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10-31
오늘 또한 다섯 시에 깼다. 어제보다 두 겹은 더 껴입고 잤는데도 온몸에 한기가 돈다. 그래도 오늘이면 숙소를 옮긴다는 건 희망적인 일이다.
날이 추우니 자꾸 서호주 퍼스를 찾아보게 된다. 호주에는 급여를 많이 받을 수 있는 직종들이 있다. 나는 그곳을 목표로 포크리프트 학원을 등록했었던 거다. 자격증을 많이 따두면 더 좋다고 한다. 퍼스 학원을 찾아본다. 추운 이곳에서 내 마음은 이미 따뜻한 퍼스에 가버렸다.
이동 때마다 전쟁이다. 5년 전 유럽을 한 달간 여행할 때도 체크아웃 때마다 이 난리를 피워 함께 여행하던 언니가 매번 놀렸었다. 사람은 참 이렇게 한결같다.
시간을 겨우 맞춰 나왔다. 더팟시드니에는 한국인이 많이 찾아 그런지 리셉션에 한국직원분들이 두 분 계셨다. 영어로 먼저 말을 걸어주셔서 나는 애매하게 영어로 인사하며 나왔다.
마지막으로 6oz Coffee에 들렀다. 고작 세 번 들렀을 뿐인데, 내 방앗간이 된 기분이다. 나에게 풍부한 양식을 제공해 준 곳. 이제 시티중심을 벗어난다고 하니 사장님이 따뜻한 말씀을 많이 해주신다.
사장님은 어렸을 때 호주로 이민 오셨기에, 이민 2세대로 볼 수 있는데 가끔 한국을 가면 그 생활이 낯설고 어려웠다고 한다. 여행 갈 때는 좋지만 사는 건 어려울 것 같다고.
호주가 정말 좋으니 호주에 눌러앉으라는 말과 함께, 사람을 함부로 믿지 말란 얘기도 해주신다. 오기 전에 한인들을 조심하란 말을 정말 많이 봤었다. 그걸 알고도 나는 여러 한인들을 만났고, 아직은 별문제 없이 지내오고 있다. 친구들과도 좋은 시간을 보낸 데다 이런 사장님까지 만났는데 어떻게 한인들을 경계할 수 있을까? 그냥 바보처럼 계속 믿고만 싶다.
요 며칠 점심을 안 먹어도 딱히 배가 고프지 않았다. 밥 굶으면 큰일 나는 나에게 생긴 이상한 변화다. 스트라스필드 플라자의 한인마트를 구경하다 이 김밥을 보고 나는 무너졌다. 그전까지는 고프지 않던 배가 요동치기 시작한다. 어쩌면 익숙하지 않은 음식들에 내 배가 거리를 두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한식 냄새를 맡자마자 식욕이 폭발했다.
가격이 6달러쯤 했던 거 같다. 한국의 김밥 가격을 생각하면 비싸지만 영혼을 달래주는데 6달러면 싸디 싼 가격이다.
여전히 시험이 남은 나는 숙소에 짐을 두고 주디와 함께 도서관을 찾았다. 가는 길에 꽃 향기가 발목을 잡는다. 내가 호주에 있구나 실감이 날 때는 바로 이런 때다. 한국에선 맡아본 적 없는 향기가 난다. 이 옆을 지나면 꼭 향기에 풍덩 몸을 담근 기분이었다.
주디는 러쉬 입사 준비에 한창이다. 나는 남은 강의와 시험을 해치웠다. 걸어오는 길에 빗방울이 조금씩 떨어졌는데 하늘이 조금씩 개이고 있다. 내 학점은행제 학습창처럼 해가 뜨고 있다.
호주는 약간 사기꾼 같다. 아까 비가 오다가 이렇게 하늘이 개인 것도 그렇지만, 사진이 실제보다 훨씬 잘 나온다. 이렇게 까지 파랬나? 내 눈이 장난을 치는 건지 렌즈가 장난을 치는 건지 모르겠다.
시드니의 한인촌과 다름없는 스트라스필드. 역에서 내리자마자 한국어 간판들이 줄을 지어있다. 오늘은 그 덕에 치킨과 함께 떡볶이를 먹는다. 이곳은 아마도 6oz Coffee 사장님 아내분이 엽떡을 먹을 수 있다고 하셨던 떡볶이집 같다. 한국에서 배달음식을 자주 시켜 먹지 않던 내 입맛에는 굿이었지만 주디는 그냥 그런 맛이라고 했다.
나는 다음 주에 아마 퍼스에 가지 않을까 싶다. 주디가 나보다 더 마음이 급하다. 주디를 불안하게 할 수 없어 퍼스 숙소를 예약했다.
숙소 예약에 문제가 조금 있었던 바람에 예약해 둔 방이 아닌 다른 방에서 하루 묵게 됐다. 화장실이 조금 지저분해서 주디와 나는 다음 숙소에서 씻기로 했다. 침대 매트리스에서는 쿰쿰한 냄새가 난다. 주디와 나는 서로 아주 안 좋은 얘기는 못하고 이것도 추억이 되겠거니 하며 웃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