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이배 Zoe Sep 10. 2023

행복은 신기루였는데

23-01-15


오늘 또한 해변 여행을 한다. 내 잦은 여행 메이트 주디와 함께다. 첫 방문지인 샤크비치인데, 공사 중이라서 비치 이용이 불가능하다. 다행히 샤크 비치에서 걸어서 밀크비치를 갈 예정이었기에 그대로 밀크 비치로 걸어간다.



그런데 이 길이 또 끝내준다. 저 멀리 보이는 시드니 시티의 풍경과 푸른 바다의 조화가 아름답다. 걷는 내내 내가 지금 얼마나 소중한 순간 안에 있는지를 계속 생각한다. 통과하는 지금 순간이 어찌나 눈 부신지 눈이 자꾸 시리다.



밀크 비치의 그늘에 앉아 초코빵과 콤부차, 망고를 먹었다. 우리는 비치에 해수욕하러 오는 게 아니라 바다를 보며 뭘 먹기 위해 온다. 카페에 앉아 얘기하듯 비치에 앉아 수다를 떤다.



한참 얘기하다 보니 어떤 보트가 앞에 멈춰 섰다. 인근에 작은 가게 하나도 안 보인다 했더니 아이스크림을 파는 보트가 왔다. 정말 색다른 틈새시장이다. 보트가 오자마자 사람들이 달라붙어 문전성시를 이룬다.


주디와 나는 통하는 데가 분명 많다. 예를 들면 우리는 엄청난 경험주의자다. 그래서 주디에게 묻는다. "주디야. 너는 어떻게 혼자서 호주로 올 수 있었던 거 같니?" 하고. 주디는 언니의 덕이라고 한다. 언니가 미국에서 어학연수 중에 놀러 오라고 했던 통에 혼자 비행기를 타봤고, 그때 가봤던 경험으로 캐나다 교환학생도 가볼 수 있었다고.



주디와 한참 재밌는 시간을 보내다가 다음 장소로 이동했다. 갭파크 인근은 일요일이라 그런지 차가 정말 많다. 그 인근을 세네 바퀴쯤 돌고 돌아 겨우 빈자리를 찾아 주차했다.


갭파크에서의 점심은 피시 앤 칩스다. 그냥 피시만 먹기엔 아쉬워서 해산물모둠으로 주문했는데 아주 좋은 선택이었다. 특히 홍합튀김이 정말 맛있었다.


밥을 먹었으니 한숨 푸지게 잤다. 그늘은 춥고 햇볕 아래는 따가웠지만 그래도 정말 꿀맛 같은 단잠을 잤다.


커피 한 잔 마시러 갔다가 젤라토집으로 향했다. 나는 그냥 아이스크림이 아닌 아포가토를 시켰는데 패션프루트를 시킨 주디의 아이스크림이 말썽을 부렸다. 쇼케이스 안으로도 살짝 녹아있는 게 보였는데 퍼놓고 보니 끝도 없이 흘러내렸다. 한입 제대로 대지도 못하고 흐른 아이스크림을 닦아내느라 거의 반절은 날려먹었다. 당황한 주디에게는 미안하지만 나는 숨 못쉬게 웃었다.



마지막 목적지는 갭파크였는데 철조망이 쳐져있다. 여기저기 써져 있는 자살 방지 문구를 보면 아마 사고방지를 위해 이렇게 되어 있는 게 아니었을까 한다. 여기저기 도움이 필요할 때 요청할 수 있는 전화번호가 여러 나라 언어로 적혀 있고, 비상전화기가 그 옆에 있다. 한국어도 당연히 있었다. 난 이런 걸 보면 호주는 참 사람을 살게 하는 곳이구나 라는 생각을 한다. 오늘 또한 평화로운 시드니에서 참 행복한 하루였다.




나는 행복이 찾아오는 걸 반기지 않는 사람이었다. 이만큼 행복이 차오르다니 금방 깨질 것 같아 불안했다.


진짜 그랬다. 행복은 그랬다. 모든 환경과 사람, 여건이 너무나도 알맞고 좋은 상황이 올 때가 있었다. 신이 나서 집에 앉아 넘쳐 오른 행복을 보고 "아, 나 행복하네." 그게 입 밖으로 터져 나올 정도가 되면 꼭 다음 날에 행복이 와장창 부서졌다.


운명의 장난질도 아니고, 매번 그랬다. 그걸 세네 번쯤 겪고 나서부터는 행복이 스멀스멀 찾아오는 순간부터 불안했다. 또 거친 파괴를 맞아야 한다는 신호였으니까.


하지만 이제는 행복이 두렵지 않다. 길게 지속되는 행복을 느낀 게 벌써 3년이 넘었다. 이 중 그리 행복하지 않았던 날을 손에 꼽을 정도로 나는 꾸준하게 행복했다.


행복이 허상이라고? 행복은 짧으니 그런 걸 쫓지 말라고? 그렇다면 내가 겪은 행복이 말이 안 된다. 누군가는 내 행복을 보고 사랑 덕에 가능했지 않느냐 말할지도 모른다. 나도 일부분은 그렇다는 걸 인정한다. 하지만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이 꾸준한 행복을 가지는 건 아니다.


나는 그래서 내 행복의 이유가 궁금했다. 행복을 찾아 헤맨 지 얼마 되지 않아 이윽고 알게 되었다. 이 행복의 이유를.


나는 행복을 선택했고, 이 순간에서 그 행복을 마음껏 누리기 위해 노력한다. 그리고 이제는 이 행복이 깨질까 두려워하지 않는다. 행복이 지속돼서 그런 확신을 가졌다기보다, 그냥 행복은 그럴 수도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어느 순간 이 지속된 행복이 깨지게 되더라도 행복이란 녀석은 그런 변덕스러운 성격도 지니고 있는 거란 걸 알았다.


사라질 이 행복이 떠나지 않게 잡으려 애쓰기보다 그저 주어진 이 행복을 최대한 누리기로 작정한다. 이 마음은 신기하게도 내 행복을 계속 유지시켜 준다. 이 신기한 순환 관계를 보며 나는 지금 이 순간의 행복을 간직하고 다음 행복의 챕터로 넘어가기로 한다. 나를 행복하게 해 준 시드니를 떠나 태즈메이니아로 향할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이전 18화 또 어떤 장면을 만나, 생각이 탐험을 떠날지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