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이배 Zoe Aug 25. 2023

창고의 천장을 한참 바라본 까닭은

22-12-16

오늘은 내가 일하는 걸 보더니 토미가 베스트 워커라고 본인이 이 회사를 사면 나에게 시급으로 50불을 준단다. 나는 "그러면 빨리 이 회사 사"라고 말하고 싶은데 빨리가 갑자기 생각이 안 나서 "어... 어..." 뜸을 들였다. 토미가 그런 나를 보고 "왜? 너무 적어?" 란다. 이건 모두 같은 패킹 코스를 수료하고 있는 학연 유착관계 때문이다.


이 말을 듣고 얼마 지나지 않아 매니저가 부르더니 나에게 다음 주 목요일부터 쉬라고 말한다. 원래는 금요일부터 쉬는 거라고 했었다. 하루 더 일하고 안 하고는 캐주얼 워커에게 아주 큰 일이다. 내 표정이 안 좋았는지 그 얘기를 하면서 다음 주에 출근하는 캐주얼은 내가 유일하다고 말해준다. 한 번도 불평하지 않고 병가도 안 내면서 일을 잘하니까 다음 주에도 부르는 거라면서.


퍼머넌트 워커들은 주어진 일정한 휴가가 있지만 캐주얼들은 몸이 안 좋을 때 그냥 급여를 포기하고 쉰다. 나 빼고 다른 워커들은 자주 아프다며 출근을 빼먹곤 했다. 매니저는 호시탐탐 사람들을 자를 궁리를 하고 있었다. 내가 들어왔을 때부터 지금까지 여전하게 쭉. 그 때문에 오늘은 라쟈의 마지막 근무일이다. 나나와 나를 뺀 다른 캐주얼 워커들이 다 잘렸다.


원래 라쟈는 캐주얼이 아니라 풀타임 워커였는데 너무 힘들어서 한 달에 10일씩 병가를 냈었다고 한다. 그래서 잘리는 대신 풀타임으로 전환하는 선택지도 있었지만 그냥 이 직장을 포기했다. 급여도 좋고 몸에 익은 일이지만 아이들을 돌보기 위해서 더 다니는 건 불가능하겠다고.


얼마 전에 콘에게 어떤 문제가 생겨서(영어가 짧아서 대충 이해만 했다) 사람들이 욕을 하고 소리를 지르고 난리도 아니었는데 그 난리통에서 나는 그냥 은은한 웃음을 지으며 일했다. 대충 알아듣긴 해도 그게 뭐 별일인가 싶은 생각으로 내 일이나 즐겁게 했다. 요즘 그래서 일하면서도 난 참 무던하게 여기서 잘 버틴다는 생각을 했다.



매니저는 그러더니 비자 얻으러 시골에 다녀오면 퍼머넌트로 다시 입사하란다. 매니저에게는 고맙다고 인사했다. 고마운 말이긴 했지만 나는 여기에 퍼머넌트 직업을 찾으러 온 게 아니다. 다양한 환경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서 온 거지.


퍼머넌트 얘기가 나온 김에 Could you be my reference? 하면서 매니저의 연락처를 얻어왔다. 조금은 프러포즈 멘트 같기도 하다. 레퍼런스가 호주에선 아주 중요하다. 신용도를 보여줄 수 있는 건 전 직장에서의 근무 기간보다도 매니저의 추천서가 우선이랄까? 이 덕분에 나는 구직능력이 조금 향상되었다.



점심시간에 이걸 보고 나는 또 조금 감동받았다. 이 사람들은 나를 이제 조금 안다. 조이는 그들이 없을 때 일 거리가 없으면 큰 거에 손을 댄다. 그게 뭐 얼마나 크건 무겁건 우선 한다. 왜냐면 일을 안 하는 게 너무 불편하다. 그러니 토미는 점심 먹으러 가기 전에 나름의 빅 오더를 조금 체크해뒀다. 토미가 할 테니 나한테 하지 말라는 표시인 거다. 이런 배려가 느껴질 때면 맨날 Fuck Fuck 거리는 이들도 어찌 그리 싫어할 수 있나 싶어 진다.



금요일은 희한하게도 정신없이 바쁘다. 다가오는 이별을 제대로 느낄 수 없을 정도로. 션이 갈 때 제대로 인사하지 못한 게 조금 마음에 걸려 라쟈에게는 진심을 담은 인사를 하고 싶었다. 나는 월요일이 되면 언제나 라쟈가 올 목요일만을 기다렸다고 얘기하고 싶었다. 라쟈와 포옹을 하며 굿 바이 한 번 얘기하고는 서로 목이 메어 더 이상의 인사를 나눌 수 없었다. 그 덕분에 나는 오늘 창고의 천장을 한참 바라봐야 했다.



좋은 것들은 마치 초와 같다. 얼마 내 삶을 밝게 비추고 따뜻하게 뎊혀주다가 결국은 다 타서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만다.


한참을 느껴보지 못했던 이 감정을 다시 느끼고 있다. 나에게 행복 트라우마가 있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살던 시기가 있었다. '아 요즘 정말 행복하다'라고 생각하고 나면 신기하게도 하루이틀 내에 그 행복이 박살 나고 말았다.


인생에 영원한 건 없다고 한다. 그걸 인정해야 삶이 편안하다고. 이별에 약한 나는 이 사실을 받아들이는 법을 배워야만 했다. 그래서 한껏 내 마음을 가벼이 만들어 냈지만 미련한 마음은 조금 서글프고 만다. 따스했던 것이 가시면 추운 기분이 드는 게 당연하니까.


나의 삶에서 다 타서 사라진 것들을 떠올려 본다. 내 마음이 편하기 위해 금방 들어내버린 것이지 그 시간을 절대 가벼이 여긴 적 없다. 그 시간을 밝혀주던 이들에 대해 깊은 고마움을 느끼고 있다는 걸 다들 알아주었으면.



매거진의 이전글 열심히 일하고 열심히 놀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