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11-27
토요일은 역시나 도서관이다. 어제도 도서관에서 오랜 시간을 보냈다. 학문이 자꾸 사람을 바꿀 수 있다고 말해서인지 모르겠으나 배우다 보면 주변인들이 한 명씩 생각난다. 내가 보기엔 정말 커다란 사람인데 스스로를 작게 보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 자신을 진짜 그대로 바라볼 수 있도록 돕고 싶다. 그래서 오늘은 데이트를 했다.
남들 눈에는 그저 내가 급하게 이것저것 하는 것처럼 보일지 모르겠지만 나는 항상 선택지의 앞에 있다. 그 앞에서 진짜 내게 좋은 걸 골라내려 저울질을 한다. 내게는 이 데이트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나는 청춘들의 이야기가 듣고 싶은 사람이니까. 다만, 데이트 상대에게도 필요했던 시간인지는 확신할 수 없다.
평점이 좋은 카페를 골라 갔는데 여기에 또 한국분이 있다. 카페의 이름은 Philosophy Cafe. 이름에 왜 철학이 들어가는지 물었더니 Philosophy의 어원이 사랑이란다. 그래서 한참 철학책을 읽을 때 그런 생각이 들었던 거였나 보다. 읽기 전까지만 해도 꼰대 같고 고리타분해 보이던 철학가들이 사실은 세상에서 사람들을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이었다는 걸 천천히 느꼈었다.
우리는 사랑의 카페에 앉아 이야기를 나눴다. 내가 본 언니의 마음 안에 있는 언니의 크기를 알려주고 싶었다. 실제로 클레어 언니 그 자체의 모양이 어떠한지도. 혹여나 크지 않더라도 얼마나 아름다움이 있는지를 보여주고 싶었다. 그렇게 사랑을 나누고 싶었던 내 마음이 전달되었는지는 모르겠다.
카페에서 나와 시드니 하버로 통하는 공원을 걷다가 울창한 나무의 그늘 아래 기타를 연주하시는 분을 만났다. 그 음악의 선율을 배경음악으로 삼아 나는 언니가 가진 그림들의 조각들을 하나씩 맞춰갔다. 벤치에 앉은 우리들 앞으로 사람들은 수없이 지나가고 음악가는 몇 번씩 곡을 바꿔 연주했다. 나에게 오늘 데이트는 잘 고른 일이었다. 클레어 언니의 앞날이 우리가 앉아있던 그 공원처럼 평화롭기를 빌어줄 수 있었으니까. 언니가 사랑에 힘입어 충분히 온건하길 바랄 수 있었으니까.
다만 돌아보자면 반성도 하게 된다. 응원을 한다며 나를 뽐내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한 건 아닌지. 내가 사람을 바꿀 수 있다며 으스대고 싶었던 건 아니었는지. 그렇다면 그냥 가만 지켜보는 게 맞는 건지, 어디로 가던지 그냥 신경 쓰지 않는 게 답인 건지는 여전히 내게 어려운 질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