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1-14
아침엔 플레밍턴 마켓에 들렸다. 토요일이면 아주 큰 과일 시장이 열린다. 전반적으로 마트보다 플레밍턴 마켓이 저렴하다. 소피는 COS상추를 항상 이곳에서 구매한다. 넥타린 2.x, 사과 2.x, 양상추 1.5, 망고 10, 15불이 조금 넘는 가격에 쇼핑을 마쳤다. 망고는 한 박스를 사서 쉐어하우스 식구들과 나눌 예정이다.
웨어하우스 인니 코워커인 멀리의 카페를 들렀다. 멀리는 코로나 때문에 웨어하우스에서 일을 시작해 지금까지 하고 있지만, 경력 10년 이상의 바리스타다. 해변 여행을 떠나러 페리를 타야 하는데 그 역 앞의 카페에서 멀리가 일을 하고 있었다. 꼭 한 번 들리겠다고 했었기에 떠나기 전 마지막 토요일인 오늘을 놓칠 수 없었다. 멀리가 내려준 맛있는 커피를 들이키며 주절주절 얘기를 했다. 멀리는 먹고 싶은 게 있냐고 했고, 나는 에그타르트를 서비스로 받았다.
멀리의 보스가 있어서 얘기를 나누게 됐는데, 멀리는 내가 곧 태즈메이니아로 갈 거라고 소개했다. 보스는 어쩌다 타즈매니아에 가느냐 물었고, 나는 Experience 경험 때문에 간다고 답했다. 그랬더니 보스는 너는 되게 Adventure 모험적인 사람이구나 한다. 이런 말을 들으면 나는 기분이 좋다. 그래서 생각한다. 이번 결정, 끝내주게 잘했구나.
선착장 옆 해변에는 패들보드를 즐기는 사람들이 가득하다. 호주는 정말 해양강국처럼 보인다. 작은 보트와 요트가 많은 건 물론이고, 해양 스포츠를 즐기는 사람도 정말 많다. 그 덕에 보트 용품을 취급하는 우리 회사가 엄청난 성업을 이루고 있기도 할 테다.
맨리비치는 내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컸다. 오늘은 날이 조금 흐리고, 파도가 정말 세서 그런지 해수욕을 즐기는 사람이 그리 많지는 않다. 맨리 옆으로 길이 나 있어 나는 그냥 그곳을 따라 걸었다. 내 옆으로 바다 수영을 하는 한 아주머니가 보였다. 이 파도가 센 바다를 뚫고 나가는 듯한 인상을 받았다. 자연과 함께 하면서도 자연에 대적하는 듯한 기분이었달까.
맨리 비치 옆으로 도착한 이곳은 셸리 비치다. 셸리는 만처럼 생긴 덕인지 파도가 별로 없어 수영하는 아이들이 가득하다. 나는 이런 이들을 보며 노트북을 펼쳤다. 내 오늘 진짜 목적은 글쓰기다. 해변을 풍경으로 집필을 시작한다. 내가 소피에게 어떤 것들을 배웠더라? 소피와 한 번 만나면 온갖 교훈들이 쏟아지는 덕에 항목들을 골라보는데도 한참이 걸린다.
이제 이동해 볼까 하고 자리에서 일어나고 보니 이 벤치는 한국인의 의자였다. 나에게 뜻깊은 시간을 선물해 준 곳이 한국인의 혼을 기리고 있었다니 더 의미가 깊어진다.
아침에 비가 왔었는데 신기하게도 날이 개이기 시작한다. 날씨 예보에 구름이 가득한 날이었는데 이렇게 화창해준다. 그 덕에 시드니를 떠나기 전 마지막 토요일이 더욱 근사해졌다. 누군가는 이런 날에 결혼을 하고, 중간중간 환호소리가 들리고 모르는 이들이 축하 메시지를 건네기도 했다. 나도 어쩐지 그 소리를 들으며 그들의 행복을 나눠가진 듯한 기분이 들었다.
가는 길에 어쩐지 이곳을 떠나는 게 아쉬워 그늘에 자리를 또 잡았다. 옆 벤치에는 노부부가 앉아 있었고, 할머니가 본인 가방이 가득 찼다며 얘기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더니 나에게 말을 걸며 케이크를 먹겠냐고 한다. 거절하기도 애매한 요청이라 감사히 받아 들었다.
