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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배 Zoe Mar 16. 2023

태즈메이니아에서 만난 한국의 뜰

태즈메이니아 한인봉사연합회 - 1

나는 시드니에서 태즈메이니아라는 호주의 제주도 같은 곳으로 거처를 옮겼다. 시드니에서 알게 된 샌디 언니가 “워홀 때 태즈메이니아에 가볼 걸”이라는 말을 해서 결정했다. 그저 그 말 한마디에 태즈메이니아로 떠나게 됐다.


시드니에서 떠나기 전 이런저런 인사를 하러 지인들을 만나던 중 우연히 태즈메이니아 한인회 회장님의 물품 전달을 부탁받았다. 어차피 나는 차를 가지고 이동하는 거라 트렁크에 그 짐 하나 더 싣는 건 문제가 되지 않았고 마침 회장님은 내가 가려던 도시에 거주하고 계셨다.


(태즈메이니아는 한국의 제주도라 불려 나도 제주도의 규모를 생각했지만, 섬의 크기가 남한의 3분의 2 크기만 하다. 나는 멜버른에서 태즈메이니아로 10시간 페리를 타고 이동한 후 3시간을 운전해서 숙소에 도착했다.)


나는 아무런 힘이 들지 않았는데, 감사하게도 회장님은 저녁 식사 자리에 나를 초대해 주셨다. 그 저녁 식사는 며칠 전 있었던 Luna New Year의 축제 부스에서 자원봉사를 도와준 사람들에게 감사를 표하는 자리였다. Luna New Year은 우리의 설을 말한다. 호주에서는 음력설을 쇠지 않지만 중국 커뮤니티가 큰 덕에 행사 자리가 있었다. 감사하게도 그곳의 축제의 한 편에 한국을 홍보할 수 있는 부스가 마련되어 있었다. 태즈메이니아 중국 커뮤니티에서는 한인들을 배려해 Luna New Year라는 이름을 붙여줬지만 호주사람들은 설을 Chinese New Year라고 아는 경우가 많다. 행사에 적극 참여하지 않으면 이름이 Chinese New Year 행사로 바뀔 수도 있다. 그 행사를 도울 자원봉사자를 모집했고, 선한 마음으로 참여해 준 고마운 봉사자들이 있었다.


회장님은 한국의 뜰에 들러 청소를 먼저 하고 저녁 식사 자리에 가실 거라 했다. 나는 자원봉사도 안 하고 아무런 고생도 없이 저녁을 얻어먹는 게 죄송해 청소하시는 데 따라가겠다 했다.


처음에는 그랬다. 한국의 뜰을 찾아보니 그저 비석 같은 게 나왔다. 이런 작은 섬에서, 한국인들은 이렇게도 공간을 만들어 무언가 기념하는구나 싶었다. 나는 정말 얼핏 보고 그런 어리석은 생각을 했다. 그저 그걸 보며 모국에 대한 사랑이 무엇인가 싶었다.



그리고 도착한 한국의 뜰에서 나는 이 비석을 보고 울컥했다. 비석은 실제로 봤을 때도 별 다를 것 없었지만 무언가 가슴에서 뜨거운 게 끌어 오르는 기분이 들었다. 비석의 옆에 세워진 우리나라 지도에 얽힌 이야기를 들어보니 내가 한참 잘못 예상했던 것이었다.


한국의 뜰이라는 공간은 한국인들이 자국을 그리워해서 만든 공간이 아니었다. 한국 전쟁에 참여한 호주의 참전용사들(Veterans)은 치열하게 싸웠던 가평전투를 떠올리며 해마다 4월 24일마다 모였단다. 그 사람들의 정신을 한 데 모아 Korean Grove라는 공간을 만들었다. 그리고 한국전쟁에 대한 설명을 덧붙인 우리나라 지도를 그 위에 표지판처럼 세웠다. 그런데 그 지도에는 오류가 있었다. 동해가 Sea of Japan으로 적혀 있었다. 한국을 그리워하는 공간에 어울리지 않는 명칭이었다. 그래서 회장님은 운동을 펼쳐 그 명칭을 East Sea로 바꿔냈다. 그 과정은 결코 쉽지 않았을 거였다. 현재는 민원으로 인해 East Sea와 Sea of Japan이 공동 명기 되어 있다.


한인회 회장님과 몇몇은 East Sea로 이름을 바꾸는 운동을 하다 Korean Grove의 표지판 옆에 비석을 세우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가평군의 협조를 받아 한국의 뜰이라는 표지석을 그곳에 세우게 됐다. Grove라는 명칭을 어떻게 표현할까 고민하다 뜰이라는 단어를 떠올렸다고 했는데, 나는 그 명칭만큼 그곳을 적절히 표현할 말이 없다고 느꼈다. 우리나라의 뜰이 정말 그 호주의 섬에 존재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 비석을 보고 있노라면 저 너머로 어떤 동산 같은 게 얼핏거렸다.



그 도시의 Council에서 한국의 뜰 다운 조그마한 공간을 그 옆에 마련해 줬다. 한인 봉사 연합회에서는 그곳을 정갈하게 닦아 호주 참전 용사들의 이름을 세긴 현판과 한국의 뜰의 설명을 담은 공간을 만들었다. 그곳에는 한글도 적혀 있고, 아시아 동쪽에 위치한 아침이 신선한 나라인 한국에 대한 짤막한 설명도 적혀 있다.



한국의 뜰의 글자는 안두희(백범 김구 선생님을 암살한 사람이다)를 척살한 박기서 선생님이 적었다. 우리나라의 얼을 표현할 적절한 인물을 고르다 보니 그랬다고 한다. 현판에 보면 그래서인지 백범 선생님의 문장이 한 구절 적혀 있다.


내가 원하는 우리 민족의 사업은 결코 세계를 무력으로 정복하거나 경제적으로 지배하려는 것이 아니다. 오직 사랑의 문화, 평화의 문화로 우리 스스로 잘 살고 인류 전체가 의좋게, 즐겁게 살도록 하는 일을 하자는 것이다.



한국의 뜰의 바닥에는 태극 문양으로 돌들이 박혀 있다. 단군 임금이 세운 나라의 어진 백성들은 그곳에서 찬란한 우리 문화를 알리려 노력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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