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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배 Zoe Mar 09. 2023

네가 정말 하고 싶은 게 뭐야?

JINA는 정말 개성 있는 모습을 하고 있다.

처음에 백패커 친구들을 만났을 때 나는 지나를 보고 저 무리는 한국인들이 아닐 수도 있겠다 생각했다. 지나는 굉장히 까무잡잡한 편인 데다 옷의 차림새가 한국인답지 않다. 한국에도 개성이 있는 사람들이 많지만, 개성이 있는 한국인이라기에도 어딘가 더 독특한 느낌이 있었다. 아예 다른 나라에서 나고 자란 이처럼 보였다. 동아시아 계열인 것 같긴 하고, 피부가 조금 그을려 있는 걸 보고서 어쩌면 따뜻한 남쪽에 위치한 대만 사람인지도 몰라, 추측했었다.


지나는 목소리가 정말 귀엽다. 하지만 지나는 그 목소리로 세게 말할 줄을 안다. 화장한 얼굴을 첫눈에 본다면 다크해보일지도 모른다. 나는 지나의 화장기 없는 모습을 보았기 때문에, 그런 인상은 덜 느꼈다. 내 눈엔 화장해도 여전히 귀여워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쩌면 지나는 강렬한 인상을 원하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나는 강렬한 인상의 사람들을 만날 때면 그 안의 여린 결을 가늠해 본다. 저 모습은 여린 결을 다치지 않게 감추면서 선택한 모습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나는 지나가 비교 속에서 살아오며 제 모습을 만들어 냈다고 생각했다. 요즘 세상에는 흔하게 다들 타인과 스스로를 비교한다. 그 비교를 하다 보면 우리네 삶은 꽤 불공평하게 느껴진다. 우리가 눈앞에 선택해야 할 것이 있다면 그 선택지란 것이 좋은 것들만 있으리란 법이 없고, 가끔은 다른 사람들이 가진 것보다 비교적 좋지 않은 것들만 모여 있을지도 모른다. 지나는 그 선택지에서 무언가 더 태가 나는 것들을 골라 취하는 느낌이었다. 태가 나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니다. 하지만 태가 나는 그것이 본인이 하고 싶어서 택했다기보다 그저 태만 본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지나는 호주에 와서 본인 전공과 관련된 일을 했다. 많은 이들이 새로운 모험과 도전을 위해 떠나오는 이곳에서 도전이라기엔 애매한 일들을 했다. 지나가 그 일을 하며 아주 행복해했다면 이런 글을 적지 않았을 거다. 한국인의 시선으로 보았을 때 지나는 커리어의 연장선 위에 있었지만, 내 눈엔 삶을 살아간다기보다 그저 자소서에 적을 이력 하나를 남기며 생을 지나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지나는 그 커리어 바깥으로 나오는 걸 두려워했다. 사실 지나뿐만 아니라 몇몇 워홀을 온 사람 중에도 그런 사람들이 있다고 들었다. 오피스 일만 하다가 농장일 등 단순노동을 하는 게 체질상 맞지 않는다는 등의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고. 나는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노동의 가치가 폄하당한다고 느낀다. 오피스 일만이 대단한 일인 것처럼 생각하는 듯하다. 하지만 그런 생각을 하는 대다수는 오피스에서 별로 행복하지 않았다. 내가 그랬듯이.


나는 시골에서 자랐고 이곳에 오기 전까지도 집안 농사를 조금 돕다가 왔다. 내 일을 하면서도 쉬는 날이면 농장에 가서 일해야 할 때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이런 내 삶을 밉게 본 적이 없다. 아니 호주에 오기 전부터 나는 그런 추측을 했다. 그런 경험은 삶에 아주 큰 도움이 된다.

하루 종일 뙤약볕에서 과실을 수확하고 나른다. 그러면 해가 질 무렵엔 온몸의 기력이 다하는 기분이 든다. 지친 몸을 이끌고 집에 들어가면, 그런 날에 먹은 밥은 그렇게 달 수가 없다. 그런 날에 자는 잠은 그리 달 수가 없다. 하루를 성실히 보냈다는 기쁨 또한 얼마나 큰지. 밤에 불빛을 켜고 농장 일을 할 수는 없으니 해가 뜨고 지는 시간에 생체 리듬이 맞춰진다. 우리 인간은 진화적으로 오피스에서 일을 하며 살도록 만들어져 있지 않다. 다만 먼 과거부터 수렵과 채집을 해왔고, 우리의 몸은 여전히 그걸 기억한다. 햇볕 아래서 땀을 흘리며 일을 하는 것에는 우리가 단순히 농장 일로 치부할 수 없는 큰 가치를 품고 있다.


지나는 농장에 가기 싫어했다. 벌레도 싫고, 오피스 일을 하다가 농장 일을 한다는 게 자존심도 상했을 거다. 한국의 삶과 비교해 보자면 그리 태가 나는 삶이 아니다. 게다가 인간에게 새로운 일을 하는 것은 심리적으로 큰 위협이 된다. 하지만, 나는 거기서 지나가 분명 많은 걸 배울 수 있을 거로 생각한다. 커리어의 안에서 보지 못했던 삶의 풍부함을 느낄 수 있을 거라고. 그러고는 지나가 앞으로의 어떤 갈림길 앞에서 태가 나는 것보다 스스로를 기쁘게 하고 가치를 품고 있는 일을 택하길 바란다. 타인의 시선은 철저히 배제한, 온전히 지나 만의 시선으로 하고 싶은 일을 찾을 수 있기를. 그러기 위해 그 커리어 위에서 꼭 한 번은 옆길로 눈길을 돌리고 발걸음을 떼어 보기를. 처음 발걸음을 떼기까지 쉽지만은 않은 시간을 보내야겠지만 나는 지나가 꼭 그렇게 할 수 있을 거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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