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1-01
연말이면 항상 한 해 있었던 모든 날을 돌아본다. 이렇게 좋은 일이 많았던 한 해였구나 돌아보는 게 상당히 즐겁다. 그런데 그보다 더 그때 그렇게 힘들었던 일이 지금은 하나도 기억이 안 날 정도로 아무것도 아닌 일이 됐다는 게 신기하다. 끝나지 않을 것만 같던 고난의 시간들을 정말 잊고 있었다.
2022년 3월에 나는 하필이면 학생들을 관리하는 자리에 있었다. 코로나의 최정점에 다다른 때였다. 매일 엄청난 민원에 시달렸고, 코로나 의심 학생들에겐 메시지를 보내 검사를 다녀오게 했고, 코로나 걸린 학생들의 명단을 취합해 관리하고, 약을 배부하고, 온갖 케어를 하느라 하루에 16시간쯤을 일했다. 나머지 시간에 겨우 밥을 먹고, 씻고, 잤다. 그때 아마 매일 4-5시간쯤 잤으려나? 뭘 먹고 있었는지도 잊을 만큼 정신이 없어서 책상 위에는 한 입 먹고 내팽개쳐놓은 음식들이 즐비했다. 그렇게 이 주를 보냈다. 나는 보건과 관련된 지식도 없는데 그런 일을 했다. 정작 책임을 져야 할 곳에서 관리를 떠넘기고 관리 주체에 대해 옥신각신 했던 탓이다.
같은 해에 파리와 베를린, 싱가포르, 사이판에 갔다. 그리고 나는 지금 호주에서 살고 있다. 한 해의 일기장을 펼쳐보는 건데 이게 지금 진짜 1년 안에 있었던 사실이 맞나? 싶어서 정말 이상하다. 분명 2022년의 초까지만 해도 코로나는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 안에 있었다. 그 어둠의 동굴을 우리는 마침내 통과해내고 말았다. 2022년의 시작은 어두웠으나 2023년은 화려한 불꽃놀이와 함께 시작했다. 작년의 내가 이걸 과연 예상이나 했을까?
지금의 나를 돌아보며 내가 항상 놀라는 점도 있다. 나는 진짜 부정적인 사람이었다. 긍정적인 사람을 사랑하며 나는 긍정적인 사람이 됐다. 지금 내가 하는 말을 3년 전의 내가 듣는다면 코웃음을 칠지도 모른다. "사랑에 미쳐서 얼빠진 소리를 하네" 같은 식으로. (옛날 일기를 찾아보면 난 정말 이런 식으로 말한다) 내가 겪어온 나이기에 과거에 생각했던 방식을 알고 있지만, 또 그런 생각을 했던 내가 지금은 낯설다. 그때의 나는 내가 이렇게 속 편하게 살게 될 줄 전혀 몰랐다.
이렇게 될 줄을 몰랐듯 나는 여전히 어떻게 될지 전혀 모를 길을 걸어가고 있다. 하루에도 수백 번 미래의 계획이 바뀌어 간다. 한국에 가서 박사까지 따고 교수가 되거나, 유학을 떠나거나, 여기 잠시 정착해서 떼돈 버는 일을 쫓아다닌다거나, 돈을 좀 벌어서 여기저기 여행 다니며 글을 쓴다거나. 아마 내일도 또 새로운 미래를 계획하게 될지도 모른다. 내가 뭘 하게 될지 지금의 나는 가늠할 수가 없다.
오늘 유튜브에서 니체의 말에 대한 영상을 봤다. 나는 코로나에 걸렸을 때 두꺼운 철학책을 하나 골라 읽었다. 일기를 적다 보니 내가 읽은 철학 책들이 내게 얼마나 큰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해 알게 됐다. 나는 그런 좋은 걸 알게 될 때마다 주변에 마구 뿌리고 다닌다. 그 덕에 나는 그 내용들을 오랫동안 기억한다. 그래서 삶에 철학을 적용시키기에 유리했다.
모든 것의 시작은 위험하다.
그러나 무엇을 막론하고, 시작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시작되지 않는다.
그리고 이 말 또한 인상 깊었다.
한 번도 춤추지 않았던 날은 잃어버린 날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좋다.
하나의 큰 웃음도 불러오지 못하는 진리는 모두 가짜라고 불러도 좋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복잡한 세상임은 틀림없다. 나는 그래서 더 복잡하게 살기로 결심했다. 복세복살. 복잡한 세상이라서 복잡하게 살아보려 한다. 모순적으로 들리겠지만, 진짜 편하게 살기 위한 나의 전략이다. 복잡하게 살아보면서 편하게 사는 방법을 찾고 말 거다. 하지만 그 시간들에 너무 치이지는 않겠다. 춤을 추고, 모든 날을 잃어버리지 않으며, 그렇게 2023년을 살아가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