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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배 Zoe Sep 07. 2023

사랑한다고 말을 해도,

23-01-12


How can I say? 요즘 내가 입에 달고 사는 말이다. 필리피노인 마크와는 소통에 어려움이 덜한 편이라 이렇게 저렇게 풀어서 내가 말하고 싶은 걸 얘기하면 마크가 한 문장으로 정리해 준다. 마크가 온 후로 나는 마크 차로 출퇴근을 하게 됐다. 덕분에 출퇴근 시간은 줄어서 좋으면서도 행복 또한 줄어든 기분이 들긴 한다. 아침의 햇살을 맞으며 걷는 일이 정말 즐거웠으니까.


픽업에 감사하며 마크에게 커피 한잔을 샀다. 마크는 어차피 출근길에서 나를 픽업하는 것뿐이라고 괜찮다고 했지만 일을 하고 온갖 먼지를 둘러쓴 채 깔끔한 마크 차에 신세를 지자니 미안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레이 또한 나의 영어 선생님이다. 다만 마크와는 달리 중도가 없는 선생님이다. mess가 뭔지 아느냐 물어보다가도 agnostic 같은 단어를 알려준다. 엉망 정도야 쉬운 단어지만 불가신론자 같은 말은 영어를 네이티브처럼 구사하는 룸메 언니도 모른다


매번 보이던 이상한 철제 주걱을 레이가 들고 가길래 뭔지 물었더니 Dust 팬이란다. 팬이 무엇인지 물었더니 이렇게 설명해 준다. 움푹 파인 물건이 팬이라고. 프라이팬의 그 팬이었다.



마크가 픽업과 드롭오프를 해줘서 나는 역까지만 걸어간다. 역 앞에는 도서관이 있다. 그 덕에 나는 퇴근 후에 도서관에서 한 시간 조금 넘게 시간을 보내다 온다. 강의도 듣고 책을 읽기도 하는데 요즘 읽는 책이 정말 재밌고 유익하다. 유익의 정도를 뛰어넘은 수준이라 내 주변 사람들에게 모두 추천하고 있다. 책의 이름은 [내가 알고 있는 걸 당신도 알게 된다면]이다.


책에서 사랑하는 사람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아끼지 말라고 한다. 그 순간 엄마에게 전화가 와서 나는 그 말을 더 이상 아끼지 않았다. 나는 호주에 오기 전까지만 해도 부모님에 대한 원망스러운 마음이 있었다. 지원받지 못한 것에 대한 불평불만이었던 셈이다. 지금 보니 못 살았던 것도 아니면서 더 잘살고 싶어 욕심을 부렸다. 이런 내 마음을 솔직하게 털어놓는데 우리 엄마는 내 악수요청에다 대고 갑자기 이런 얘기를 한다.


"나는 네가 서울에서 전세 사기를 당할까 봐 너무 걱정되고 불안해"


세상에. 한국에 돌아가면 전셋집을 정리하고 서울에 직장을 구할 거라 말하고 왔더니, 우리 엄마는 나를 벌써부터 서울에 데려다 놓고 있다. 당장 내가 지금 찾아보고 있는 건 태즈메이니아로의 이동인데 그런 얘기를 했다가는 우리 엄마의 걱정 섞인 한숨으로 우리 집 지붕이 무너질지도 모른다. 때 이른 걱정도 걱정이지만, 지방 전셋값으로 서울 전세는 얻을 수도 없다. 일어날 리가 없는 일에다 대고 우리 엄마는 걱정하고 불안해하고 있다. 이를 어째.


이런 우리 엄마의 극단적인 걱정하기가 어쩌면 나를 걱정 없이 만들었는지도 모르겠단 생각을 한다. 나는 그 덕분에 걱정하지 않기를 강조하는 소피와 말이 통하게 됐다. 내가 공부하고 있는 것들과, 요즘 읽고 있는 책에서도 걱정하지 말란 말은 반복해서 나온다. 특히 소피는 걱정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마다 이 말을 했다.



걱정을 해서 걱정이 없어지면 걱정이 없겠네



우리 엄마의 걱정은 내 전세사기를 절대 막을 수 없을 거다. 걱정은 일을 바꾸는 힘을 거의 가지고 있지 않다. 요즘의 나에게 걱정은 그렇다. 호주에 있는 내가 서울에 가서 전세사기를 당할까 우려하는 마음이다. 그렇기에 나는 더 아무렇지 않게 태즈메이니아로 이동을 준비하게 된다. 걱정은 절대 하지 말아야지. 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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