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11-15
오늘은 기대되는 첫 출근 날이다. 7시 반까지 출근해야 해서 5시 반에 일어났다. 나는 출근 전에 아침시간을 여유롭게 가져야 하는 사람이다. 어슴푸레한 새벽에서 동이 트는 틈새에 이런 무지개가 방문했다. 출근 준비시간이 괜히 더 설렌다.
나는 호주에서 한국에서의 경력을 살리지 못할 거라 생각했었다. 그런데 뜻하지 않게 나의 과거가 도움이 됐다. HR 회사의 담당자 에이미는 내게 "조이, 너 Maritime Uni 나왔지? 여기 마침 Boat supply를 취급하는 곳이야."라는 말을 했다. 그래서 잘 어울릴 것 같다는 설명도 덧붙인 채.
15분 전에는 도착하라는 문자를 받고 일찍 출근했지만 문은 굳게 닫혀있었다. 아직 낯선 동료들과 문 앞에서 인사를 나눴다. 도착해서 사무실로 안내를 받았다. 잠깐 소파에 앉아 기다리라고 해서 옆의 카탈로그를 펼쳤다.
배는 침수를 대비해서 문이 자동으로 닫힐 수 있게 유압 도어 장치가 꼭 달려있다. 한 구역이라도 물이 더 차는 걸 막기 위해서 모든 구역을 분리시키는 거다. 그런데 그 유압 장치는 힘이 세서, 자칫 잘못하면 손가락이 끼어 다치는 경우도 생긴다. 나도 여러번 끼일 위험에 처했었다.
이런 슬라이딩 도어는 처음 봤는데 손가락 다칠 위험은 적어 보인다. 이런 작은 카탈로그를 보면서도 내가 아는 세상이 진짜 세상의 전부가 아니었음을 알게 된다.
웨어하우스로 내려가서 여러 직원들과 인사를 나눴다. 이름을 얘기해 주는데 뭐라고 하는지 하나도 못 알아 들었다. 한 여자 직원이 내게 "Where are you from?"이라고 물었고 나는 한국에서 왔다고 답했다. 그랬더니 직원은 "어? 션도 한국에서 왔는데? 션 한국이름이 뭐더라...."라고 얘기했고, 때마침 션이 들어왔다. 이전 글에 쓴 적도 있었지만 션은 굉장히 잘생겼다. 들어오는 순간 어찌나 훤칠하던지.
정말 쌩판 외국인들과 함께 일할 거라 생각하고 온 곳에서 생각지도 못하게 한국인과 함께 일하게 됐다. 그 공간이 갑자기 10배는 편하게 느껴졌다. 가나에서 온 데다 호주에서 7년 동안 일했다는 Nana와 함께 피킹 하는 법을 배웠다. 나나는 나와 같이 오늘부터 이곳에서 일하게 된 내 동기다. 벌써 친구가 둘이나 생긴 기분이라 든든하다.
매니저인 라클란이 "피킹 하고 싶니? 패킹하고 싶니?" 물었고, 나는 션이 패킹대에서 굉장히 편하게 서있길래 패킹을 하겠다고 했다. 피킹 하는 직원이 주문받은 물건들을 패킹대에 가져다주면 패킹 직원은 맞게 가져왔는지 체크하고 박스에 넣어 포장하는 식의 일이다. 딱 봐도 그리 어렵지 않다.
궁금한 게 많은 나는 션에게 계속 질문을 했다. 션은 작업장에 일이 별로 없고 이 정도 일하고 돈을 받아도 되나 싶은 생각이 들 정도였다고 한다. 일도 굉장히 체계가 없어서 아무 박스나 주워다가 주문받은 보트용품을 넣고 포장만 하면 된다. 포장에 엄청난 품이 들어가지 않는다. 게다가 느긋하게 포장한다. 손의 움직임이 다 느릿느릿하다. 션이 나에게 발걸음이 너무 빠르다고 말한다. 여기는 호주다.
직원들은 중간중간 얘기도 하지만 대부분 조용히 일을 하고 라디오가 틀어져 있어 노래를 들을 수 있다. 션은 유학을 다녀와서 영어를 아주 잘하고 덕분에 나는 션이 제대로 배운 것들을 모조리 흡수했다. 영어로 설명을 들었으면 절반쯤은 못 알아들었을 텐데. 그리고 아까 인사 나눈 동료들의 이름을 션에게 다시 들었다. 션이 없었더라면 나는 두세 번은 더 이름을 묻고 다녔을 거다.
나나는 가까운 트레인역에서 트레인을 타고 집에 가야 했고, 나는 우리 집 가는 방향에 트레인역이 있어서 퇴근길을 함께 걸었다.
어떻게 점심을 먹는지 잘 몰라서 오늘은 간단하게 쿠키를 먹었지만 내일부터는 도시락을 싸야 한다. 퇴근하고 마트에 들렀더니 사람들이 마트 물건들을 죄다 쓸어 담고 있다.
이제 워커의 일상이 시작된다. 도시락을 싸고 보니 금방 10시가 넘어버렸다. 일을 하는 일상으로 복귀했다. 앞으로 내게 어떤 날들이 펼쳐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