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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배 Zoe Sep 11. 2023

죽음이 불러온 지금이었구나

23-01-18

나는 원래 일을 좀 몰고 다니는 편이다. 내가 갈 때가 되니 주문이 줄어들기 시작한다. 그래서 덕분에 일하면서 농땡이를 좀 부릴 수 있었다. 크리스마스 때쯤 알게 된 사실이 있다. 금요일이면 항상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던 이유를. 금요일 1시가 되면 피터는 금요일이라는 이유로 일을 설렁설렁한다. 그 덕에 패킹대에는 짐이 쌓였고 나는 그걸 해치우느라 진땀을 뺐던 거였다. 피터가 열심히 하지 않는 만큼 나도 그렇게 열을 내고 할 필요는 없었던 거였다. 나는 패킹대를 비우기 위해서 와다다다 서둘렀는데 말이다.


토미와는 논쟁 아닌 논쟁을 계속했다. 되도 않는 영어를 계속 말하려니 머리가 아우성을 치는 게 느껴진다. 토미는 행복이 돈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걸 어떻게 확실하게 말할 수 있냐며 그런 말을 Poor People만 말하는 거라 한다. 나는 그래서 "아니거든! 내 그랜마 친구는 부자인데도 이런 말 하거든?" 하며 계속 반박했다.


토미가 원래 바 사업을 운영했었단다. 어쩐지 토미 그릇이 큼직해 보였다. 토미가 나보고 자기는 다른 사람의 행복을 위해서 항상 장난치고 하는 거라고 말해서 I know! So I told you that you can be more happy!이라 말했다.


나는 책 추천을 몇몇 코워커들에게만 했다. 토미는 자꾸 본인만 괴롭힌다며 내가 성가시다는 듯 장난을 친다. 사실 토미보다는 매일 스스로 화를 못 이겨 Fuck을 입에 달고 사는 트로이나, 사람들의 안 좋은 점을 찾아 뭐라고 하고 자를 궁리만 하는 로키 매니저한테 심리적 안정이 더 필요하다. 하지만 그들에게 내 말이 들리지 않을 거라는 걸 안다. 이들에겐 후회가 부족하다. 후회가 부족하면 내가 아무리 말해도 제 고집을 스스로 이길 수 없다.


토미가 몇 살이냐 물어서 생각하게 됐다. 나는 어쩌다 40이 넘는 아저씨에게 설교를 하고 나보다 나이 많은 사람들을 보고 후회가 부족하다고 생각하는지.


집에 와서 칼럼 하나를 읽다가 깨달았다. 이건 모두 해경에서 경험한 걸로 파생됐다. 그니까 해경에서의 시간이 분명 나에게 어느 정도 도움은 됐다고 생각했지만 나를 또 이렇게나 전적으로 지지해 주고 있는지 몰랐었다.


나는 죽음과 가까이 지냈다. 목숨이 붙어있지 않는 사람의 모습을 목격한 적도 있고 그 끝없던 실종자 수색을 하며 검은 바다를 푸른 바다를, 붉은 바다를 자주 표류했다. 나는 가끔 일이 늘어났다고 생각하며 짜증을 냈고 결국 그런 일을 귀찮게 느끼는 내가 미워져 견딜 수 없어 그곳에서 나오게 됐지만 그 바다의 물결을 보며 죽음을 자주 생각했었다. 그 죽음의 행렬을 바라보며 죽음을 깨달았었다.


그래서 나는 지금 당장 내일 죽어도 아쉽지 않게 살게 됐다. 나의 일기장 끄트머리엔 언제나 유서가 적혀있다. 유서의 내용은 보통 이런 말이다. 나는 내 세상이 끝나는 날까지 행복하게 만족하며 살고 가니 나를 너무 안타까워하지도 말고 슬퍼하지도 말라고.


충분히 행복하게 살고 간 나를 기리느라 살고 있는 사람들의 인생이 엉망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그러니 이 말을 언제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하루를 매일 보내게 됐다.




죽음에 대한 고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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