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이배 Zoe Aug 16. 2023

트레인이 파업하면 무임승차를 할 수 있다

22-11-23


내가 평소 트레인을 안타는 이유는 트레인을 타도 30분이 걸리고 걸어도 30분이 걸리기 때문이었다. 같은 시간이면 교통비라도 아끼는 게 좋으니까. 그런데 그제부터 트레인이 파업에 들어갔다. 이곳에선 파업 중엔 트레인에 공짜로 승차할 수 있게 해 준다. 무임으로 교통을 운영하면서 회사에 피해를 끼쳐 노동자들의 의견을 관철시키려고 하는 거다. 본인들이 파업하면서 시민들에게 불편을 주는 일은 줄인다. 이런 성숙하면서도 효율적인 파업방법이 있을 거라곤 생각해보지 못했다.



한 정거장 거리이긴 해도 트레인을 타면 10분쯤은 여유가 생긴다. 그래서 트레인을 타고 출근하면서 책을 읽는다. 내가 생각해도 별종 같아 보이지만 이 시간이 어찌나 즐겁고 행복한지 모르겠다. 내용이 재밌는 내용도 아닌데 읽는 행위 자체가 나에게 이렇게 큰 기쁨을 준다.



이번 주에는 새로운 캐주얼 워커들이 많이 들어왔다. 이 직장에는 퍼머넌트 워커들과 캐주얼 워커들이 있다. 우리로 치자면 정규직과 계약직 같은 느낌이다. 대신 캐주얼 워커는 계약직과 비슷한 듯 다른데, 사업장에 일이 없을 때 당장 퇴근시켜 버리기도 한다. 그래서 캐주얼 워커가 안정적인 쉬프트(근무시간을 쉬프트라고 부름)를 받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보통 워킹홀리데이 워커들은 캐주얼로 일하는 경우가 많다. 캐주얼은 고용의 불안정성 때문에 퍼머넌트보다 시급이 조금 높다는 장점이 있긴 하지만 고용에 따른 불안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나는 운이 좋게도 7시 반부터 3시 반까지 고정으로 일한다.


션이 전에 있던 캐주얼 중 영어로 소통이 잘 안 되는 사람이 잘린 적이 있다고 했다. 물론 결근도 잦고 근무도 엉망인 사람이었지만 매니저는 호시탐탐 사람들을 자를 기회를 엿보고 있다. 어딘가 모르게 불만이 많다. 나도 그래서 금방 잘릴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 두 번 했었다.


이게 웬걸, 이유는 모르겠지만 다들 나를 좋아한다는 게 느껴진다. 션은 열심히 했을 때 열심히 하지 말고 여기 룰을 따르라고 한 소리 들었다 했는데 나는 열심히 하는 만큼 좋아해 준다. 내가 유창하게 대화하는 것도 아니고 대충 알아듣고 대충 소통 중인데도 그렇다. 확실한 이유는 아직 잘 모르겠다.


나는 션이 가서 혼자 고군분투할게 조금 걱정되고, 션은 여기서 남아있을 내가 걱정인 듯하다. 자꾸 사람들이랑 얘기를 하라며 나를 부추긴다. 션이 조금 오해를 한 점이 있는데 나는 대화를 나누는 걸 정말 좋아한다. 다만 피터는 너무 조용하고, 레이와 콘은 자리를 자주 비우고, 션이 좋아하는 토미는 너무 괴팍해서 아직 딱히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을 뿐이다. 아직 오지(Aussie, 오스트레일리아 사람을 일컬음)들이 별로 궁금하지 않다.



트레인이 파업하니 역 앞에 있는 도서관에 가기도 딱이다. 짐을 한가득 싸매고 출근했다. 평상시 같으면 30분 동안 걸어야 해서 이렇게 무겁게 가지고 오는 건 사치다. 일 하면서 다루는 박스들이 10킬로가 넘어가고 가끔은 15킬로도 되다 보니 몸이 고되다. 강의를 틀어놓고 계속 졸았다.



오늘은 첫 주급이 들어왔다. 리드컴역 앞에는 토마토 김밥이라는 소문난 김밥 맛집이 있다. 호주에 와서 알았다. 김밥이 내 소울푸드였다는 걸. 김밥을 생각만 해도 위장이 뒤틀리는 기분이다.


저녁에 갑자기 어떤 액션 플랜이 떠올랐다. 내일 출근해서 재미있는 일을 좀 꾸며볼까 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맑은 눈의 광인인지도 몰라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