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12-15
내가 얼마나 열심히 일하고 있는지에 대한 증거다. 손에 거뭇한 게 묻는 게 찝찝해서 장갑을 두 겹씩 끼고 일한다. 두 겹 씩 일해도 자꾸 손이 더러워지는 것 같은 게 이상했는데 장갑이 다 닳아있다.
퇴근을 하고 트레인을 탔다. 주디와 목, 금요일에 열리는 스트릿 마켓에 가기로 했다. 이 Milsons Point는 시티에서 하버브리지를 건너면 바로 있는 역이다. 킬리빌리라는 동네 인근 역인 이곳은 자카란다가 유명해서 내가 두어 번 들렸던 곳이다. Milsons Point 다음 역은 노스시드니. 오늘의 행선지는 북쪽 동네에 있는 채스우드역이다.
이 마켓은 잡화를 팔기보다는 푸드 트럭이 주를 이루는 마켓이다. 아주 크지도 않고 역 앞에 있는 기다란 공터에 마켓이 얌전히 들어서 있다. 내가 지금 함께 지내는 룸메 언니는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왔다. 그곳도 영국연방인 데다 꽤 다양한 민족들이 지내는 데도 호주에서 지내는 기분은 남다르다고 한다. 마치 국적 없는 미래도시가 바로 이런 곳이 아닐까 생각한 댔다. 어느 인종이 딱히 눈에 띄지 않을 정도로 다양한 국가의 사람들이 섞여 산다. 덕분에 이 스트릿마켓의 음식은 전 세계 음식의 총집합이었다.
그릭 요거트가 들어간 어떤 음식을 주문하고 "감사합니다"를 그리스어로 배웠다. 배우는 우리도 가르쳐 주는 사장님들도 신이 나는 시간이다. 음식이 준비되는 동안 인사말을 배우며 한참을 깔깔거렸다. 요리 옆에 옵션으로 샐러드와 감자튀김을 선택할 수 있었는데 우리가 한참 고민하니 둘 다 맛보라며 반반으로 넣어주셨다. 그리스식 인심은 처음 느껴보는 건데 아주 끝내준다!
우리는 이렇게 빠에야와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그리스 요리를 먹었다. 너무 맛있어서 다음에 또 먹을래! 같은 맛은 아니었지만 새로운 맛을 맛보기엔 적절했다. 물론 빠에야 같은 경우는 빠에야 쌀이 아니라 뭔가 호주 패치가 된 쌀 같은 모양이었지만 말이다.
호떡집에 불났어요! 호떡이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 우리도 합류해 호떡을 하나 주문했다. 기대했던 호떡과는 조금 다르다. 호떡 반죽이 호떡이 아닌데...?
채스우드 길거리를 쭉 보니 이런 현수막들이 눈에 띈다. 크리스마스를 맞아 초등학생들이 그린 그림을 걸어두는 것 같았다. 귀여워서 웃음이 난다. 이렇게 자신의 그림이 거리에 걸린 걸 보면 아이들은 얼마나 신이 날까? 이것 자체로도 큰 선물이 되었겠지?
소화시킬 겸 옆에 있는 쇼핑몰을 구경했다. 얇은 바지를 하나 사고 싶은데 여기 바지는 다 길다. 이 바지는 입어보면서 조만간 한국에도 이런 스타일이 유행하겠구나 했다. 두께가 정말 얇고 편해서 정말 사고 싶었지만 바닥을 쓸고 다닐 것 같아서 패스했다.
집에 오기 전 만두로 요기를 하고 돌아왔다. 버우드에서 먹은 것보다는 별로였다. 사실 오늘 이곳에서 먹은 음식 중에 아주 끝내주게 맛있는 건 없었다. 하지만 이런 건 언제나 분위기를 즐기러 오는 거니까. 사람들이 모두 놀러 온 분위기라 그런지 마음만은 주말 같다.
오늘 출근을 했었나? 전혀 생각도 나지 않을 정도로 정말 재밌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이건 모두 주디 덕이다. 주디는 장면 전환이 정말 빠르다. 덕분에 우리는 마켓 구경을 전부하고, 몰 상점도 전부 들러봤다. 그러면서 옷도 입어보고 헤드셋 청음도 해봤는데, 해가 지기 전에 집에 돌아간다. 새로운 문화를 만나고 새로운 친구들을 만나 생각지도 못한 경험들이 주는 의미를, 주디가 아니었다면 와볼 수 없었던 오늘의 마켓과 겪을 수 없었던 오늘 하루를 두고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