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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배 Zoe Aug 29. 2023

호주 코워커의 말을 듣고 나는 무너졌다

22-12-23

코워커는 함께 일하는 사람, 쉽게 생각해 직장동료다. 팀이라는 영업사원이 있다. 팀은 사무실에서 일한다. 나는 창고에서 일하기 때문에 처음엔 팀이 하는 일을 정확히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자주 창고에 와서 "You know what?" 하며 나에게 말을 걸었다. 그러면서 내가 자라온 고향에 대해 묻기도 하고, 자신이 다녀온 콘서트에 대해 자랑하기도 했다.


팀은 여러 거래처에서 주문을 받아와 주문 건이 적힌 종이를 우리에게 넘겨줬다. 그러면 그 물건을 집어오는 건 픽커들의 담당이고, 집어온 물건을 잘 담아서 보내는 건 팩커들의 몫이다. 가끔 팀은 직접 물건을 픽킹해와 나에게 빠른 포장을 부탁하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꼭 뭔가 하나씩 물어보고 갔다. 워낙 바삐 움직이던 탓에 내 말을 정확히 들은 게 맞나 의심스러웠지만.



어제는 크리스마스를 맞아 직원들 자녀들이 와서 점심에 피자파티를 했다. 사무실 직원들은 영업사원들이 아니면 자주 만나기 어렵다. 대화를 시작하면 으레 다른 사람들이 그렇듯 비슷한 질문을 던진다. 내가 겪은 질문은 "너 공부하고 있니", "혼자 왔니? 가족이랑 왔니?" 같은 것들이다. 나는 그러면 이곳에 가족이 있는 것만 같다고 말한다. 소피는 나의 엄마 같고, 주디도 친동생 같다. 이 직장동료들도 가족인 것만 같다고 레이에게 얘기한 적이 있었다.


오늘은 퇴근 전에 맥주 파티를 했다. 크리스마스 맞이 이른 퇴근과 함께였다. 영업사원인 사이먼이 내게 "너 언제 지역 이동하니?" 묻는다. 어제도 이 질문을 받았는데 또 이 질문이다. 나는 이걸 분명 팀에게만 말했다. 그런데 사무실의 모든 직원들이 다 알고 있다. 어제는 인사 한 번도 안 해본 이름도 모르는 직원이 내게, 언제 태즈메이니아에 갈 거냐고 물었다. 그래서 나는 "내가 태즈메이니아에 갈 거란 걸 모두가 다 알아! 왜 다 알고 있는 거야?" 하며 답을 받을 생각은 없는 혼잣말 같은 질문을 던졌다.


그랬더니 팀이 이렇게 말한다. "Because all of us supporting you."라고. 팀은 내가 태즈메이니아에 간다고 말했을 때부터 태즈메이니아에 대한 본인이 가진 모든 것을 털어놓고 있다. 자기 남동생이 태즈메이니아에 살고 있고, 거기 가면 어떤 일을 하는 게 좋다고 하더라 하면서.



그 얘기를 듣고 나는 꿀 먹은 벙어리가 돼서 사무실에서 가만 창고로 내려왔다. 오지들이 앞에서는 웃지만 뒤에서는 어떤 욕을 할 줄 모른다며 조심하라는 사람들이 있었다. 나와 함께 들어온, 그리고 내 뒤에 들어온 캐주얼 워커(쉽게 말해 계약직)들은 거의 잘렸다. 그나마 남아있는 나나도 월요일에 일하러 나왔다가 왜 나왔냐며 퇴근당하는 일도 있었다. 그 와중에 나는 일이 줄어든 작업장에서 일주일을 더 일 했다.


원래 내 근무도 예정에 없었던 거였다. 이렇게 나를 배려해 준 사람들을 두고 나는 의심할 수가 없다. 나는 팀의 말을 믿지 않을 수가 없었다. 살면서 이렇게 전폭적인 지지를 받은 적이 있었나 생각해 보면, 나는 없었다. 항상 바삐 살았고, 치열하게 살았고, 나름 죽어라 일했지만, 그건 당연한 거였다. 내가 그렇게 굴어야 마땅했다. 사회초년생이었으니까. 그냥 응당 그렇게 살아야만 하는 거였으니까.


하지만 이곳에선 그게 아니라고 말해주는 것 같다. 네가 외국에서 온 언제 잘릴 줄 모르는 캐주얼 워커일지라도 너를 얼마든지 응원하고 지지해. 그런 마음을 나는 팀에게서 정말 자주 느꼈다.



나는 언제나 여기가 한국과 별로 다른지 모르겠다는 말을 자주 하고 다녔다. "마음이 한국에 가 있어서 그런가 봐요"라고 덧붙이면서. 사랑이 있는 한국이 나에겐 결국 돌아가야만 할 목적지다. 다시 돌아갈 건데 떠나온 이곳에 온 마음을 가지고 올 필요는 없었다. 그런데 팀의 말을 듣고 처음으로 내 모든 마음이 잠깐 이곳에 머물렀다 갔다. 세워둔 마음의 장벽 같은 건 온 데 간데없었다.



사무실에서 크리스마스트리가 반짝이고 있어서였을까? 홀리데이를 앞둔 아이들의 행복한 웃음소리를 들어서일까? 어쩐지 산타할아버지가 울지 않은 나에게 선물을 주고 있는 것 같다. 슬픔 앞에 꾹꾹 참고 기쁨을 기다린 나를 기특해하며 준 선물일지도 모른다. 최고의 선물을 앞두고 나는 소란한 마음에 한참을 울렁거리는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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