멋진 길이었다. 운전하기엔 어려웠지만 길 자체가 고즈넉했다. 이 길은 달리는데 보이는 모든 세상에 나 혼자만 있는 것 같을 때가 있었다. 그런 도로를 달리고 있자니, 갑자기 주인공이 된 거 같은 기분에 사로잡혔다. 진짜 모험을 떠나러 가는 여행자 같은 그런.
일은 호주인들과 하겠지만 숙박은 한국인이 셰어 하는 곳에서 지내기로 결정했다. 숙소를 정하는데 너무 많은 에너지를 뺏기고 싶지 않았다. 지금의 호주에서는 코로나 이후로 줄어든 셰어하우스 덕분에 셰어 전쟁이 벌어지고 있으니까.
셰어하우스의 집주인(?) 부부는 먼 길 오느라 고생했다며 저녁을 준비해 주셨다. 타즈메이니아에서 이렇게 따뜻한 시작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게 다가 아니다.
이동하기 전 받았던 집 사진보다 실제로 본 이곳 풍경이 멋지다. 이 집주인 분들은 이 집을 멋진 풍경으로 자랑하지 않았다. 나는 우연히 이분들께 연락을 했고 말도 안 되는 곳에 위치한 이 집을 얻게 됐다. 방과 거실에서 바다 뒤편으로 지는 노을이 보이는 집이다.
그리고 오늘은 오스트레일리아 데이다. 오스트레일리아 데이는 국경일인 덕에 반대편의 호바트 시티에서 불꽃놀이를 한다. 이런 걸 보면 타즈가 나를 환영해 준다고 느껴질 수밖에 없다. 이곳에서 어떤 생활이 벌어질지 모르겠지만, 타즈메이니아에 오길 진짜 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