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이배 Zoe Aug 16. 2023

혼자 남겨진다는 것

22-11-25


그제 떠오른 계획 하나는 바로 션, 주디와 함께 한 해변에 가는 거였다. 션은 즉흥을 정말 싫어한다. 주디도 비슷하다. 내가 보기에 둘은 진짜 닮았다. 엠비티아이도 앞자리 빼고 다 똑같다. 반면에 나는 션과 정반대의 엠비티아이를 가지고 있다. 나는 즉흥적인 것만큼 낭만적인 일도 없다고 생각하는 주의다. 언제나 예기치 못한 곳에서 정말 큰 즐거움을 만날 수 있다고 여긴다. 살아오면서 그런 일이 많았던 탓이기도 하다.


주디는 그래도 금방 설득했는데 션은 어제 아무리 같이 해변을 가자고 해도 싫단다. 아니 질색을 한다. 집에서 해야 할 일이 많다고. 이번 주 주말이면 떠나면서 추억거리라도 만들고 가면 좀 좋나.


어제 거의 구걸을 하다시피 션에게 같이 가자고 하다가 마음을 바꿔먹었다. 원래는 오늘 또 물어보겠다고 했지만 입을 싹 닫아버렸다. 그냥 주디도, 션도 없이 혼자서 해변에 가고 싶어졌다. 저들이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내 사고회로는 이렇게 생겨먹었다.



내가 본 게 얼마나 맞을지는 모르겠지만 오늘 내내 패킹대를 어슬렁 거리는 션이 보였다. 하고 싶은 말이 있었을지 확실하게는 알 수 없는 일이다. 언제 말하나 보자 하며 계속 지켜봤는데 션은 결국 인사도 제대로 못하고 갔다. 라쟈를 기다렸다 인사하는 걸 보면 할 말이 없진 않았을 텐데 말이다. 그런 션을 보며 이런 생각을 했다.


'제때 꺼내지 못한 말은 미련처럼 이따금씩 떠오르기 마련이야'


션은 과거에 남겨둔 후회 때문에 이곳에서 최선을 다 했다. 하지만 동시에 그러면서 현재에 남기고 있는 후회들이 내 눈엔 보였다. 션이 이런 과정을 통해 천천히 배우고 성장하리라 믿는다. 그렇게 언젠가는 하지 못한 말을 마음 안에 그대로 두지 않기를.


그래도 이렇게 보낼 수는 없어 션에게 문자라도 보내주고 나는 해변을 향해 갔다. 인사를 못 나눠서가 아니라 션이 다음 주부터는 출근을 하지 않는다니 어딘가 싱숭생숭하다.



버스에서 내려 걷기 시작하니 마음이 조금씩 부드러워지더니 이 풍경을 보고서 탁 트이는 기분이 들었다. 샌디언니에게 추천받은 발모랄 해변이다. 해변과 공원은 한적하고, 역시나 바다는 습하지 않다. 바다가 습하지 않아 그런지 바닷가의 비릿한 내음이 전혀 없다. 공기는 여전히 소리를 잡아먹는다. 그러니 또 고요함이 찾아온다.



바다 앞의 벤치에 앉아 조용하고 잔잔한 노래를 들었다. 그러다 갑자기 강아지 한 마리가 눈앞에 나타났다. 펜스 너머로 고개를 쭉 내밀고 한참을 가만 서 있는다. 엄마가 가자고 해도 말을 듣지 않고서 저 먼바다를 보고 있다. 바다를 보고 있는 강아지의 꼬리는 프로펠러처럼 사방으로 팔랑거린다. 한참을 주인이 설득하니 겨우 조금 발걸음을 뗀 강아지는 나를 발견하고는 천천히 다가온다. 주인은 저 멀리서 제리가 호기심이 정말 많다며 나에게 못 말리겠다는 웃음을 지어 보였다. 나도 그 덕에 함께 웃으면서 귀여운 제리와 인사하고, 제리가 여기저기 기웃거리는 걸 지켜보다가 "제리 바이!" 하고 보냈다.



그 순간 너무나도 큰 행복한 감정이 밀려와서 눈물이 조금 났다. 이곳에서의 삶이 조금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이해가 된 정도가 아니라 내가 만약 아이를 가지게 된다면 이곳에서 키우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금요일 다섯 시쯤인데 바다에 아이들이 많다. 물론 그 옆으로 부모들도 함께다. 소란스럽지만 즐겁게 웃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이 꼭 세상을 다 가진 것만 같아 보였다. 어쩌면 아직 내가 누려보지 못했을 삶의 기쁨을 누리며 자란다는 인상을 받았다.



매일 발모랄 해변에서 수영하고 커피를 마시는 삶이란 어떤 충분함으로 가득 차 있을까 싶어 진다. 생을 마친 이후에도 해변가를 볼 수 있는 위치에서 사람들의 지친 다리를 쉬게 해 줄 수 있는 벤치가 되어주고.


주디와 헤어질 때도 느꼈던 거지만, 진짜 혼자 남게 됐을 때 이상하게도 가득찬 기분이 든다. 혼자이기에 충분한, 이런 이상한 마음은 무엇인지 모르겠다. 아직 혼자 채워야 할 게 많아서 그런 건지, 홀로 있는 공간을 확보할 필요가 있는 인간이라 그런 건지.

매거진의 이전글 트레인이 파업하면 무임승차를 할 수 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