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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배 Zoe Sep 01. 2023

여행에는 무계획이 섞여야

22-12-27, 시드니 근교 울런공 여행


백패커스 동생들과 함께 울런공을 여행하기로 했다. 션이 이곳 드라이브가 그렇게 좋았다고, 두 번이나 방문했다는 이야기를 해서 꼭 가야만 했다. 아침부터 부지런히 주유를 하고 동생들을 픽업해서 1시간을 넘게 달려야 도착할 수 있는 울런공으로 출발했다.



오늘의 여행 지휘자는 나다. 내가 데리고 온 오늘 여행을 엉망으로 보낼 순 없으니 들릴 지점들을 대충 정해두었다. 첫 도착지는 Bald Hill이다. 작은 전망대인 줄 알고 잠깐 들렀다 가려던 곳이었다. 그런데 도착하자마자 선선한 공기가 우리를 감싸면서 여행의 흥이 솟아나기 시작한다.



잔디밭에서 보는 저편의 해안선이 좋아서, 파란 하늘과 푸른 바다의 경계선이 좋아서, 앞으로 내다보이는 해안에서 부서지는 하얀파도가 좋아서, 저마다의 사연을 담고 여행을 떠나온 사람들의 표정들이 좋아서, 우리는 행복한 웃음을 지은채 한참을 이곳에 머물렀다.



울런공 등대인 줄 알고 찾아온 비치인데 여기가 아니었다. 등대는 저 멀리 보인다. 게다가 올 때 Grand Pacific Drive 길을 탔어야 했던 걸 모르고 고속도로로 왔다. 거기가 울런공 여행의 하이라이트였는데 드라이브를 놓쳤다. 지휘자의 여행 계획이 영 엉성했다. 잘못 도착한 바다지만 누구의 계략인지 바다에 장미꽃잎이 둥둥 떠다닌다. 이렇게나 평화롭게 바다를 즐기고 있는 여러 가족들을 보니 이것 또한 누군가의 계략이 아닌가 싶어 진다.



울런공 비치에 들러 비치타월을 깔고 한참 이런저런 설교를 펼쳤다. 현지인들과 일하고 있는 두 명은 한인잡으로 일하고 있는 한 명에게 다른 곳으로 벗어나라고 말했다. 한인잡에서 그녀는 어딘가 알게 모르게 무시를 당하고, 후려쳐지고, 깎아내려지고 있다. 하필이면 그녀는 텃세가 정말 심한 곳에 자리를 잡았다. 그러면서 오지잡에 대한 자신감이 더욱더 푹푹 내려가는 게 눈에 보인다. '한국인들과 함께 일해도 이렇게 못하는데 소통도 잘 안 되는 현지인들과 내가 어떻게...' 같은 생각들이 떠다니고 있었다. 내 기준엔 연관성이 없는 것들을 엮어 걱정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호주문화는 분명 한국의 일 문화와 다르니까.



암만해도 우리의 설득은 귓등에서 튕겨져 나왔다. 어쩔 수 없이 다음 행선지로 향한다. 키아마라고 한 시간쯤 더 가야 하는데 보통 울런공과 함께 들리기에 코스에 넣었다. 그런데 가다가 감탄이 나오는 호숫가를 발견했다. 차를 바로 그곳으로 돌렸다. 지휘자는 즉흥을 좋아한다. 그러니 계획 변경이다.



호수인 것 같기도 하면서 바닷가인 것 같은 곳에 멈춰 발을 담그고 한참을 거닐었다. 오늘은 동생들에게 할 말을 쏟아내듯 퍼부었다. 지금 와서 돌아보면 조금 꼰대 같았는지도 모른다. 동생들은 내가 이번 여행을 계획해 줘서 고맙다고 했지만 나는 동생들이 시간을 내준 게 정말 고마웠다. 원치 않는 얘기를 듣느라 그녀들은 조금 괴로웠을지도 모른다.



계획대로 울런공의 유명한 드라이브는 하지 못했을지라도 생각지도 못한 풍경들을 만났다. 여행이나 인생이나 계획대로 잘 풀리는 법이 없고, 오히려 계획하지 않은 곳에서 만나는 멋짐이 근사하단 걸 다시금 깨닫게 된다.





점심을 먹고서 시원한 커피를 한잔 하기 위해 카페에 들렀었다. 몰에 위치한 이 카페는 사람들이 줄을 서서 주문을 하고 있었다. 호주의 카페가 한산할 시간인 오후 2시인데 사람들이 이렇게 많다면 몇 시간째 이런 주문을 감당하고 있었을지 가늠이 안 간다. 홀리데이는 바쁜 만큼 평소 시급의 두 배를 받는다. 하지만 그에 비례하게 종업원들 표정 또한 굳어 있다. 오랜 시간 줄 서서 주문을 하는 사람도, 쉴 틈 없이 주문을 받아내는 종업원도 불쾌한 기운을 풍긴다.


평소 생각하고 있던 걸 실험처럼 이번에 한 번 시도해 봤다. 주문할 때, 주문한 걸 받을 때 활짝 웃으며 Thank you를 해보면 어떨까? 사무실에서 화가 잔뜩 난 코워커들 앞에서 웃으면 그들도 웃어 보였듯이 이곳에서도 가능할지도?


실험의 결과는 역시였다. 방금까지 입꼬리와 눈꼬리가 바닥으로 축 쳐져 있던 사람이 온 얼굴을 사용해서 기쁘게 웃어준다. '쟤는 뭔데 지금 웃냐'와 같이 꼬아서 받아들이는 게 없었다. 웃는 얼굴에 침 뱉고 싶어 하는 마음이 없다. 그게 내 마음을 가끔 흔든 거다. 이곳에선 내가 얼마든지 좋은 사람이기를 자처해도 이상해 지지 않을 수 있는 것만 같다. 내가 좋은 사람으로 다가가면 그 어떤 사람들도 좋은 사람이 되어 다가오는 거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호주에 정착할 건 아니다. 결국 나는 한국으로 돌아가야 한다. 사랑이 있는 곳을 오래 떠날 수가 없다. 소피를 보면서도 자주 생각했었다. 이민 2세대쯤 되면 모르겠지만 1세대는 고향을 그리워할 수밖에 없다. 한국인들과 계속 어울리고 싶어 하는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내가 사랑하는 조국을 어쩌지. 웃는 사람에게도 아무렇지 않게 침 뱉는 곳을 어쩌지. 열심히 해도 잘하지 않으면 신랄하게 깎아내리는 걸 어쩌지. 그렇게 자꾸 당하다가 내가 얼굴을 다시 굳히고 호주를 그리워하게 되면 어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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