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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배 Zoe Aug 04. 2023

호주 밥벌이 치트키를 획득하다

22-11-02


이 시간에 일어나서 날씨 어플을 본 건 처음이다. 세상과 함께 날씨 어플에도 여명이 깔린다.



호주의 봄꽃인 자카란다다. 혹시 내가 자카란다 시기를 놓쳐서 시드니에 도착한 걸까 아쉬웠는데 자카란다는 이제 막 피기 시작한다. 시작하는 시기에 꽃이 피어가는 걸 지켜보며 내가 함께 틔어나는 기분이다.



오늘은 대망의 포크리프트 시험날이다. 이런 날에 교재를 깜빡 두고 나왔다. 다행히 이번 시험을 한국인 아저씨와 함께 본다. 사진을 찍어서 몇 글자라도 더 머리에 넣어본다. 시험은 굵은 큰 글씨를 그대로 시험지에 적으면 된다.



테스트를 두 번째로 통과했고, 실기 시험도 두 번째로 봐서 합격했다! 감독관인 Assessor가 굿잡키즈라고 했다. 땡큐 썰!


오늘 시험이 끝나니 합격자는 사무실로 와서 레쥬메를 달란다. 회사를 연계해 주겠단다. 게다가 오늘 함께 시험을 본 아저씨는 애들레이드라는 비교적 작은 규모의 도시에서 왔다. 그런 동네에서 잡을 구하는 건 시드니보다 훨씬 어렵다고 한다. 애들레이드는 퍼스보다 규모가 조금 더 작은 도시다. 원래 내가 한국에서 시드니로 올 때 최종 목적지를 애들레이드였다. 취업난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니 우선은 안전을 선택하기로 한다. 그래서 나는 퍼스행을 취소하기로 마음먹었다.




이게 바로 내 치트키의 위엄이다. 나는 훗날 HR회사(인력회사)를 통해 취업을 하게 됐다. 포크리프트 운용 자리에는 취업할 수 없었지만 그 회사를 그만둔 다음 이런 메일을 계속 받았다. 평균 30달러쯤 되는 일자리가 비어있으니 일자리를 원한다면 답장을 달라는 메일이다. 이때 호주 캐주얼 최저시급이 25달러 정도였다. 이 메일들로 내가 애를 쓰고 해 뜨기도 전에 일어나서 포크리프트 면허를 따러 다닌 이유를 설명할 수 있겠다.

 


면허도 얻었겠다, 취업 걱정도 덜었겠다, 마음이 저 하늘처럼 새파랗고 맑다.



기쁜 날을 기념하며 스트라역 옆의 쌀국수집에 들렀다. 그런데 이곳은 고수가 아닌 바질을 내놓는다. 나중에 쉐어하우스 매니저님께 듣기로는 요즘 고수가 비싸서 그런 걸 거라고 했다. 아무리 그래도 고수 대신 바질이라니. 이상하긴 하다.



시드니의 생활을 준비한다. 급하게 집 인스펙션을 몇 개 잡았다. - 쉐어하우스는 사진으로 올린 것과 실제 봤을 때의 컨디션 차이가 있어서 꼭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계약하는 게 좋다. 이걸 인스펙션이라고 한다- 인스펙션 한 군데에서는 나를 거절했다. 나보다 간절한 다른 사람을 들인 듯하다. 지나와 주디가 인스펙션으로 고군분투할 때 강 건너 불구경했던 때가 있었는데 인스펙션 전쟁에 이제 나도 합류해야 한다.


학원에서 샌디언니에게 듣기로는 코로나 이전까지만 해도 집 구하는 건 아주 쉬웠다고 한다. 그래서 집 먼저 구하고 집 가까운 곳으로 잡을 구하는 게 보통이었다고. 하지만 지금은 이야기가 다르다. 코로나 때 워홀러가 대거로 빠지면서 쉐어하우스에 큰 적자를 본 사람들이 쉐어를 다 중단했단다. 그래서 쉐어하우스를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다. 나의 백패커스 메이트 지나와 주디는 하루종일 핸드폰을 붙들고 살았다. 매물이 나오면 가장 빠른 시간에 약속을 잡고, 가서 마음에 들면 바로 계약을 해서 방을 겨우 얻었다.


이 사진은 이 날 찍은 게 아니라서, 다른 글에 다시 등장할 예정이다.


어제 닭가슴살 만두로도 충분히 마음을 받았는데, 미안함과 고마움을 표현하고 싶으신 매니저님께서 치킨을 구워주셨다. 이 치킨은 타피오카 전분으로 만든 치킨이다. 기름에 굽지 않고 에어프라이어로 돌린 거라 더욱 건강한 맛이다.


매니저님을 앞으로 소피라고 부르려 한다. 내가 면허를 땄고 시드니에서 잡을 구할 예정이라고 하니 잘 됐다고 하신다. 퍼스에 가서 고생할게 훤히 보여 걱정하셨다고. 그리고, 곧 매니징 하는 집 한 군데에 빈 방이 나오니 그 방으로 내가 들어가면 될 거라고 하신다. 나는 이렇게 손쉽게 집을 얻게 됐다.




갈비의 위력 때문인지 오늘 만든 된장국의 위력인지, 소피가 나와 주디를 굉장히 신뢰한다는 게 느껴진다. 소피는 정말 바쁘다. 관리하는 쉐어하우스도 여러 채인 것 같은데, 일주일에 세 번은 어떤 가게로 출근한다. 가게의 판매왕이라고. 어제저녁 늦게 소피를 만나게 된 건 그 가게 때문이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소피는 강의도 하고 있다.


그래서 아직 본 지 이틀밖에 안 됐는데도 이 모든 걸 해내는 소피의 노련미에 감탄하게 된다. 이 와중에 손이 많이 가는 타피오카 치킨을 해주셨다고 하니 괜스레 더 감동스럽다.


소피는 분명 목 좋은 곳에 집이 있다. 그곳을 뒤로하고 이곳에 와서, 그렇게 바쁜 일 속에서도 짧게 머물고 가는 셰어생들의 이불 빨래를 해가면서 지내는 이유가 궁금해진다.


소피는 은퇴 전에 다른 일을 했다. 타피오카 전분을 입힌 닭의 출처는 소피의 남편인 대니 사장님이다. 사장님은 닭과 관련된 사업을 하고 계신다. 물론 소피처럼 투잡을 하고 계신다.


궁금증은 날로 더 해진다. 이런 삶을 영위하시는 이유를 꼭 밝혀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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