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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배 Zoe Sep 01. 2023

도시에 사는 이유

22-12-30

최근 들어 이 도시의 삶을 다르게 이해하게 됐다. 처음에 이 도시에 그다지 끌리지 않았던 이유는 블로그에서 본 이곳의 모습때문이었다. 그저 일 끝나고 친구들과 식당과 술집에 가는 일상. 그건 별로 한국과 다르지 않은 것 같았다. 내가 호주까지 와서 굳이? 싶은 마음이었다.



그런데 내가 와서 겪어본 시드니의 면면은 주말이면 열리는 플리마켓, 곳곳에 잘 조성된 공원, 그리고 잘 정돈된 해변과 국립공원, 크고 편안한 분위기의 도서관 같은 것들이다. 이런 건 사람들이 많이 사는 곳에서 이용 가능한 공공재라는 걸 안다.



어제는 코스트코의 식당에서 저렴한 피자로 식사를 하고, 산책 길이 잘 닦여 있는 공원에 들러 소화를 시키고 왔다. 길의 중간중간 바비큐 장이 있어 여러 사람들이 모여 온갖 종류의 고기들을 구워가며 웃고 있었다. 그걸 보고 나서 아하 싶었다. 잘 갖춰진 도심의 공원 덕에 사람들은 고기만 들고 와서 바비큐를 즐긴다.




EBS 다큐프라임 도시예찬에서는 가난할수록 도시를 떠날 수 없는 이유에 대해 '서비스'를 들어 설명했다. 지하철, 도서관, 도로, 공원 같은 공공재들은 만드는데 비용이 굉장히 비싸다. 사람들이 많이 모여사는 대도시에서는 이를 싼값에 누리는 게 가능해진다. 많은 사람들이 낸 세금으로 1인당 부담가격을 낮춰 함께 누릴 수가 있다.


나는 시골에서 자랐기에 도시에서 사는 이유를 이해할 수 없으면서도 이해할 수 있었다. 시골은 기본적으로 텃밭에서 자급자족이 가능할 정도의 농작물을 얻을 수가 있다. 넓은 자연은 나의 친구였다. 하지만 부가가치가 높은 생산품을 사기 위해선 차를 타고 먼 거리에 있는 마트에 가야만 했다.


부가가치가 높다는 말은 이런 거다. 빵을 예로 들면, 밀 정도야 시골에서 생산하겠지만 밀가루로 제분하기 위한 사람과 밀가루로 빵을 만드는 제빵사도 필요하다. 사람들의 손을 거치면 값싼 밀이 비싼 빵으로 바뀐다. 가치가 높아지는 거다. 인력은 도시에 많고, 사람들의 손을 거쳐야만 하는 고부가가치 상품들은 도시에 있을 확률이 높아진다.



내가 살던 시골에는 학교도서관 외에 도서관이 없었다. 그래서 먼 거리에 있는 도서관에 차를 타고 가거나 아예 책을 새로 구입하는 등의 추가비용이 발생했다. 이런 게 바로 도시에서 서비스를 값싸게 누린다는 의미다. 아직 가진 것이 별로 없는 사회초년생으로서 그런 비용을 자주 지불하다 보면 당연히 부담이 된다. 그러니 젊을수록 더 도시로 가려하는 게 이해가 된다. 시골 우리 집에 이런 독서 공간을 마련하려 하면 도대체 얼마나 공사비를 들여야 할 것인가?



내일이면 올해의 마지막 날이다. 시드니에서는 새해가 되면 성대한 불꽃놀이를 한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만큼 그걸 보기 위해 역시나 많은 사람들이 몰린다. 이것 또한 도시에 사는 이점 중 하나라 하겠다. 그렇다면 당연히 누리러 가야만 한다.


그리고 결심한 게 있다. 주말이면 무조건 해변에 가야겠다. 오해하고 있던 이 도시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선 그래야만 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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