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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배 Zoe Aug 14. 2023

호주 워킹홀리데이 적응기

22-11-18


걸어서 출근을 하는데 기분이 날아갈 듯 기쁘다. 호주의 지금 계절이 산뜻해서 일수도, 햇빛을 듬뿍 받으며 걸어서 일수도. 3일 동안 출근하며 매일 아침을 경쾌하게 걸었다. 출근이 너무나도 즐겁다.



이 사진은 호주에 대한 설명을 하기에 적절하다. 호주는 시급이 높고 직업에 귀천이 없는 편이다. 그래서 창고에서 일하는 노동자일지라도 일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고 일하는 사람들이 많다. - 물론 아닌 사람도 있지만 -


이런 기본 편의시설이 법상으로 지정되어 있다. 노동자들의 작업장 가까운 곳에 화장실은 무조건 있어야 하고 웬만하면 이런 티룸도 기본이다. 포크리프트 학원에서 노동자들은 편의시설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을 때 매니저나 슈퍼바이저에게 그 사항들을 요청할 권리가 있다고 했다.


그래서 내가 가본 사업장 네 군데에는 냉장고, 전자레인지, 토스트기, 커피, 우유(라테용), 설탕, 홍차, 온수기는 구비되어 있었다. 정말 기본이 보장되는 법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 깨달을 수 있었달까. 나중에 농장에서 일할 때 동료에게 듣기로는 외지로 일을 하러 가게 돼도 트럭으로 화장실을 끌어다 가져다준단다. 우리 같은 외노자들만 일하는 사업장에서 그렇게 한다. 그만큼 노동자들에게 권리가 있다.



션 말로는 이곳은 텅 비어있었는데 매니저의 관리부족으로 이런 사태가 되었다고. 그래서인지 워커들이 매니저 뒤에서 굉장히 불만이 많다.


션에게 물어, 물어 동료들의 이름을 조금 외웠다. 함께 패킹 일을 하는 토미, 레이와 콘은 아저씨들이다. 콘은 아내가 한국인이라고 션이 말해줬다. 피터는 셋에 비하면 내 나이 또래에 가깝다. 피킹을 하는 셰인과 트로이는 둘 다 덩치가 있고, 이곳에서 10년쯤 일했으며 형제다. 이 둘 또한 일한 기간은 오래됐지만 나와 크게 나이 차이가 나진 않는 듯하다. 그리고 처음 션이 한국인이라고 알려준 여자 직원의 이름은 몰리, 인도네시아에서 왔다. 더 많은 직원들이 있지만 내가 주로 접촉하는 이들은 이렇다.


션은 원래 오늘까지만 일하고 시골에 다른 일을 하러 간다고 했었다. 나도 하려고 조금 알아봤던 고소득 잡이다. 션이 가면 물어보고 싶은 걸 지금처럼 물어볼 순 없을 테니 열심히 배우고 있었다. 그런데 옮기는 회사에 연락해서 일주일 후에 간다고 했단다. 그쪽도 일이 지금 별로 없어서 괜찮다고 한다. 나에겐 잘 된 일이다.


어제 미팅이 있었는데 그걸 해석해 내느라 머리가 지끈지끈 어찌나 아프던지. 그래도 3일 동안 함께 일했다고 조금씩 나에게 마음을 열어주는 다른 동료들이 느껴진다. 뜬금없이 내가 작업하고 있는 박스의 부피를 알려준다던지, 내가 포장한 물품들을 팔레트에 쌓아준다던지 그런 식이다.


새 박스가 아닌 헌 박스를 가져다 포장을 하다 보니 손에 검은 떼가 잔뜩 낀다. 손을 씻으며 경악을 했다.


내가 패킹으로 들어오는 바람에 션은 다른 일로 매니저에게 불려 다닌다. 매니저가 션을 특히 더 좋아하는 까닭이기도 하다. 매니저에게 불만을 품은 코워커들에게 맞장구를 쳐주다가도 매니저가 하소연하는 걸 다 들어주는 식이다.


그래서 패킹대에는 주로 나와 피터가 상주한다. 다른 아저씨들은 포크리프트를 운전하느라 자주 자리를 비운다.


목, 금요일에만 출근하는 라쟈가 있다. 30대 중반쯤인 라쟈는 세 아이의 엄마이고 레바논에서 왔다. 라쟈는 묵묵한 피터를 놀리는 걸 좋아한다.


"피터는 정말 나이스 가이야"

"조이 좀 봐, 저런 걸 다 하네. 조이, 너 패킹을 누구한테 배웠니? 피터가 알려줘서 그렇게 잘하는 거지?"


이런 식으로 말하면서 피터가 부끄러워하는 반응을 굉장히 즐긴다.



라쟈는 친절하고 긍정적인걸 강조한다. FRIDiest라는 단어를 적어두니 피터가 그런 말이 어딨냐며 코웃음을 치고, 라쟈는 가장 최고의 금요일을 보내라는 말이라며 발끈한다.


그걸 지켜보는 나는 라쟈가 너무 귀엽다. 라쟈는 오늘 끝나기 전 피터에게 본인이 없는 월, 화, 수요일에 나를 즐겁게 해 주라며 당부와 협박이 섞인 말을 하고 갔다.



일 끝나고 3일 내내 스트라스필드로 갔다. 이틀은 소피의 초대를 받았다. 마침 소피의 숙소에 귀여운 대학생 친구들이 있어서 그 친구들이 가기 전에 소소한 만찬을 즐기기 위해서다. 사실 나는 숟가락 하나 얹은 정도랄까? 어제의 메뉴는 소피의 예전 집 주변에 있는 맛집에서 공수해 온 피자다.



그제는 소피의 필살기인 타피오카 전분 치킨을 먹었다. 후라이드를 먼저 즐기고 간장 치킨으로 이어 먹으면 얼마나 맛있는지 끝도 없이 들어간다.


소피는 샐러드를 정말 좋아해서 샐러드를 한가득 만들어 먹는다. 소피가 항상 구비해 두는 샐러드용 상추는 한국에서는 보지 못한 상추다. 쓴맛은 없고 달달하고 고소해서 고급 레스토랑에서 내오는 샐러드에 이 상추가 항상 들어가 있다고. 게다가 소피의 샐러드 양념이 정말 일품이다. 일종의 오리엔탈 소스인데 간장과 들기름이 샐러드의 킥이다. 이 모든 접시를 싹싹 비우고 자리에 있던 모두 배가 산만해져서 뒤뚱거렸다.



오늘은 내 생일이라 또 스트라스 필드에서 주디를 만났다. 더 만두라는 이 집은 스트라에서 줄 서서 먹는 만두 맛집이다. 만두를 직접 빚는다.



일은 무거운 물건을 취급해야 하고 주문도 계속 들어와서 바쁘다. 무거운 걸 들다 보니 몸이 힘들 때도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출근도 즐겁고, 퇴근도 즐겁다. 긴장할 필요가 있었나? 싶을 정도로 좋은 동료들을 만났다. 마치 꿈만 같은 나날들이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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