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11-03
호주에 오고 이른 아침부터 일어나는 게 버릇이 됐나 보다. 해가 들어오는 곳에 앉아 느긋하게 아침을 먹는다. 아침시간에 나가는 소피와 대니의 출근 준비를 가만히 지켜보기도 하고, 나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도서관에 가는 길, 아름다운 모양의 집들이 눈에 들어온다. 집마다 잔디가 바짝 깎여있고 정원 또한 잘 가꿔져 있다. 호주는 가드닝 사업이 잘 발달해 있다. 그 이유를 이렇게 금방 알아볼 수 있다.
이제 막 피어나고 있는 자카란다 옆으로 꽤나 놀라운 모양의 안테나가 보인다. 많은 집에 저런 안테나가 달려있다. 줄지어 있는 주택들과 뾰족뾰족한 안테나들, 우리의 옛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다. 물론 아치형이 많은 인테리어나 야자수가 줄 지어 있는 모습은 예외적이지만.
가는 길에 민들레를 보고 봄을 알았다. 한국의 가을에 이곳에 도착했고, 오히려 한국보다 더 추운 아침저녁이기에 봄을 망각했다. 집들의 정원마다 장미꽃들이 한창이다. 봄이 시작되고 있다고 아우성을 치고 있는 걸 이전까지 몰라준게 미안하다.
일기를 쓰고 공부를 하려 했는데 밀린 일기만 겨우 썼다. 워낙 일상의 호흡이 짧고 가쁘다 보니 놓친 것들이 많다. 깜빡 잊은 사진들을 첨부하고, 나중에 봤을 때 꼭 기억하고 싶었던 순간들이나 생각들을 정리하다가 어느새 점심시간이다.
이곳은 버우드라는 중국인들이 꽤 많이 모여사는 지역이다. 이런 사이버 펑크라니. 어딘가 모를 상가에 들어갔다가 만난 풍경이다. 중국 요리점들이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푸드코트처럼 여러 음식점에서 주문해 앉을 수 있는 협탁들이 있다. 이름 모를 면 요리와, 홍콩식 떡볶이, 만두를 주문했다. 만두 빼고는 다 그저 그런 맛이었다. 호주에 와서 아직까지는 기가 막히게 맛있는 음식을 먹어보질 못했다. 어딘가 다 조금씩 모자란 맛이 난다.
버우드에는 웨스트필드가 있다. 시드니에는 역 옆에 웨스트필드가 있는 지역이 많다. 이 웨스트필드는 백화점이자 쇼핑몰이다. 우리의 백화점처럼 아주 큰 규모는 아닌데, 꽤 많은 지역에 위치하고 있어 접근성이 좋다. 백화점에서는 아직 거의 두 달이 남은 크리스마스 준비를 조금씩 시작하나 보다.
카공을 위해 스타벅스에 들렀다. 웃음에 눈이 없다. 그나저나 저는 JOY가 아니라 ZOE예요. 이 뒤로도 몇 번 JOY나 JOEY라는 오해를 받았다. 내 잘못된 발음 탓이었다.
돌아가는 길에 손을 타는 고양이를 만났다. 호주에는 길고양이가 별로 없다. 호주는 새 보호를 정말 중요시 여긴다. 그것과 아마 조금 연관이 되어 있지 않을까?
주디와 오는 길에 정말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우리는 다른 부분도 있지만 닮은 부분도 정말 많다.
나는 시절인연이라는 말을 항상 마음속에 품고 다닌다. 우리는 인과법칙에 따라 정해진 시간과 장소에서 만났다. 때가 맞아 우리는 이렇게 만났지만, 또 때가 맞지 않는다면 이 인연 또한 놓아줘야 할 거란 걸 안다. 시절이 다한 이들은 보내줘야만 한다. 인연뿐 아니라 과거의 내 모습 또한 마찬가지다. 그저 내 눈앞에 있는 것만 본다. 주디가 지금의 내 시절이니 이 시절에 또 최선을 다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