할머니가 워킹인지, 워킹홀리데이인지 물어본다. 얘기하다 보니 나는 또 노부부에게 타즈매니아에 간다고 털어놓게 됐다. 부부는 타즈매니아에 여행을 가봤는데 정말 멋진 곳이라고 얘기한다. 오늘은 어쩐지 이동하기로 한 내 결정을 축하받는 날인 것만 같다.
노부부가 자리를 떠나고 나는 다시 노트북을 꺼내 읽은 책을 정리하고 있었다. 그런데 저 앞으로 여자아이 둘이 눈에 들어온다. 처음에 나는 이 애들을 보며 '저 위험한데 저러다가 넘어지면 어쩌려고' 생각했다. 바위가 너무 크고 뾰족했다. 하지만 아이들은 그런 생각에는 아랑곳 않고 자유롭게 바위를 뛰어넘었다.
그러다 왼쪽 바위에 한 아이가 올라갈 수가 없었다. 그 순간에 먼저 올라간 아이는 손을 뻗어 도움을 주려했다. 그런 걸 보고 아이들은 이렇게 서로 돕고 사회화가 되는구나 했다. 난 결국 이 아이들이 건널 줄 알고 동영상을 찍기 시작했는데 너무 멀었는지 "이 바위를 밟아봐", "저기를 밟아봐" 하다가 길을 돌아가버렸다. 난 그걸 포기의 신호로 받아들였다.
난 내 볼일에 다시 집중했고, 이제 짐을 다 챙겨 떠나려고 고개를 든 순간 두 아이가 아까 그 바위에 올라서 있는 걸 보게 됐다. 그리고 들려오는 "I did it!!"이라는 환호. 그렇게 도전했고, 성공했고, 이 아이들은 성장했다.
이 아주 작은 도전을 보며 이게 과연 한국이었어도 가능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아이들 주변에 아무리 봐도 가족은 없었다. 이 아이들을 지켜보는 사람이 없었다. 다만 한국인인 나만 우려 섞인 관찰을 했을 뿐이다. 걱정스럽게 바라보며 난관에 부딪히면 도와줘야 할 것만 같았다.
근데 그게 성장을 저해하는 거였다면? 스스로 해결해 나갈 수 있는 길을 막는 것이었다면? 아이들은 우리의 생각보다 강한데 그걸 모르고 보호한 건 아닐까? 저 아이들이 헤쳐나간 저 도전 끝에 얼마나 기뻐했는지 그것을 지켜본 이상 이런 생각을 안 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저녁은 내가 응원하고 있는 언니와의 데이트였다. 소피의 신기한 이력을 최근에 듣게 됐다. 자그마한 역 앞에서 스시집을 했었고, 그곳이 아주 성업을 이루었다고. 그 인근 맛있다고 한 베트남 쌀국숫집이다.
호주에서 많은 보호를 받고 자랐구나 싶은 생각이 드는 한국 친구들을 보게 됐다. 나는 시골에서 막 자라 그런지 어렵다는 걸 알아도 우선 부딪히지만, 많은 이들은 그렇지 못한다. 시도해 본다면 많은 걸 배울 수 있는 일이지만 도전하기를 두려워하는 다 큰 아이들을 자주 만난다.
하지만 내가 이런 얘기를 아무리 해도, 나조차도 어린아이들을 보면 보호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내가 배운 좋은 것들을 나는 내 주변 사람들에게 쉽게 얘기해 주고, 쉽게 사는 법을 함께 나누고 싶었다.
하지만 그게 배움의 기회를 망치는 거라면? 쉬운 방법을 알려주는 게 무언가 도전하는 방법을 배우지 못하게 한다면? 성취하지 못하게 한다면? 그게 아이의 열등감을 크게 자극해 바깥으로 나서는 걸 두려워하게 하는 거라면? 그걸 알면서도 나는 계속 쉽게 사는 법을 알려주는 게 맞는 걸까?
나는 적어도 내 사랑에게만은 쉽게 사는 법에 대한 설명을 멈추기로 다짐했다. 내 마음 하나 편하자고 그가 스스로 배울 기회를 내가 망치고 싶지 않아서. 순전히 내 기준이지만 어쩐지 내게는 모험할 수 있도록 지지하는 그 사랑이 조금 더 멋진 것 같다고 느꼈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